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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하늘 May 29. 2017

도덕적 가치

   이 글은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책의 극히 일부를 읽고 정리되지 않은 채 쏟아져 나오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정리한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거나, 극단적 생각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혹시 읽는 이들 중 나의 헛소리에 너무 마음 쓰지 않기를 바란다.


   "도덕적 책임을 다할 때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중


   만약 세상에 나 혼자 존재한다면, 도덕성은 필요 없을지 모른다. 내가 한없이 악해진다고 해도, 자연을 파괴하고 생명을 죽인다 해도 피해를 보는 것은 온전히 나뿐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하고 악한지에 대한 구분도 없어질지 모른다.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함께 살아간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 나 외에 다른 인격들이 함께 공존한다. 그리고 내가 싫거나 불쾌한 것이 있듯, 그들도 그들의 마음이 있고, 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듯 그들도 자신의 생각이 있다.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서로의 생각과 마음, 가치를 배려하는 것이 도덕의 범주에 있다 하겠다.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함께함 속에서 관계를 맺는다. 때로는 개인적인, 또 종종 여럿이 모인 공동체의 격으로.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갖는 영향력이 생긴다.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과 횡당보도에 나란히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과 기다리는 것이 다르듯 서로의 마음과 감정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지나가다가 도를 아십니까를 묻는 사람은 불쾌하지만 친구가 자신의 신념이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조금 거부감이 들더라도) 무슨 말을 하나 들어보게 되는 것처럼 생각과 가치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꼭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만 영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친구 연인, 후배가 선배에게, 학생이 교사에게, 우리는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가르치며, 서로에게 어떤 영향력을 갖는다.


   그렇기에 더 많은 이들과의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을 영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일방적인 (나는 상대를 모르지만 상대는 나를 알거나 좋아하는) 관계들도 많이 생기게 된다. 대표적인 예라면 연예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아이돌 가수들이나 예능인들의 말과 행동이 그 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크게 파고들지 않아도 당연하게 느낄 수 있다. 비슷하게 누군가가 꿈꾸는 자리에 올라간 이는, 그 모든 누군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서울 대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 사람의 말 한마디가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갖거나,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취준생이나 대기업의 인사담당자가 여전히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의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듯 말이다.


   문제는,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더 큰 영향력을 갖는 자리에 오를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주로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그 영향을 인지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이용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말한 도덕적 책임으로 치자면, 영향력이 커질수록 더 높고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가져야 마땅하다. 자신이 관계 속에서 다른 이들에게 미칠 수 있는 생각과 마음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인지하고, 다른 이들이 나와 같은 존재이자 인격임을 인지한다면, 그들은 그러한 부분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 이유는 갈수록 강화되어가는 자기중심주의 탓이라 말하겠다. 


   우리는 각 개인의 개성과 의견이 존중받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가치 자체는 충분히 좋은 것이라 생각하나, 모든 가치와 사상이 그렇듯 이타성이 없이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지면 변질되어버리고 만다. '다른 이의 개성과 의견을 존중해야지'라는 마음이 아닌 '너는 나의 개성과 의견을 존중해야 해'와 같은 마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에 대한 존중, 인권, 자유와 같은 단어들은 자기중심주의 사상을 강화시키기에 너무 좋은 도구가 되어버렸다.

   또 한 가지는 우리의 교육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자에 대한 관용을 가지고 살아가는 도덕적 가치들까지도 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 어느새 성품과 인성에 대한 이야기보다 시험 성적과 경쟁이 자리 잡고 있는 우리의 학교들이다. 정확히는 그런 교육의 문화 속에 학교의 교사들도, 학생들도 모두 피해자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그것이 내가 나의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을 변화시키고 싶은 이유이다.


   우리는 모두 도덕적 가치를 품고 있다. 무엇이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옳은 것인지 대부분의 경우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가치를 지키지 않아도 문제없이 살아가는 인생 속에, 모두가 지키지 않기에 그것들을 지키려 하는 내가 바보 같아지는 것만 같은 세상 속에, 조금씩 그 가치들이 흐려져가고 있다. 어제 길을 가다가 횡단보도에서 빨간 불인데 차가 없다며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것 같은 아이의 손을 잡고 뛰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 아이는 앞으로 신호를 (좀 더 비약해보자면, 세상이 정한 도덕적 혹은 법적 규칙들을) 지키며 살아야겠다는 도덕적 책임을 가질 수 있을까를 잠시 걱정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개인의 이익, 오직 나만을 생각하는 자기중심의 가치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되살려야 한다. 세상이 급변하고 때로는 경쟁이 과열된다 해도, 우리가 인간으로서 결코 지켜내야 할 가치들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꼭 깃발을 들고 광장으로 나아가 정의를 외칠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그런 역할을 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겠지만,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다. 단지 내가 가진 관계, 내가 가진 영향력 속에서 나의 존재가 그런 가치들을 담고 있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혹시 가능한 상황과 여건 속에서 그런 자신의 가치를 자신의 관계 안에서 독려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또 누군가 내가 옳다 여기는 정의를 위해 깃발을 든다면 거기에 기꺼이 동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틴 루터 목사가 워싱턴 광장에서 'I have a dream'을 외쳤을 때, 그가 외치는 정의에 동의한 25만의 군중이 함께 모여 그 신념이 선포되는 것에 동참했듯이 말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나의 도덕성을 점검해야 한다. 나도 모르게 경시하게 된 나의 도덕적 책임은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세상에 무너진, 다시 세워야 할 도덕적 가치는 무엇이 있는지 계속해서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 얼마의 수입을 창출해냈고, 내가 소비할 수 있는 정도아 얼마인 지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지속적이며, 장기적인 인간다움을 우리에게 줄 것이라 확신한다.


   계속해서 우리의 도덕성을 가다듬자. 무뎌지지 않도록, 매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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