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여섯 번째 지난주
처음이라 좋았고, 며칠 뒤엔 더 좋았다. 그 생각만으로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정확히 “좋았던 날”은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이후이니 7개월 남짓한 시간이겠으나, 새날이 밝자 이전의 살 떨리게 추웠던 날들조차 다 좋았다. 마냥 좋았다. 지난주, 그 좋았던 나날의 시작이 꼭 한해를 맞이하였다고 한다.
돌아보는 일은 잠시 멈추었을 때야 비로소 가능할 지다. 멈출 수 없는 날들에는 그저 외치고 걸었다. 양말 두 겹과 손난로와 촛불과 사람들과…. 이제야 겨우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지난주」는 「지난주」의 방식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일 년 전 이 엄청난 성취가 움트던 때로부터, LED 초를 고이 보관하게 된 나날까지의 문장들을 긁어 모아본다.
2016년 8월 15일, 광복절이었다. 민족의 경사스러운 이 날은 그해로 꼭 71주년을 맞이하였다. 매년 광복절에는 국가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는데, 2016년의 경축사는 국가의 이름을 대신하는 문장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국가라는 격에 부합하지 않았음이다. 당시의 국가수반은 “신조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조어…. 표면적 내용인즉 국가와 정부를 비하하는 신조어가 들려옴에의 '문제 제기'였으나, 실상 이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이들을 폄훼하는 사실에의 '불만 제기'였다. 맘에 들지 않았을지는 모르나, 불쾌함을 토로할 자리는 아니었다.
이 기이한 투정은 당시 국가 원수의 국가에의 인지 수준을 여실히 드러내었는데, 그해 여름에 일어난 일들은 죄다 이 수준 즈음이거나 그 아래에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훗날 한 대의 태블릿 PC는 이를 또렷하게 증명하였다.- 정운호 대표의 해외 원정도박으로부터 이어진 사건의 나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병우 민정수석에게까지 다다랐고,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검찰에 민정수석의 수사를 의뢰하자 청와대는 대놓고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사드 배치는 그 무분별한 혼선을 여실히 드러내 보였으며, 영남지역에의 오랜 희망 고문인 신공항은 이즈음 기이한 선택지를 집어 들었다. 이 와중에 당시 여당은 건국절 논의만을 목이 터지라 외쳐댔고, 송로버섯으로 대표되는 청와대 호화 만찬까지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그즈음 편지글을 빌린 ‘스물네 번째 지난주’와 수장 없는 현실을 개탄한 ‘스물여섯 번째 지난주’에서 다음과 같이 끄적였다.
스물네 번째 지난주, 「이 여름을 기억해」中
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24
우리의 인생은 누진되지 않는데, 어째서 전기료는 누진되는지. 결혼하겠다는 친구도, 아이를 낳겠다는 친구도 없는데, 정부가 처음 시작된 날은 왜 이렇게까지 문제가 되었는지. 어째서 잘못한 사람을 덮어주는 기사가 연일 터져 나올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이 국모의 너른 마음인지. 강물은 온통 초록빛이 되었다는데, 환경에 관한 어느 행정부처의 수장은 어째서 재정을 담당하던 사람이 될 수가 있는지. ‘애국심’의 ‘심’ 자는 마음 심(心) 자일 텐데, 어째서 내 마음을 이리하라 저리 하라 하는 것인지. 돌이켜보면, 국가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저 내 삶에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나의 월세와 나의 시급과 나의 연애와…….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을 기념하는 경축사를 들으며, 너무 멀리 있는 어떤 이를 무정부주의자와 비교하면서…….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내일이 되면 내일이 보이니까.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보일 테니까. 하지만, 이 여름이 더웠다는 것으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돼. 허상의 비행장에서 참외밭 옆 동산에 이르렀던, 명동의 화장품 가게로부터 파란 지붕 집의 토마토로 이어지던, 컵라면으로 시작해서 송로버섯으로 끝이 난, 이 여름을 기억해. 이 여름을 기억해.
