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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Mar 12. 2017

눈부시게 찬란했던 촛불의 순간들 (1)

쉰세 번째 지난주




기나긴 겨울의 끝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변주를 이끈 것은 접속사였다. 나는 ‘그러나’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모국어를 공유하는 마음들은 쥐었다 펼쳐지기를 반복했지만, 번민과 고뇌로 눌러쓴 활자 앞에 이내 숙연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담담하게 읊어 내려간 문장들이 그 종국에 이르렀다. 어떤 서술어는 너무나 단호해서, 그 자체로 대상의 종언(終焉)을 적시하였다. 그렇게 끝이었다. 긴 겨울이었다. 참으로 기나긴 겨울이었다. 그러나! 그 겨울의 시작은 모두에게 달랐다. 가깝게는 무능과 비리에의 분노로부터, 반칙과 특권에 대한 항거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외침으로부터, 그리고 아직도 바닷속에 있는 한 척의 배로부터, 심지어는 그자의 부친으로 인한 상처로부터……. 한 번에 끝났으나, 모두가 그 시작을 달리했던 겨울이었다. 기나긴 겨울의 끝이었다.



*


 확신에 찬 주문으로 눈에 부끄러운 무언가가 찔끔거리자, 머릿속을 스쳐 지나는 풍경들이 있었다. 가만히 이 겨울에 맞서던 불빛들이 있었다. 빙산을 녹여보겠다는 촛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곁으로,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던 순간이 있었다. 나는 이 순간들을 천천히 되짚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눈부시게 찬란했던 촛불의 순간들 (1차 ~ 10차)


· 2016년 10월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 국회 연설, 개헌 필요성 역설
· 2016년 10월 24일 JTBC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
· 2016년 10월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 1차 대국민 사과


1차 집회 _ 2016년 10월 29일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 싶었다. 최초 집회의 무대는 청계광장이었고, 거대한 소라 모양의 조형물 옆으로 무대가 설치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나올지에 대한 감각은 없었다. 사실 “1차”라는 말조차 없었다. 그냥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들이 하나, 둘 모였다.


 주변을 배회하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다시 광장을 찾았다.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고, 나는 청계2가까지 거슬러 올라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가을이 끝날 무렵이었다.



 행진이 이어졌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 간다. 故 백남기 농민께서 경찰 물대포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지점도 지났다. 당황한 경찰이 광화문에 이르는 구간에 뒤늦게 차벽을 설치하려다 행진의 대열에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리고는 광화문 사거리에 당도하였다. 심지어는 오른쪽으로 꺾는다. 다리에 힘이 붙었다. 떨렸다.    


 세종대왕상까지였다. 그것도 엄청난 경험이었다. 광장이었으나, 단 한 번도 시민의 목소리를 모을 수 없었던 공간에 최초로 발을 올린 것이었다. 경찰과 맞선 몇몇 시민들은 비폭력을 외치며 경찰 방패를 빼앗아 뒤로 돌리기도 했다. 비폭력 저항의 시작이었다. 


 경찰은 거듭 방송으로, 집회 참가자들이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있으니 물러날 것을 경고하였다. 정말이지 귓등으로도 안 들어오는 이야기였다. 


 "세금 내는 줄 알았더니, 복채 내고 있었네." 인쇄되지 않은 손 글씨 피켓을 준비해온 시민도 있었다.


 대학생들은 '시 굿 선언'을 외치고 풍악을 울리며 춤을 췄다. 이 싸움이 지루하게 이어질 것임을, 그리고 즐기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집회를 주도하던 트럭이 철수한 상태에서도 시민들은 떠날 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시민들의 목소리가 전혀 전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적어도 당시의 시민들은 그렇게 느꼈다. 밤이 깊도록 대치는 계속되었다. 


 도로 위의 걸음들은 이대로 물러서면 안 되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하나둘 귀갓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박주민 의원을 보았다. 그는 이후로도 촛불을 함께 밝혔음은 물론, 국회 탄핵 소추위원으로 영광의 순간에서 가장 선두에 섰다. 감사의 뜻을 전한다.




