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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하늘 Aug 01. 2020

[소설] 다이몬의 지혜

    샤워를 하다가 머릿속에 잠시 머무른 짧은 한 문장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버렸고, 나는 잡을 새도 없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그 문장을 통째로 놓쳐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은 내 의식이 닿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무의식 어딘가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아차- 하는 순간 잃어버린 유레카를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아도, 몸부림칠수록 더 빠져드는 모래늪처럼 더 길을 잃었다. 무언가 나의 인생에 중요한 깨달음을 주는 문장일 것으로 추정되는 ‘생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까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꼭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먼 옛날 그리스 시대에는 사람이 가지는 천재성Genius이 사람 안에 내재되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보낸 어떤 영적인 존재’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 천재성Genius은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 우리 마음, 생각, 손과 머리에 심어주는 신비한 힘을 가진 존재였고, 그런 영적 존재를 ‘다이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산파술의 대화를 이어갈 때, 종종 자신에게 머무는 다이몬이 어떤 질문을 던질지 알려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니, 우리가 말하는 천재라는 사람들은 사실 신이 은밀히 숨겨놓은 다이몬의 비밀을 발견하고 이들과 소통하는 메커니즘을 잘 이해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 샤워부스에서 나에게 머문 생각은 단순한 잡념이 아닌 다이몬인 것만 같았다. 무언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지만, 더죽따 - 더워 죽어도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사람 - 인 탓에 과하다 싶게 뜨거운 물 때문인지, 아니면 물의 열기로 너무 습해진 부스가 숨이 막힌 탓인지, 찰나의 사이 떠나가버리고는 돌아올 줄을 몰랐다.



‘다이몬들은 고온에 약한가...?’



    천재성을 주는 다이몬이라는 영적 존재가 박테리아의 한 종류일지도 모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며 샤워를 마쳤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이니, 그렇게까지 멍청한 발상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손으로 스윽 닦은 거울 속에서 이런 걸 가지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내 표정이 더 어처구니가 없어서 목욕 가운을 휙 둘러 입고 밖으로 나왔다. 습기가 차 후덥지근한 화장실 안과 다르게 에어컨을 틀어놓은 거실은 망고빙수처럼 시원했고, 답답한 마음도 한결 나아진 해방감을 느끼는 듯했다. 여전히 떠오르지 않는 ‘생각’과 ‘천재’라는 단어들은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천재...  천재는 무슨.’


     누구나 그렇듯 한때는 내가 천재라고 착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 봐야 시험 점수가 조금 높았던 것뿐인데,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똑똑한’ 영민이가 중학교로 올라가서도 성적과 등수를 유지하니 ‘천재’ 영민이가 되어있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순간부터는 ‘엘리트’ 영민이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결과를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 기분이 좋았던 건 초등학교까지였던 것 같다. 그 후에는 복싱 챔피언이 방어전을 치르듯, 매 시험이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내 전교 등수를 수호해야 했고, 분명 내 친구 명진이의 부모님은 잔치를 벌이고도 남을 석차인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시며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하자’라는 말만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고등학교 입시가 문자 그대로의 지옥이었던 것을 아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은 OO외고에 합격했다는 결과만을 보고 있으니까. 연말 시상식에서 배우나 가수들이 수상소감을 말할 때면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흐르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과정은 결국 본인밖에 모르는 거니까. 남들은 다 부러워하는 - 그놈의 남들, 남들 -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울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무너지고를 반복해야 했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똑똑하지도, 천재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공황장애를 앓을 정도로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던 시기였다.

    그렇게 한 때 천재라 착각했던 범인으로 어느새 20대의 후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인생이라는 게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것이 없음을, 오히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 투성이의 매일들 사이에 간헐적으로 만나는 내 뜻대로 되는 작은 행복들이 숨어있는 보물 찾기를 닮았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었다. 여전히 지겹게도 따라다니는 ‘엘리트’와 ‘특목고’라는 꼬리표는 내가 진로를 선택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불필요하게 높아지는 기대치와 이를 뒤따르는 실망감의 연속이 내 자신감을 무너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 반짝했던 천재라는 착각을 만든 것이 내게 머문 다이몬의 농간이라기에는 너무 잔혹한 일련의 과정이었고, 나는 이 나라의 교육 시스템의 수 십만 피해자 중 하나로 나를 정의해버리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옷깃만 잠시 스친 다이몬마저도 인연이라며 찌질하게 붙잡고 있는 나의 생각들이 민망하면서도, 그만큼 간절한 타이밍이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일단 미뤄두고 받아주는 곳으로 들어간 첫 직장을 상사와의 갈등으로 때려치우고 나서야 이제는 죽이 되는 탄 밥이 되든 내가 원하는 직장을 가겠다고 다짐하던 요즘이다. 이 말을 듣고 ‘네가 원하는 직장은 뭐냐’며 툭 던진 명진이의 질문에 머리가 멍해진 게 바로 어제의 일이었고, 오늘 샤워를 하는데 어떤 생각이 나를 스쳤다면, 그게 신이 보낸 영적인 어떤 현상이라고 되뇌며 믿지도 않는 신을 붙잡을 만큼의 간절함이었다. 구질구질하게 있지도 않는 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나를 비참하게 만들 생각이야 없다만, 만약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신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라면 놓쳐서는 안 되는 오늘이므로.