스물여섯 번째 지난주, 「국민은 없다.」 中
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26
지난해 10월, 한 명의 기업인으로부터 시작된 게이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달한 지점은 바로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집무실이 있는 집과, 가장 많은 판매 부수를 올리고 있는 거대 언론사의 대립 양상으로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이제 이 싸움이 시작 단계일 뿐이라며, 팝콘을 들고 뉴스 앞에 앉는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여전히 진행 중인 이 나라의 난제들을 본다. 높아야 할 수치는 낮고, 낮아야 할 수치는 높으며, 강물은 제빛을 잃었다. 이 와중에 우리 아들이 그럴 리 없다는 식으로 제 민정수석을 감싸기 급급한 청와대와, 어떻게든 진흙탕을 만들어 놓겠다는 한 언론사의 대결 양상은 지난주로 막을 내릴 것 같지만은 않다. 만일 진정한 수장이 있다면, 숱한 의혹의 당사자를 품에 안은 채, 언론사가 제 지위 이상으로 걸어 들어오는 청탁과 시비에 힘겨루기만 하고 있을까? 의혹은 실체의 규명으로 해소하고, 부패한 언론사와는 다툼이 아닌 사실관계를 따져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대체 수장이 있기는 한가?
기이한 현실은 시를 읽다가도 치밀려 올라왔다. 김남주 시인의 “이 가을에 나는”을 함께 읊자고 내어놓다가, 당시의 웃지 못할 지경에 결국 자조를 내뿜고 말았다.
서른두 번째 지난주, 「가을의 시」 中
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32
그런데 가을을 노래한 시가 참 많은데, 굳이 오래된 이 시인의 시집에 손이 닿는 것은 대체 어떤 작용 탓일까? 지금은 총칼을 앞세운 서슬 퍼런 독재의 시절도 아닌데 말이다. 도리어 어찌나 보기가 좋은지, 요즘에는 나라의 통치를 앞에 두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 계모임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그 계모임에서는 누구의 딸이 말을 잘 타고, 누구의 아들이 코너링을 잘하는지를 묻는다고 전한다. 얼마나 보기가 좋은가 말이다!
강건했던 시인이 지금 살아계셨더라면, 무슨 말씀을 했을까? 압송차에서 내린 시인은 9년의 옥살이를 하다가, 출옥 후 5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시만이 남아있다. 이 가을, 옛 시인의 노래가 애달프다.
그러다가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과 같이 실체를 지닌 이름자가 등장하였다. 이는 문화를 만만하게 보고, 잇속을 차릴 뒷문 정도로 이 땅의 문화를 제멋대로 격하시킨 참극이었다. 물론 훗날 드러난 참상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었으나, 당시만 해도 키보드 치는 소리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서른세 번째 지난주, 「온갖 것들의 한류」 中
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33
자본을 깔아 무대를 세우고, 인종이 섞여 K-POP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 가운데, 손뼉 치는 사람 가운데에 선 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기만 하면, 프리미엄 코리아가 된다는 이 간편함 속에, 한류니 문화라는 것은 인스턴트 라면보다 우습다. 묻고 싶다. 문화가 그렇게 만만한가?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 오전에는 대통령의 국회연설이 있던 날의 저녁, 한 대의 태블릿 PC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막힌, 믿기 힘든, 참담한 소식이 줄줄이 이어졌다.
서른네 번째 지난주,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中
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34
아무도 모른다. 알 리가 없다.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역사를 뒤져 유사한 사태를 찾지 못할 바는 아니나, 대부분 100년 전까지 거슬러 가야 한다. 이는 적어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품은 기억에는 없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말이 안 나온다. 그냥 웃다가 울다가 한다. 겨우 내뱉는 욕지거리도 이 신묘한 지경에 잘 맞는지 모르겠다. 둘러보면, 어안이 벙벙한 얼굴들뿐이다. 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국가의 최고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껍데기였다니……. 정녕 이것이 무엇인가? 대체 무엇인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정확히 일 년 전 오늘이다. 첫 집회가 있던 날, 그날은 너른 광화문광장도 아닌 좁은 청계광장이었다. 우리의 분노를 담기에는 턱없이 비좁은 청계광장은 진즉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선형으로 이어진 공터의 생김대로 사람들이 줄을 지었다. 그 줄은 그해의 겨울을 지나 이듬해의 봄까지 이어졌다. 3번째 집회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서른여섯 번째 지난주, 「우리가 우리의 언덕이 되어」 中
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36
굉장히 낯선 상대다. 언제고,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이 자는 ‘이 정도 하면, 이렇게 반응하겠지’라는 통념의 바깥에 있다. 그러자 우리 진영에서 웅성거림이 들린다.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 “평화적인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와 같은 논쟁으로 불이 옮겨 붙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것은 괴이한 상대의 의도하지도 않았을 전략에 말려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으레 그러하듯이, 어떤 일을 도모하고자 할 때 더 적절한 방안을 찾고자 함일뿐인데 말이다. 지금은 그저 꾸준히 한 목소리를 내며 밀어붙여야 한다. 그리하여 그 누구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저자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언덕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 풍경은 무섭다. 행진으로는 처음 가는 길을 걸으며 더욱 그러하였다. 그리고 공고한 벽 앞에서 대답 없는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때는 분노가 일었다. 그러다가 웃음 짓게 하고, 눈물 나게 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농민과 세월호 유가족과 장애인과 학생들……. 우리는 구획을 나눌 것도 없이 서로 뒤엉켜 한 목소리를 내었다. ‘산 자여 따르라’고 외치지 않아도, 이 거대한 모순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촛불을 밝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에 함께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보아라! 그자가 자괴감을 느낄 때, 우리는 자부심을 느낀다. 하찮은 자괴감을 위대한 자부심이 이긴다. 이렇게 우리가 이긴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었다.