· 2016년 10월 30일 최순실 귀국
· 2016년 10월 31일 최순실 검찰 출석, 교육부, 정유라 '특혜 입학' 의혹 이화여대 특별감사 착수
· 2016년 11월 4일 박근혜 전 대통령 2차 대국민 사과 (자괴감 발언)


2차 집회 _ 2016년 11월 5일


 2차 집회부터는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하였다.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고 사람들이 공개발언을 하였다. 조금씩 뜨거워지고 있었다.


 광장은 물론 광화문 사거리 주변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집회는 이내 행진으로 이어졌다. 한 시민은 구속영장을 직접 집행하기 위해 준비해 왔다. 곧 저분의 영장이 집행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둘로 나뉘어 '공범들'이 되었다.


 행진은 명동 도심을 향했다. 빼놓으면 섭섭한 어느 대기업의 활자가 선명하다.


 집회를 하면, 어쩔 수 없이 의경과 경찰분들이 눈에 밟힌다. 특히 직급이 낮은 경찰들은 한 없이 분주하다. 잠시 그의 뒤를 쫓아보았다.




· 2016년 11월 6일 안종범, 정호성 구속
· 2016년 11월 9일 JTBC '주사제 대리처방' 의혹 제기
· 2016년 11월 12일 촛불집회 100만 명 운집


3차 집회 _ 2016년 11월 12일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하철에서 이동조차 어렵다. 사람들은 결의에 차서 이동한다.


 약속처럼 광화문으로 향한다. 바퀴가 아닌 발들이 도로를 누볐다.


 해가 지기 전부터 사람들은 거리에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 


 훗날 태극기는 기이한 상징을 이입당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가끔씩 바라보이는 태극기는 사람들을 더욱 뜨겁게 했다.


 처음 가는 길이었다. 훗날에는 지겨우리만치 익숙해졌지만, 광화문 앞 도로를 밟으며 청와대로 향하고 있었다. 무려 청와대로......


 3차 집회에는 농민들도 함께했다. 농민들은 쌀값 폭락 등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함께 규탄했다.


 당시 가장 맨 앞은 경복궁역 사거리였다. 


 호기로운 청년은 경찰 버스에 올라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일부 환호하는 시민이 있었으나, 이내 사람들은 비폭력을 외치며 분노의 방향을 모으고자 했다. 곳곳에서 작은 충돌이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아직은 가을이었다.



 

· 2016년 11월 15일 JTBC 차움 병원 관련 '길라임' 보도
· 2016년 11월 15일 박근혜 전 대통령 유영하 변호사 선임 및 "여성으로서의 사생활 고려" 발언
· 2016년 11월 17일 수학능력시험 시행


4차 집회 _ 2016년 11월 19일


 가수 전인권이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불렀다. 울컥하는 마음들로 촛불이 일렁거렸다.


 이즈음 촛불은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대구에서도 2만 명의 시민이 시내 중심가로 몰려나와 박근혜 탄핵을 연호했다 한다.

**

 

 행진은 다시 청와대 방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단일 경로가 아니었다.


 이른바 '학익진 전법'으로 4개의 주요 경로로 청와대를 에워싼다는 전략이었다. 시민들은 다양한 경로로 진격했다.




· 2016년 11월 21일 야당 탄핵 당론 채택
· 2016년 11월 23일 김현웅 법무장관과 최재경 민정수석 동반 사표 제출
· 2016년 11월 26일 촛불집회 전국 200만 명 운집


5차 집회 _ 2016년 11월 26일


 5차 집회가 열리던 날에는 오후부터 진눈깨비가 흩뿌렸다. 


 하지만, 구름 떼처럼 몰려든 시민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든 주요 도로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길에서도.


 저 길에서도.


 교차로에서도.


 그리고 깨달음의 마음들에서도




· 2016년 11월 29일 박 전 대통령 대국민 3차 담화
· 2016년 11월 30일 국정조사 시작
· 2016년 12월 1일 새누리당 '4월 퇴진' 당론 채택


6차 집회 _ 2016년 12월 3일


 5차 집회부터 낮과 밤, 두 차례 행진이 이루어졌다. 6차 집회 때는 낮 행진도 함께할 수 있었다.


 자하문로를 따라가던 행진 행렬은 효자동 주민센터를 지나, 


 청와대 앞 200m까지 진출하였다. 선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었다. 저곳까지 가는데, 963일이 걸렸다.


