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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Apr 24. 2016

슬픈 낙수효과

일곱 번째 지난주



떨어진다는 것


 세상의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고 있다. 이것은 시적(詩的) 감상의 차용이 아니다. 엄연한 과학 법칙의 현상을 나타냄이다. 뉴턴의 사과로 대변되기도 하는 만유인력은 중력을 가장 대표적인 예로 삼는다. 지구와 물체 사이의 만유인력이 지구의 표면 중력과 거의 같기에 ‘중력=만유인력’이라고 이해하기 쉬우나, 사실상 중력은 만유인력의 한 예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과학적인 논거 이전에, 그것이 만유인력이 되었건 중력이 되었건, 이로 인해 목도되는 일차적 현상은 ‘떨어짐’이다. 그리고 이는 낙화(落花)와 같이 그 생이 다하였을 때의 실례(實例)로 인지된 터라, 많은 시인에 의해 슬픔을 환기하는 장치로 사용되고는 했다. 그 때문일까? 지난주, 어떤 떨어짐으로부터 슬픔이 전해왔다.        







슬픈 낙수효과     


 흔히 자본의 흐름은 물의 그것에 비유되고는 한다. 특히 자연 상태에서 물이 아래로 흐르듯 자본도 많이 모인 곳으로부터 빈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라는 믿음은 낙수효과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증폭시켰다. 낙수효과(落水效果, trickle down effect)는 대기업 및 부유층의 소득이 증대되면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 경기가 부양되고, 이로써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소득의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논리이다. ¹ 하지만 많은 사람의 기대처럼 폭포수가 시원하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실제로 IMF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2015년 6월 15일 발표된 보고서 <Cause and Consequences of Income Inequality: A Global Perspective>(소득 불균형의 원인 및 결과)에서 '낙수효과'가 말하는 부의 분배는 틀린 논리라고 밝힌 바 있다. 오히려 '낙수효과'를 위한 경제 정책이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이 보고서는 덧붙인다. ²     


 경제적 난관의 과오를 대기업의 탓으로 돌리는 판단은 수월하다. 비록 그 ‘쉬움’조차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가 낳은 산물이라고는 할지라도, 대기업이 자본을 융통함에 있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잔까지 채워야 한다고 믿는 것은 낙수효과에 대한 오독의 결과이다. 당연히 국가시스템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대상에게까지 기업의 자본이 곧장 흘러가는, 그런 낙수효과는 없다. 그런데 지난주, 기이한 방식의 낙수효과가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그 내막을 알고 보면, 너무나도 먹먹하고, 슬프며 심지어 분노에 이르게 한다.           

* 전국경제인연합회 비전




노인과 탈북자를 위한 대한민국은 없다. 

    

 2016년의 봄, 국가 복지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일당 2만 원에 길거리에 나가 욕지거리를 퍼부어야 하는 광경을 본다. 이를 두고 ‘이보다 더 직접적인 낙수효과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라는 빈정거림조차 마음이 아픈 것은, 바로 이 땅에서 돈으로 사람을 대하는, 아니 부리는 방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자본을 지닌 집단에서 경제적 약자인 노인에게로, 또 더 나약할 수밖에 없는 탈북자에게로 1억 2천만 원이 2만 원이 되는 분배의 과정이, 전후(戰後) 미군이 나눠주는 옥수수빵을 받았더라는 노인들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자 먹먹해진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분단된 조국의 반대편에 살던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온 땅에서 이 같은 처지를 경험할 수밖에 없음에 탄식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빈곤을 겁박하여 가장 연약한 존재의 사람들을 이용한 저열함에 몸서리친다. 노인과 탈북자를 위한 대한민국은 없다.     


** 좌) 돈을 건네는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 사진   /   우) 1961년 당시 미군으로부터 공수받은 옥수수빵을 나누어 주던 모습






     

폭포 앞에서     


 시인 정호승은 특히 폭포를 자주 언급하였다. 그의 시 중 「폭포 앞에서」의 한 구절을 옮겨본다.


끝끝내 흐르지 않는 폭포 앞에서 / 내가 사랑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내가 포기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과연 누구일까? 전쟁을 겪은 세대와 전쟁으로 어려운 생을 부여받은 사람들에게 이토록 잔인하고도 슬픈 낙수를 내린, 그리하여 그 돈을 건네고 또 받을 수밖에 없게끔 내리누른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 그럼에도 이 나라를 사랑한다고,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이토록 저열한 방식으로 대하게끔 만든 이는 대체 누구인가? 그 존재는 사랑할 때와 포기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말할 수 있을까? 떨어지지 않는 폭포의 침묵이 깊다.     


*** 어버이연합 사무실에 걸려있는 박근혜 대통령, 박정희 전대통령 사진




참고자료


¹낙수효과 정의 -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terms.naver.com/entry.nhn?docId=929660&cid=43667&categoryId=43667


²김병현 기자, 2015년 6월 16일 자 오마이 뉴스, [IMF "낙수효과 틀렸다, 오히려 경제 성장 막아"]
  중 일부 발췌 
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18977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돈을 건네는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 사진, 2016년 4월 18일 자 JTBC 뉴스룸 '앵커 브리핑' 화면 캡처


* 전국경제인연합회 비전

 : 전국경제인연합회 홈페이지 fki.or.kr/about/vision.aspx


**좌 - 돈을 건네는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 사진, 2016년 4월 18일 자 JTBC 뉴스룸 '앵커 브리핑' 화면 캡처

   우 - 1961년 당시 미군으로부터 공수받은 옥수수빵을 나누어 주던 모습,
          pluskorea.net/data/pluskorea_net/mainimages/200609/200609103651920.jpg


*** 어버이연합 사무실에 걸려있는 박근혜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

       huffingtonpost.kr/2016/04/21/story_n_97464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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