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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Feb 19. 2017

봄이 오는 풍경

쉰 번째 지난주




풍경론과 봄의 풍경


대지에 새겨진 인간 생명의 형태라 할 수 있는 풍경론은 사물과 주변 풍경과의 관계, 사물과 사물의 시각적 관계, 대상과 자기와의 관계 등 관계라고 하는 연緣을 중시하는 공간론이다.

 - 나카무라 요시오 著 『풍경학 입문』 중 ¹


 풍경은 어렴풋하다. 기차를 타고 이름 모를 산들을 스쳐 지날 제, 이것이 이 땅의 생김이라는 짐작만이 가능하였다. 한데 이를 학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정의는 훨씬 적극적이다. “관계라고 하는 연緣을 중시하는 공간론”이란다. 어… 뭐,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런데 풍경의 요(要)가 관계라면, 어떤 존재들의 관계가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것일까? 마치, 각기 생김이 다른 꽃과 나무가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던, 그대 뒤편의 모습 같던……. 나는 조심스럽게, 정말로 살포시, 봄을 들었다가는 놓는다. 그런데 마침 지난주, 살짝이 봄이 고개를 들이밀었다는 전언을 곳곳에서 받았다. 그러니까 마치 봄날의 기운 같은 것을 느꼈다는 공동의 감각을 말이다.









풍경 하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특정하기 어려우나, 줄의 길이로 보아 제법 중요한 것인 양 싶다. 그런데 무언가가 희미하게 보이거나, 들려온다. 아주 멀리, 저 앞에서 누군가가 새치기를 한단다. 워낙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별 상관 안 할 수도 있지만, 그자가 새치기하니 너도 하고 나도 하여, 그 와중에 자기들끼리 제법 든든히 잇속을 챙겨 배를 두드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난주, 좀처럼 잡힐 것 같지 않던 가장 큰 손의 그자가, 무려 구속되었다는 전갈이 왔다. 그 소식이 전해진 날, 기분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겠다. 반칙하던 자들에게 벌을 줄 수 있음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호송차를 타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에 도착해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풍경 둘


 반칙하는 자들이 하나둘 잡히자, 가장 우두머리에게로 시선이 쏠린다. 꼭 몰려든 시선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미 사건 내용에의 파악을 마친 판단하는 자의 다음 단계는 명징하다. 최종변론 일이 정해졌으며, 이에 대한 심판 결정 예상 일의 추산은 그리 어렵지도 않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60일을 합산하고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투표소에 나설 것을 상상한다. 상상은 그림이 그려짐을 의미한다.


** 탄핵심판 최후변론 기일이 정해진 관련 뉴스화면 캡처 





풍경 셋


 승리하는 경험은 중요하다. 한 번 멈칫했던 모 대기업 총수의 구속이 결국 집행되자, 촛불의 향연 속에서는 여유가 느껴졌다고 전한다. 이겨본 경험이 자신감으로 이어져, 사기진작에 기여한 탓일 게다. 당당한 마음들 덕분이었을까? 촛불이 모인 광장의 모습을 전해 보며, 봄의 풍경을 엿보았다. 봄의 자리를 위해 퇴장할 것을 명하는 레드카드가 선연히 펼쳐짐을 계속 바라보았더니, 그것이 레드카드인지 진달래인지 영산홍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더라! 나는 도무지 모르겠더라!


*** 제16차 촛불집회 중 레드카드 퍼포먼스









의도적 낙관


 위험하지 않을까? 봄을 운운하는 것이…. 국기에 노란 피아식별 띠를 달아야 하는 시절에, 지나친 낙관은 아닐런가 말이다.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속에 봄기운을 가득 채워 두는 이유는 사실 어떤 확신 때문이 아니다. 작게는 조금은 지쳤을 촛불에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고 싶어서이고, 크게는 어떤 만약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흩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투표소로 향할 그 날을 손꼽아 보자. 이는 설령 봄이 저절로 오지 않더라도, 봄이 오게 하겠다는 의지를 포함한다. 그래서 일부러 더 들떠 있으려는 것이다. 만에 하나 우리의 봄을 막으면, 그 전환의 에너지로 봄을 데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봄이 움트고 있다! 이 미천한 필부는 철석같이 그리 믿으련다. 희망이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먼저 희망할 것이다! 그리고 설령 봄이 오지 않으면, 그 믿음이 무너진 크기만큼의 뜨거움을 안고, 다시 우리의 봄을 찾아올 것이다!


 풍경은 반드시 답을 줄 것이다.


**** 제16차 촛불집회 중 대전 집회 모습





참고

¹

나카무라 요시오, 『풍경학 입문』, 김재호 옮김, 문중, 2008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및 ****

 - 현장 언론 민플러스, 강호석 기자, 2017년 2월 18일 자, “16차 촛불에선 어떤 구호가?”

 - minplus.or.kr/news/articleView.html?idxno=2352


*

 -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2017년 2월 19일 자, “조사실로 향하는 이재용”

 - yonhapnews.co.kr/photos/1990000000.html?cid=PYH20170219147000013&from=search


**

 -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 임지수 기자, 2017년 2월 16일 자,
   “헌재 "24일 최후변론"…3월 '둘째 주' 탄핵심판 끝 보인다” 뉴스 화면 캡처

 - 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424471&pDate=20170216


***

 - 노컷 V, CBS 스마트뉴스팀 제작, 2017년 2월 18일 자,
   “우수에 밝힌 촛불 "탄핵의 봄이 오고 있어요"” 동영상 화면 캡처

 - v.nocutnews.co.kr/?news=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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