 청와대 앞 대열에서는 대형 태극기가 펄럭였다.


 저녁 행진 대열에는 횃불이 등장했다.


 정의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심상정 대표가 시민들에 둘러싸여 연설을 하였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어주느라 좀처럼 전진하지 못했다.


 또한, 우리의 이웃들이 있었다.


  그리고 목표가 조금씩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 2016년 12월 6, 7일 국정조사 1차 청문회 8대 그룹 재벌 총수 및 김기춘 전 비서실장 출석
· 2016년 12월 6일 SBS 박 전 대통령 세월호 참사 당일 올림머리 의혹 보도
· 2016년 12월 9일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찬성 234표·반대 56표)


7차 집회 _ 2016년 12월 10일


 집회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는 일이 제법 수월해졌다.


 국회 탄핵 소추 안이 가결된 다음날, 지하철역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에서 승리의 기운을 느낀다.


 이제 많은 시민들이 초나 LED 촛불을 지참하고 있었다. LED 촛불 판매를 하는 상인들이 한가해졌다. 


 눈치 빠른 상인은 시류를 빠르게 읽는다.


 경찰 차벽은 갤러리가 되었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행렬이 길다.


 가수 이은미 씨의 열창 속에 집회는 뜨겁게 진행되었다.


 다시 행진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 2016년 12월 14, 15일 박영선 의원 최순실 육성 공개 "큰일 났네"
· 2016년 12월 14일 국정조사 3차 청문회 조여옥, 신보라 전 청와대 근무 간호장교 출석
· 2016년 12월 16일 새누리당 새 원내대표 친박계 정우택 의원 당선


8차 집회 _ 2016년 12월 17일


 광화문역은 잠시 이름을 달리했다.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구명조끼가 함께했다.


 자유발언과 공연이 계속 이어졌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국민 우롱 소시오패스, 청와대를 떠나라"


 통인동 커피공방은 자하문로가 행진로로 처음 열리던 날부터 촛불 시민들에게 무료로 차를 제공하였으며, 응원의 문구도 개제한 바 있다. 항상 감사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믿을 것은 촛불을 함께한 국민들밖에 없습니다."




· 2016년 12월 19일 JTBC 세월호 참사 닷새 뒤 대통령 '피부 시술' 흔적 의혹 보도
· 2016년 12월 22일 국정조사 5차 청문회 우병우 전 민정수석 출석
· 2016년 12월 23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내정


9차 집회 _ 201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열린 9차 집회는 축제처럼 치러졌다.


  모두가 기록한다.


 촛불은 점점 더 크게 타올랐다.


 그리고 행진이 시작되었다.


 행진 중, 시민들이 일제히 모여 노래 부른다.


 행진 후에도 공연은 이어졌다.


 비폭력, 평화 그리고 자발적 참여라는 촛불집회의 정신은 크리스마스이브에도 계속되었다.




· 2016년 12월 26일 정호성 6차 청문회(구치소) "세월호 당일 오후 2시 넘어 박 대통령 처음 봐" 증언
· 2016년 12월 28일 JTBC 세월호 당일 김영재 진료 차트 '허위 작성' 포착 보도
· 2016년 12월 31일 촛불집회 누적 참여 인원 1000만 명 돌파


10차 집회 _ 2016년 12월 31일


 2016년의 마지막 날, 촛불집회는 10주 차를 맞이했다. 유난히 경찰 차벽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바람은 차가웠다.


 하지만 촛불은 누적인원 1000만 명을 돌파하며 더 뜨겁게 타올랐다.


 송박영신의 염원과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노란 풍선이 하늘을 수놓았다.


 다시, 행진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촛불시민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식사를 대접했다. 추운 날씨 속에서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나누며, 서로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렇게 2016년이, 10번의 촛불이 모두 타올랐다.



 그리고 촛불은 새해를 맞이한다.




 (다음 주, "눈부시게 찬란했던 촛불의 순간들 (2)"에서 이어집니다.)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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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TBC 뉴스특보 "대통령 탄핵 심판" 생중계 화면 캡처

http://news.jtbc.joins.com/html/073/NB114360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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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기 님의 트위터‏(@jin_gi2043)

 - twitter.com/jin_gi2043/status/799921780102041601


*, **외 커버 이미지 및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모두, 필자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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