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Feb 05. 2017

더없이 아름다운 미지와의 조우 _영화 <컨택트> 리뷰

마흔여덟 번째 지난주




새로운 어둠


 ‘빛이 있으라’ 하시어 빛이 있었다는 증언을 받잡자면, 태초에는 어둠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생겨난 빛도 깊고 깊은 곳까지는 잘 닿지 못해, 투과를 허락지 않는 대상 너머로는 다시 어둠의 세계였다. 이런 연차로 만들어진 가장 깊은 어둠의 공간은 숲이었다. 숲이 어둠으로 가득 찬 시간, 그곳에는 이름 모를 괴물이 살고, 사람이 갇히면 나오지 못하며, 마법사, 요정, 정령과 같은 미지의 존재가 숨어 살고 있었다. 정확히는 살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어둠에 갇힌 숲은 역설적이게도 이야기의 보고(寶庫)가 되어, 신비스러운 존재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를 무수히 지어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 빛을 만들어 숲을 비추자, 그 신비가 사라졌다. 미지의 영역이 아닌 숲에서는 더 이상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야기'였던 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다시, ‘잘 보이지 않기에 상상의 나래가 가능한 새로운 어둠’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우주가 어두웠다.









<컨택트>가 던지는 질문들


 문제가 생겼다. 인류가 단순히 불을 밝히는 수준을 넘어, 온갖 현상에 대한 규명과 방법론을 제시하기 시작하자, ‘이야기’의 차원은 단순히 미지의 존재에만 기댈 수는 없게 되었다. 그저 신비스럽기만 한 대상이 숲에서 충분히 소비되었음은 차치하더라도, 소위 ‘말이 되는’에 대한 감상자의 갈망이 날이 갈수록 커진 탓이었다. 그러자 ‘이야기’는 과학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다. SF(Science Fiction)라는 그럴싸한 이름까지 생겼다. 그중 새로운 미지인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 물은 다시 예전의 숲에서처럼, 전쟁도 치르고, 괴물도 등장했으며, 심지어는 사랑도 나누었다. 그리고 이것이 장르 자체의 발전을 거듭하기에 이르자, 우주를 향한 시선은 지구적 현상의 빈틈을 찾는 그것과 마주치게 되었다. 이 발전상의 정점에 영화 <컨택트>가 마치 포스터의 우주선 마냥 선연히 떠 있다. 한국 시장에서 디자인된 포스터가 성과만연의 한국사회에 지극히 충실한 터라, 본래 소개된 포스터를 가로지르는 질문처럼 영화 <컨택트>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으로 리뷰를 대신한다.


*좌 _ 영화의 수상 내역이 나열된 한국판 포스터 / 우 _ 영화의 핵심 질문이 새겨진 북미판 포스터



※ 마흔여덟 번째 「김태은의 지난주」에서는 영화 <컨택트, Arrival>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 부분 이후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원치 않는 분들은 읽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왜 언어학자인가?


 그들은 그저 와 있다. 온 채로 가만히 있다. 지구인들은 알 길이 없다. 저들은 대체 뭐 하자는 것인가? 미지는 두려움을 낳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일상을 제단에 바친다. 차라리 선제공격이라도 날아들었다면 분명했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떤 미동도 없다. 누적된 우점의 기억은 분명 ‘공격과 대응’이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미지와의 조우,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1977>에 빚을 진다. 우호적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학습한 바 있다. 물론 여기까지는 순전히 가능성이다.


 가능성의 문제는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접근을 종용한다. 영화는 어둡기만 한 미지와의 조우에 있어 반드시 알아들어야만 하는, 하지만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답변을 해석하기 위해 언어학자를 투입한다. 에이미 애덤스가 분한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이하 '루이스')’는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의 실천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는 군인을 비롯한 여타의 등장인물들과의 기대와는 무관하게, 루이스를 가장 저명한 언어학자가 아닌, 가장 충실한 연구자로 조명한다. 루이스는 결코 서둘러 답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 쉽게 단정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그의 태도 때문이었을까? 애벗(Abbott)과 코스텔로(Costello)로 불리게 된 미지의 존재들은 그에게 가장 결정적인 언어를 전한다.


"Offer weapon."
 - 무기를 주기 위해


 미지의 존재는 선형(線形, linear)의 시간 속을 살아가는 인간과 그 인간의 언어에 갇힌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구인이 필요했다. 이에 언어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들의 학습 체계까지 고려하며, 이안 도넬리(제레미 레너 역)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은 루이스가 선정된 것이다. 결국,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그들의 언어와 세계가 루이스에게 전해졌고, 영화는 절정으로 달려 나간다.


