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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Jan 29. 2017

조금씩 다른 설날

마흔일곱 번째 지난주




파동


 잔잔한 연못에 돌 하나를 던진다. 파동이 인다. 처음의 것은 크게, 그에 파생된 파장은 조금씩 작게 일어난다. 그럼에도 퍼져 나간다. 그 어렵다는 양자역학에서의 입자성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의 그것으로 이해해도 좋지만, 설명할 수 없다. 죄송하다. 다만, 어떤 하나의 사태가 그 자체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 영향을 미친다는 것. 최초의 것이 지니는 크기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 정도를 공유하며 시작한다.





만들어진 전통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그의 저서 『만들어진 전통 (The Invention of Tradition, 1983)』을 통해 근대에 우리가 ‘전통(적)’이라고 믿는 것은 대부분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만들어진 전통들은 정치적, 사회적 목적과 결부되어 있다고 역설한다. ¹ 이와 같은 주장이 모국어로 번역되어 전해져, - 혹은 그 이전부터 - 우리의 만들어진 전통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부여받는다는 ‘쉬움’과 이미 널리 퍼져 ‘견고’해진 우리의 만들어진 전통을 애써 벗어던질 용기나 동기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이 흘러가던 중, 지난주 민족의 대명절 설날을 맞이했다.





승리라는 경험


 물론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굳이 ‘승리’를 앞세우는 조급함은 지난해 가을로부터 이어진 일련의 전개로부터 4·19, 6·10이라는 숫자가 떠오른 탓이다. 성급함에 양해를 구한다. 독재의 타도와 민주화의 열망은 비록 완전한 성취로 이어지지는 못했으나, 우리가 지닌 힘을 스스로 상기하고, 어떤 권력도 제멋대로 지닌 힘을 전횡할 수 없음을 인지시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또 한 번의 비슷한 시간을 맞이했고, 일단 가시적인 추함은 거두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리드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설날이었다.


* 제10차 촛불집회 ‘송박영신’ 중





입자로서의 실천과 파동으로서의 운동


 추정은 위험하다. 이는 단지 논리를 취약하게 함이 아닌, 세태의 곡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하면 아예 아니하면 좋으나, 주장은 하고 싶은데 빌붙을 근거가 박하니 쥐구멍을 훑는다. 그저 순전히 필자에게 받아들여진 바이며, 과학적이기는커녕 통계치도 없다. 역시 양해를 구한다.


 올해의 설날에 유독, 양가 어른들을 만나 뵙는 순서 따위나, 차례의 간소화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고 느꼈다.- 물론 그간에도 이런 차원의 문제 제기는 줄곧 이어져 왔으나, 이는 주로 불만 섞인 푸념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각자의 만들어진 전통에 의문을 지닌 개인이라는 입자들이 일어났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에게 의견을 전하고, 거추장스러웠던 것을 줄이거나 털어버리자는 견해를 제기하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의미 있는 답변을 들었다는 경험들을 전해왔다. 이상의 전개는 마치 파동처럼 번져나가는 운동(movement 혹은 campaign)과 같이 여겨졌다. 입자와 같이 비조직적이고 점적이지만, 적절한 때를 맞아 파동을 일으키듯 일제히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는 역시 그러했던, 지난 13번의 촛불집회와 닮아있었다.


** 영화배우 김꽃비 님 트위터(@kkobbiflowerain) 화면 캡처





조금씩 다른 설날


 이번 설날은 달랐다. 그 이전의 명절과 같을 수 없었다. 기존의 낡고 오래된 것을 단지 그 세월이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존중할 수는 없다는 경험을, 특정 세대가 아닌 모두가 공유한 상태에서 마주하는 첫 번째 명절이었기 때문이다. 나만 알 수가 없고, 당신만 알 수가 없는, 더 살았다는 당신도 알고, 덜 살았다는 나도 아는 거대한 붕괴를 공히 인지한 채,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자, 기존의 만들어진 전통에도 틈이 생겼음을 인지한 몇몇이 재빠르게 파고들었고, 각자의 큰집에서 거둔 성과가 점적으로나마 SNS를 통해 타전되었으며, 희열이라기에는 쑥스러운 ‘좋아요’를 나누었다.


 사소하다. 물론 사소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사소함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큰 작용을 빌렸어야 했는지를 떠올려 본다. 그것은 사소할 수 없다. 영향은 사소하지 않다. 우리는 이렇게 영향을 주고, 또 받는다. 따라서 더 어린 구성원이 보고 있을 것임에 늘 조심하되, 진도가 나간다 싶으면 또 적극적일 일이다. 한 번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씩 다른 설날, 혹은 명절은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참고

¹

 -  에릭 홉스봄, 『만들어진 전통』박지향 외 옮김, 휴머니스트, 2004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news1, 신채린 기자, 2017년 1월 28일 자, “서울~광주 고속道 5시간10분…고속도로 양방향 정체”

 - m.news1.kr/articles/?2897798


*

 - 제10차 촛불집회, 2016년 12월 31일, ‘송박영신’ 중 직접 촬영


**

 - 영화배우 김꽃비 님 트위터(@kkobbiflowerain) 화면 캡처 

 ※ 김꽃비 님으로부터 트윗 캡처 활용을 허락받았습니다. 김꽃비 배우님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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