    생각을 이어가기 전, 일단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신이고 다이몬이고 일단 나가야 했다. 취준생에게 아침의 게으름은 죄악이라고 속삭이는 양심의 소리보다 더 빠르게 귀를 울려댄 것은 엄마의 잔소리였다. 직장을 그만두고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다시 기어들어 온 아들에게 이쁜 구석이 어디 있겠는가? 애처롭고 한심하다는 마음을 표정 가득 담아놓고는 감정을 잔뜩 억누른 목소리로 애써 다정하려는 엄마의 노력이 고마웠다. 직장을 그만두고 번아웃과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엄마 친구 아들을 걱정하며 혀를 차던 엄마는, 내가 퇴사를 결심하자마자 서재를 비워 방을 만들어주었고,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는 그 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주저앉도록 가만 두지 않았다. 나를 깨우는 엄마의 말투는 다정하지만 단호했고, 퇴실 시간이 정해진 호텔에 머물듯 이전 회사 출근 시간에 맞게 집을 나서야 했다. 보통은 동네 카페에서 구인 사이트를 뒤지거나 자소서를 적어 내려갔지만,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면 생각을 비우기 위해 집 앞 탄천을 정처 없이 걷기도 했다.

    오늘도 그랬다. 다이몬이 두고 간 선물을 되찾겠다는 마음으로 탄천 산책로를 따라 정처 없이 걸으며 산개한 생각의 조각들 사이를 항해하기 시작했다.

    미래, 진로, 취업, 꿈...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단어들을 읊조리다 보니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각각의 다른 뜻을 가진 단어들이 동의어가 되어버린 순간 나의 불안이 시작된 것만 같았다.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을 상상 해대며 꾸던 꿈은 어느새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되었고,  내가 살아가는 여정을 의미하는 진로는 이력서에 나열되는 직장들의 리스트로만 정의됐다. 어리던 어느 날에는 희망과 설렘 가득했던 단어들은 취업, 취업, 취업, 취업...으로 변해있었고, 성공 혹은 실패가 명백히 정해진 취업이라는 단어의 뒤에 준비생을 붙여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을 향해 노력하는 중이라는 위안을 하는 나 자신이 애처로워 보였다.



    ‘내 꿈이 뭐였더라...?’
    ‘직장 말고 취업 말고,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 걸까...?’



    뻔한 생각들 사이를 오가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보니 다리가 아파 벤치에 앉았다. 나란히 서서 산책하는 어르신들과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는 건장한 형님들, 꺄르륵 웃으며 손을 꼭 붙잡고 걷는 남녀의 다정함까지 다양한 군상들을 멍하니 앉아 구경했다. 열심히 각자의 방향대로 나아가는 사람들 사이 지친 채 멈춰 서서 앉아있는 지금의 내 상태가 영락없이 내 요즘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리가 풀려 일어서지 못하는, 동시에 걷고 뛰는 이들을 보며 나도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불안해하는.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처럼, 익숙해진 불안은 간절히 없어지기를 바라는 동시에 없어지면 허전할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나는 벤치에 앉은 채 마치 태어나 단 한 번도 불안하지 않았던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 감정에 머무르며 온갖 개연성 없는 불안과 공허의 상념들을 늘어놓았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말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한 채 허공에 흩날렸고, 급하게 먹은 술을 토해내듯 단어들을 다 게워내고 나서야 다시 안정을 차을 수 있었다. 갈무리되지 못한 생각들은 이제는 기억도 안 날 것들이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떤 의미 있는 말이었다면 어쩌랴, 다이몬의 그 말처럼 내 손을 떠나고 나면 없는 것이 되는 것을. 그저 한참을 쏟아내고 나니 속이 조금은 개운해졌다는 느낌 정도는 남아 있었다.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내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다시 되짚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주 걷는, 금방 걸어온 익숙한 길이 오늘따라 왠지 낯설었고, 그 감정이 왠지 나쁘지 않았다. 길은 내 앞뒤로 끊김 없이 이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길 위를 항해했다. 어떤 생각으로 걷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같은 길 위를 걷는 각자는 달랐다. 나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익숙한 낯섦의 위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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