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했을 이별에 대한 이야기
네가 생각이 날 때마다 한 알씩 집어먹은 초콜릿이 한 통, 두 통 쌓이더니 결국 박스째 사놓은 초콜릿을 하루 만에 전부 먹어버렸다. 수 백 번 너와 나눈 대화를 열어보고, 올려보고, 되뇌이며 웃지만, 마치 끊어진 철로처럼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음에 그 결국이 슬프다. 하고 싶은 말, 아직 못다 한 수 천의 단어들이 머릿속에 가득하지만, 모든 것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더 이상 무엇 하나 건넬 수 없는 우리가 되었다.
사랑을 하지 않았으니 이별을 한 것이 아니다. 시작한 적이 없으니 끝낼 것도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그저 그저께와 같은 어제였고, 어제와 같은 오늘일 뿐이다. 그런데 왠지 오늘은 침대를 벗어나기가, 잠에서 깨어나기가 두려웠다. 현실이 미운 탓이었다.
좋다며 흥얼거리던 노래들이 가시처럼 돋는다. 그 가시들이 혈관을 타고 흐르듯 온 몸을 찌른다. 언젠가 썼던 "사람은 떠나가고 향기는 머문다, 그 향기는 악취가 돼 자취를 남긴다"는 가사가 차라리 나의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그리도 미운 그대가 머물고 간 자리는 여전히 봄처럼 향기롭다.
계절처럼 불어와 내 마음을 스치고, 분홍 같은 미소로 나를 보며 웃어주던 그대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꿈. 그래, 그대는 모든 것이 꿈이라고 했다. 깨고 나면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현실을 살다 보면 자연스레 잊혀지는 꿈.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날 수도 있겠지만, 아마 아예 없던 것이 될 가능성이 더 큰 꿈. 아직까지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나 보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거리를 걸어도 온통 그대와 함께 했던 그 짧은 날들의 기억으로 되돌아온다. 빌어먹을 회귀본능이다.
소설. 나는 그대와 내가 소설 같다고 했다. 그래 봐야 주인공들 옆에서 행인 1, 2 정도의 단역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소중한 그런 마음들. 그 모든 것이 허구이고, 그 모든 것이 상상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깊게 몰입한 소설. 누군가는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겠다고 노래했지만, 나는 이 소설을 끝내지 않으리라. 세상 모든 종이가 다 검은 글씨로 가득 차기까지 글을 쓰고 또 써내려 가리라. 그리고 그 속에서 그대와 함께 영원한 아름다움을 그리리라.
많은 걸 바란 건 아니었다. 그저 그대와 손을 잡고 공원을 걷고 싶었을 뿐이다. 영화를 보고 그대와 영화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 보고 따뜻한 차 한잔을 함께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대가 힘들 때, 그대의 마음이 울고 있을 때 기댈 수 있도록 옆에 있어 주는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을 뿐이다.
시작한 적 없으니 끝난 것도 아니다. 가졌던 적 없으니 잃은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그저 매일과 같은 오늘일 뿐이다.
누군가의 죽음에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가는 듯 하지만, 이름 없는 한 사람이 마지막 앞에서도 어떤 누군가의 세상은 무너져 내리듯, 한 관계의 결말도 누군가에게는 전부가 무너지는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아마 그대는 이해할 것이다.
그렇게 어느 날, 한 관계가 죽었다. 내가 사랑하는 어떤 관계가 죽었다. 그리고 어떤 누군가의 세상이 무너졌다.
관계의 죽음 앞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