서른일곱 번째 지난주, 「끝까지 간다.」 中
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37
광장에 서면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외치지만, 하나의 소리를 낸다. 각자의 마음으로 반(半) 족적만 더 들어가도 지닌 생각들과 대처라는 것이 다를 터인데, 당장 눈앞의 불 꺼진 청와대를 향한 구호는 일관되고, 또 단호하다. 그렇다. 질 것 같지 않다는 기운은 우주가 아닌 광장에서 온다. 그리고 광장의 밖에서는 하루하루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다. 언제는 하루아침에 끝이 날 것 같다가도, 또 언제는 막연해진다. 이럴 때는 특검의 일수(日數) 같은 것을 세지 않더라도, 그저 길게 가겠거니 생각하면 편하다. 장기전이다. 겨울을 맞이하듯, 장기전을 대비한 채비를 해본다.
이 글을 작성하는 와중에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거부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또 벽을 보고 외쳤나 싶어 마음이 지친다. 하지만 지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의 길은 더욱 춥고, 울퉁불퉁하며, 그 끝이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따로 앞장선 사람도 없다. 내 앞이 지치면 내가 앞에 서고, 내가 지치면 내 뒤가 앞에 선다. 그렇게 꾸준히 밀어내자.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통령을 압박하는 수밖에는 없다. 우리가 모여 외치는 중에도 야당과 언론 또한 제 길을 가 줄 것으로 믿는다. 설령 누군가의 조처가 우리의 기대에 미흡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간다. 끝까지 간다.
촛불을 들다가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서른여덟 번째 지난주, 「한국사회와 그 적들」 중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38
이 적들의 명백한 죄목은 ‘헌법 유린’과 ‘국정농단’ 정도로 포괄할 수 있다. 물론 이에 관련된 사항만에라도 적합한 형벌이 매겨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법적 처벌의 너머에도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부가적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사람들의 꿈은 흐려지고 있었으며,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가장 급변하였으며, 다가올 문제에 대비해야 할 중차대한 시간에 한국사회의 적들은 너는 대통령하고 나는 비서실장을 하겠다며, 소꿉놀이나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돈만큼은 가짜 돈이 아닌 진짜 세금으로 야무지게 나눠 먹으며 흘려보낸, 이 시간의 미필적 고의는 대체 어떻게 따져 물어야 한단 말인가!
너희들 때문이라도 우리는 많이 바쁘게 생겼다. 제발 좀 빨리 비켜라.
그 이후로도 긴 싸움이 이어졌다. 서서히 봄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촛불이 쉼 없이 겨울을 지새운 덕분으로 어느덧 봄이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그 끝이 보였다. 조금만 더 힘을 내었으면 했다. 거의 다 왔다. 거의 다 왔다.
쉰 번째 지난주, 「봄이 오는 풍경」 中
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50
위험하지 않을까? 봄을 운운하는 것이…. 국기에 노란 피아식별 띠를 달아야 하는 시절에, 지나친 낙관은 아닐런가 말이다.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속에 봄기운을 가득 채워 두는 이유는 사실 어떤 확신 때문이 아니다. 작게는 조금은 지쳤을 촛불에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고 싶어서이고, 크게는 어떤 만약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흩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투표소로 향할 그 날을 손꼽아 보자. 이는 설령 봄이 저절로 오지 않더라도, 봄이 오게 하겠다는 의지를 포함한다. 그래서 일부러 더 들떠 있으려는 것이다. 만에 하나 우리의 봄을 막으면, 그 전환의 에너지로 봄을 데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봄이 움트고 있다! 이 미천한 필부는 철석같이 그리 믿으련다. 희망이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먼저 희망할 것이다! 그리고 설령 봄이 오지 않으면, 그 믿음이 무너진 크기만큼의 뜨거움을 안고, 다시 우리의 봄을 찾아올 것이다!