** 미지의 존재와 조우를 시도하는 루이스





왜 언어인가?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뜻한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915년 5월 23일 작성한 「노트」 중) ¹


 언어는 곧 세계이다. 가능한 반론들은 이미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화 <컨택트>는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유명한 ‘사피어-워프 가설’ ³ 에 기반을 둔 채로 전개된다. 이는 영화에서 문제의 시작이자 해결의 실마리로 동시에 근거한다. 극 중에서는 대화를 통해 이론을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


“사람의 사고는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형성된다는 학설에 따르자면,
 헵타 포드(미지의 존재)들의 언어를 배우고 있는 루이스도 그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게 될까?" ²

 - 극 중 이안의 대사


 이 대화를 기점으로 영화는 막혀있던 실마리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그들의 언어를 받아들이자 그들의 사고와 세계가 전해져 온 것이다. 하지만 이내 12개국, 아니 12개의 다른 언어 집단 간의 갈등은 도리어 촉발된다. 언어와 세계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미지의 존재와 조우했으나, 여전히 대립하는 지구라는 별의 각기 다른 언어 집단은 예정된 파멸로 치닫기를 멈출 줄 모른다. 어째서일까? 어떤 이유로 언어였으며, 어떤 이유로 언어가 다른 인간 집단은 끊임없이 반목하는가?


*** 외계의 존재가 보낸 언어를 바라보는 루이스와 이안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두었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 놓아 사람들을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 창세기 11장 1-9절 (공동번역)


 도무지 알 수 없다. 이처럼 세계의 언어가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하여 받는 수고스러움을 짐작하자면, 어찌 이리 구분을 지어 둔 것인지를 알 길이 없다. 물론 언어의 다름은 성경의 기록보다는 문명의 발전사에서 답을 찾음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원저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 1998)’ 저자인 테드 창(Ted Chiang)과 영화 연출을 맡은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는 질문을 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영화 <컨택트>는 언어로 미지의 존재와 조응하려는 시도에 더해, 언어가 다른 집단 간에 발생하는 갈등을 극적으로 조명하며, 더 높은 바벨탑을 쌓아 올린다. 차라리 영화는 다름으로 형성된 분절이 허물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까지 전한다. 결국, 영화 <컨택트>에서의 언어는 미지와의 존재와 조우하는 매개물이자, 인간들의 갈등 근거로 기능하며 영화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주요 소재로 작용한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그 미래를 바꿀 건가요?


 이 영화가 SF 장르물의 발전된 상을 보여주었다는 성취 이외에, 한 편의 영화로서 우리의 가슴에 던지는 질문이 있다. 극 중 미래의 딸인 한나(Hannah)가 지닌 예정된 운명, 사랑이 시작되는 시점에 이미 이 사실을 알게 된 루이스와 이안, 그리고 관객에게까지 이 모든 사실을 공유한 채, 영화는 묻는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그 미래를 바꿀 건가요?”


 어떤 영화는 확장한다. 그 확장은 러닝타임 이후의 시간으로 치닫는다. 흔히 “남는 게 있다/없다”로 평가되는 영화 감상법은 이에 기반을 둔 것이다.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하지만 줄거리마저 희미해질지언정, 더없이 아름다운 영화는 하나의 오롯한 질문으로서 남는다. 물론 답변은 각자의 몫이다. 당신이 루이스나 이안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이 영화는 이 하나의 질문만으로도 좀처럼 감상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 극 중 빼어난 연기로 언어학자 '루이스' 분을 열연한 에이미 애덤스









더없이 아름다운 미지와의 조우, 그리고 한 사람에게 권함


 미지의 존재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는 와중에, 관객의 시야를 충만하게 장악하는 미장센의 성취를 빼놓을 수 없다. 이는 단지 미지의 존재가 ‘없어져 버리면 그만’이 아닌, 끊임없는 탐구의 대상으로 인식하게끔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우리를 긍정적 입소문의 주체가 될 가능성을 높인다. 그리하여 본 리뷰 글도 이토록 아름다운 미지와의 조우를 그려낸 영화 <컨택트>를 한 사람에게 권하고자 한다.


*****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예고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소셜미디어 갈무리


 정작 이 영화를 봐야 할, 지구 상의 단 한 사람은 단연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이다. 그가 물리적, 경제적으로 쌓겠다고 공헌한 무수한 장벽들은 영화 속에서 루이스가 그토록 분투하여 허물었던 바로 그것이자, 우리가 미래로 나아가며 쌓는 것이 아닌, 허물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높은 확률로 이 영화는 그의 취향이 아니겠지만, 트럼프의 장벽을 허물어야 할 이유를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만큼은 부디 이 영화가 전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높은 미적 완성도까지 갖춘 영화 <컨택트>의 스틸컷





참고

¹

 - 이승종, 『언어의 한계와 유아론: 청년 비트겐슈타인의 경우』, 철학적 분석 26(2012), pp.1-18


²

 - 나무위키 항목 중 “컨택트”

 - namu.wiki/w/%EC%BB%A8%ED%83%9D%ED%8A%B8


³

 - 위키피디아 항목 중 “사피어-워프 가설”

 - ko.wikipedia.org/wiki/사피어-워프_가설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및 *

 - 영화 <컨택트, Arrival> 북미지역 포스터

 - imdb.com/title/tt2543164/mediaviewer/rm1592199424


*

 - 한국어판 포스터, 네이버 영화 중 “컨택트”

 - 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6869


** ~ *****, *******

 - IMDb 항목 중 “Arrival”

 - imdb.com/title/tt2543164/


******

 - 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화면 캡처

 - 오마이 뉴스, 윤현 기자, 2017년 1월 25일 자 “트럼프 "국경 장벽 건설하라"... 논란 속 강행”

 - 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8319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