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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Jan 01. 2017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흔세 번째 지난주




희망의 탄생


 관계라는 미명(美名)은 대화를 종용해왔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는 내팽개쳐졌다. 닿음에의 욕망은 곧고 강하게 뻗기를 그치지 않고, 인지를 최대한 그대로 전하겠노라며 ‘이름’이라는 것을 낳기에 이르렀다. 삶들은 통째로 김 아무개나 이 아무개가 되었다. 심지어는 이어진 것을 뚝뚝 끊어 새로운 경계를 만들기도 하였다. 손과 손목을 구분하려는 주름과 가을과 겨울의 변곡점을 찾는 낙엽의 거처는 머뭇거렸다. 이 경계의 이름이 파생한 최고의 부산물은 단연 ‘새로움과 희망’이다. 긋고 난 이후의 것에 새로움과 관련된 이름을 지어, 희망을 삶아 나누어 먹었다. 새해가 밝았다.









어떤 새날을 기억하며


 새로움은 어찌나 염가로 팔려나가는지 도처에 전시된다. 그중에서도 어떤 새날을 기억한다. 2012년 12월 19일. 이날도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의 새 출발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을 게다. 그분들께는 죄송스럽게도, 당시 필자는 몹시도 화가 났었다. 그 이전 5년의 세월 동안 넘어진 것들은 대부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주저앉고, 떨어지고, 심지어는 떠나간 이름들이 부지기수였다. 적어도 그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는 열차를 한 번은 세우거나, 적어도 속도는 늦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치화된 죽음들이 제법 알려졌다는 믿음에서, 이제는 그 열차에 제동을 가하는 일에 희망을 품은 바 있었다. 하지만, 열차는 계속해서, 아니 도리어 더 속도를 내어 달려 나가야 한다는 선택이 승리했다. 화가 났다. 그런데 화 따위야 식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달려오는 열차의 바로 앞에 서 있던 사람에게는 단지 화로 그칠 일이 아니었다.


* 제18대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 마련된 선거종합상황실에서 축하 꽃다발을 건네받은 뒤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촛불집회의 몇 주차였던지, 사회자의 입에서 한 이름이 들려왔다. 최강서. 필자는 그를 잘 모르지만, 달려오는 열차와 맞선 대열의 맨 앞에 있던 사람임은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그는 열차와 닿기 직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떤 이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었을 2012년 12월 19일로부터 이틀이 지난날이었다.


** 고(故)최강서 열사 어머니가 24일 오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단결의 광장에서 열린 ‘故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발인식에서 영정 속 아들의 사진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대량해고에 대한 항거가 158억이라는 상상조차 어려운 손해배상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감당할 수 없는 무게는 그를 짓눌렀으리라 감히 짐작한다. ¹ 그런데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완전히 사라진 바로 그 날, 어떤 이들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희망과 번영을 꿈꾸었다는 바로 그날, 이 땅의 최강서들에게는 마지막이 강요되었다. 어떤 삶이 단지 어떤 자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명(命)을 다함에 대해 생각한다. 더 이상 그 어떤 작은 희망의 끈마저 이어질 수 없음을 확인한 바로 그 날, 2012년 12월 19일이라는 새 출발……. 그랬다. 이 정부는 최강서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죽음의 운구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 페이스북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중  ⓒ정희망



 2017년의 새날에 굳이 최강서를 비롯한 기억해야 할 죽음의 이름들을 꺼내 보임은 어떤 고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미안함이다. 정말 미안하게 되었다. 미안하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²


 굳이 언어의 분절적 작용이 아니더라도,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은 해와 달, 그리고 농사를 비롯한 인류의 온갖 삶의 방식들과 연유한다. 따라서 새해를 맞이하며 나누는 희망과 다짐이 기실 어색할 일이 아니다. 무거운 마음을 핑계로 구시렁댄 서두의 문장들을 물러 세운다.


 다만, 이 시점에서 희망을 노래하자니, 미안한 사람들의 이름자가 마음에 밟힘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저자들의 꼬리가 길어 밟히지 않았다면, 이 무수한 기억해야 할 죽음의 이름들이 광화문광장 한복판에서 불리지 않았을 것임을 생각하자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촛불로 희망을 보았고, 마침 새해가 밝았음에도, 미안함을 먼저 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안하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더는 기억해야 할 죽음들이 없기를……. 이를 위해 승리하기를……. 각자의 전장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




참고

¹

 -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2012년 12월 23일 자,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조문 행렬-추모집회 이어져”

 - 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17610


²

 - 기형도, 『기형도 전집』, 문학과 지성사, 1999 중 「정거장에서의 충고」

 - 이하 전문 수록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이미지 자체 수정)

 - 노동과 세계, 홍미리 기자, 2012년 12월 28일 자, “故 최강서 열사 “여지껏 어떻게 지켜낸 민주노조입니까??””

 - 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241636


*

 - 오마이뉴스, 안홍기 기자, 유성호 사진 기자, 2012년 12월 20일 자, “"MB와의 차별화, '박근혜 당선=정권교체' 인식"”

 - 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16292&PAGE_

    CD=ET000&BLCK_NO=1&CMPT_CD=T0000


**

 - 노동자 연대, 이윤선 기자, 2013년 2월 8일 자, “[사진]오열하는 고 최강서 열사의 어머니”

 - wspaper.org/article/12640


***

 - 페이스북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중 ⓒ정희망

 - facebook.com/sewolsazine/?fref=nf


****

 - 10차 촛불집회 ‘송박영신’ 중 직접 촬영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것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한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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