풍경은 반드시 답을 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리고 비로소!
쉰세 번째 지난주, 「눈부시게 찬란했던 촛불의 순간들 (1)」 中
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53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변주를 이끈 것은 접속사였다. 나는 ‘그러나’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모국어를 공유하는 마음들은 쥐었다 펼쳐지기를 반복했지만, 번민과 고뇌로 눌러쓴 활자 앞에 이내 숙연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담담하게 읊어 내려간 문장들이 그 종국에 이르렀다. 어떤 서술어는 너무나 단호해서, 그 자체로 대상의 종언(終焉)을 적시하였다. 그렇게 끝이었다. 긴 겨울이었다. 참으로 기나긴 겨울이었다. 그러나! 그 겨울의 시작은 모두에게 달랐다. 가깝게는 무능과 비리에의 분노로부터, 반칙과 특권에 대한 항거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외침으로부터, 그리고 아직도 바닷속에 있는 한 척의 배로부터, 심지어는 그자의 부친으로 인한 상처로부터……. 한 번에 끝났으나, 모두가 그 시작을 달리했던 겨울이었다. 기나긴 겨울의 끝이었다.
쉰네 번째 지난주, 「눈부시게 찬란했던 촛불의 순간들 (2)」 中
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54
정말 봄일까? 진정한 승리일까? 가능한 의문들을 알고 있다. 질문들은 아직은 끝이 아니며, 따라서 경계 태세를 늦출 수 없음을 주지한다. 맞는 말이자, 적확한 지적이다. 여전히 범죄자는 은폐를 위한 수를 짜고 있고, 수사의 칼자루를 쥔 자들과 앞뒤가 똑같은 이름의 공모자는 이해를 공유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는 주동자를 지지한 정치인들이 또 한 번 기회를 달라며 넥타이를 고쳐 매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되, 완전한 봄은 아니다.
그러나! 이 성과의 유례없음을 떠올려보라! 얼음을 깨고, 또 깨어나가며 결국 결실에 이른 숱한 순간을 기억해보라! 우리는 이를 기리고 함께 환호할 필요와 자격이 있다. 무엇보다, 더없이 평화롭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범죄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그렇게 등장한 새로운 세대의 출연을 반갑게 맞이해야 한다. 봄은 왔다. 하지만 계절이 그렇듯, 다시 또 겨울은 올 것이다. 그러나! 이 값진 승리의 경험은 다음 겨울에도 이길 수 있다는 호연지기 이전에, 함부로 우리의 겨울을 이토록 혹독하게 만들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로 작동할 것이다. 승리의 기억을 지닌 세대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 기억 이전과 이후는 같을 수 없다. 우리는 어느 계절이건,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세월호가 올라오더니, 동시에 그자가 가라앉았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도 치러졌다.
쉰여섯 번째 지난주, 「이것이 세월호의 시작이다.」 中
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56
"이게 마지막이 아니고, 이제 세월호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_ 미수습자 가족 허다운 양 아버지 인터뷰 중
그렇다. 세월호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첩첩산중이다. 아직 배 위에 있는 세월호를 온전히 뭍으로 옮기는 일로부터, 모든 미수습자를 수습하고,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며, 관련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극적인 차원에서 국가의 재난대비 및 구호의 시스템을 정비하고,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는 일까지 소명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너무나도 막중하고 거대한 숙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가 일련의 과제를 능히 수행하고 더 나은 사회를 이룬다면, 도리어 그러할수록, 세월호 희생자의 덕분이라는 사실은 더 자명해진다. 그렇다면 그분들에게 더 미안하고, 그렇기에 눈물로서 더 고마워해야 하는 지경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 우리가 언제까지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을까? 더 나은 사회가 그분들이 겪은 비극으로부터 기인했다는 복잡한 감정이나마 언제까지나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잊지 않을 수 있을까?
다시 반성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억할 것이다. 세월호는 이제 시작이다.
예순한 번째 지난주,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희망 대일 내일이 있었더면」 중
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61
지켜볼 일이다. 광장이 투표장으로 이어지고, 촛불이 새날까지 밝힐 수 있을지를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련의 사태에 대한 관찰자인 동시에 주체이다.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도, 직접 움직여야 한다. 이 동력의 근간이 가깝게는 지난 시간의 기억과 향후에의 응시에 있다고 믿는다. 이에 근거하자면 기억할 시간이 며칠이 지났거나, 응시할 시간이 몇 년이 남았건 당신은 이를 온전히 극복한 채 새로운 내일을 이룰 수 있는 선택을 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지하는 후보의 지지율 정도와 관계없이, 그것을 실현하거나 뒤엎을 수 있는 유일한 실천은 당신의 투표이기 때문이다. 통계라는 학문 혹은 기술의 발전이 실제로, 혹은 반대로 일어나게 할 수 있는 힘은 오롯이 당신의 근육에 있다.
모두 투표하려는데 괜히 이런다 싶다. 졸문 따위 사문 됨이 뭐 어떤가! 그저,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희망 대일 내일이 있었더면! 우리에게 우리의 희망 대일 내일이 있었더면!
마침내, 희망 대일 새 정부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촛불이 선출한 새 대통령은 그 성정(性情)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는 명백히 복수해야 할 대상이 있음에도 복수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저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그러자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희망이 움텄다.
예순두 번째 지난주, 「복수는 나의 힘」 中
_ https://brunch.co.kr/@taeeunlastweek/62
친구가 남긴 큰 숙제를 받아 든 이는 그것이 복수만으로 완성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복수'가 목적이 아닌, 과정 중에 수반되는 것임을 또한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하여 그의 복수를 명명하자면, 그가 선거 기간 중 사용한 표현을 빌려 ‘압도적으로 성공하는 정부’가 되는 일이겠다. 이를 위해서는 미래상을 반듯하게 제시하기 이전에, 이전의 그릇됨을 바로 잡아야 할 터이니 부조리를 청산하는 시도는 불가피하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도 얼마든지 복수가 가능하니 어려울 일도 없겠다. 그리고 이전 또 그 이전의 정부에 비해 압도적으로 품격 있게 성공하는 정부의 탄생은 복수의 대상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시민의 힘에 의해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그의 의지처럼, 그만의 복수를 할 것이다. 물론 응원하련다. 이렇게 멋진 복수라면 응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 복수는 그의 힘이자, 곧 나의 힘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일 년 뒤의 오늘은 어떠할까?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생의 시계추는 예측과 계획을 비웃으며 어긋날 터이고, 나는 변명과 자조가 가득 찬 문장들로 그 허망함을 메울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알 수 없다. 처음으로 촛불을 들던 날, 오늘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본래의 일정대로라면 아직도 그자들이 이 땅의 최고 권력이라며 으스대고 있었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생의 불확실성에 감사드려야 하는가? 아니다. 비탄은 도둑처럼 왔으나, 희망은 강인한 의지로 예정된 새벽처럼 밝았다! 그리하여 내 감사 인사의 정처는 불확실하지 않다. 명확하다.
감사드린다. 이 찬란한 시절을 함께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저 수많은 촛불 중 하나일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부족하나마 문장들을 보탤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일 년이 지나 이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그해 겨울은 오래도록, 아니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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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2017년 10월 21일 자, “‘촛불 1주년’ 다시 불 밝히는 광화문광장…개혁·적폐청산 요구”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54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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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디지털뉴스룸, ‘논리의 오류’ 편 화면 캡처
- https://www.facebook.com/jtbcd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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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 2016년 10월 24일 자, 다시 보기 화면 캡처
-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40643&pDate=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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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 집회 필자 촬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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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언론 민플러스, 강호석 기자, 2017년 2월 18일 자, “16차 촛불에선 어떤 구호가?”
- http://www.minplus.or.kr/news/articleView.html?idxno=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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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뉴스특보, "대통령 탄핵 심판" 생중계 화면 캡처
- http://news.jtbc.joins.com/html/073/NB114360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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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털 사이트 “다음” 모바일용 화면 캡처, 2017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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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2017년 5월 10일 자, "취임식 마치고 청와대로"
- http://www.yonhapnews.co.kr/photos/1990000000.html?cid=PYH20170510174200013&from=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