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세상
"애기애타"
얼마전 방영 된 무한도전에서는 LA 특집을 가장한 '도산 안창호 선생 특집'을 선보였다. 방속 속에서 멤버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도산공원이나 두어 번 걸어봤지, 안창호 선생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음에 부끄러웠다. 더욱이 해외에서 한국 사람들끼리만 모여다니는 것이 그리 좋지 않다는 생각에 LA 한인 타운을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었는데, 그 기반이 한국의 독립 운동에 있었다는 것에 놀라고, 그 공동체와 문화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무튼. 방송에서 역사 속 많은 사건들을 듣고 배우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지만, 그 중에도 내 마음에 가장 깊게 남은 것은 스치듯 지나간 도산 선생님이 남기신 액자 하나였다.
애기애타 - 진심으로 자기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이롭게 할 수 있다.
언젠가 이런 비슷한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나름 죽음을 대면하며, 또 사람들과의 관계를 고민하며,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며 얻어 낸 값진 결론이었으나, 역시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구나- 를 다시 한 번 느낀다. (이래서 선조들의 지혜와 명석을 배우고 탐구하는 것이 중요한가보다.)
나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기반으로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어찌보면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의무이자 특권이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목격하기조차 힘든 것이 그 사랑이다.
얼마 전 조카가 태어났다. 건강상의 이유로 바로 달려가 만나볼 수 없었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으로 보기도 전이었지만 나는 알았다. 이 아이의 외모가 어떻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이든, 이 아이는 그 존재 자체로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했다. 내가 사랑하는 형의 아이라는 이유로, 아니 어쩌면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라는 이유로 세상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뒤틀린 사고방식을 가진 부모가 아닌 이상, 모든 아이들은 그런 존재로 태어났을 것이다. 부모의 소중함으로. 사랑스러운 존재로. 다양한 환경과 상황들로 인해 앞 길이 막막한 탄생이라 할지라도, 그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은 한결 같다.
그런데 묘하다. 분명 태어난 아이를 향한 사랑이 부모의 눈빛에 가득한데, 초등학생 아이를 둔 부모님만 만나봐도 어느새 그 눈빛은 사라지고 수심만 가득하다. 아이가 영어 성적이 자꾸 떨어진다. 이번에 수학을 30점을 받았다. 어느덧 그 누구보다 먼저 내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그 소중함과 사랑스러움을 앗아간다. 그리고 부모를 가장 의지하고 의존하는 아이는 자연스레 그 가치를 배운다. '아, 난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가치 없는 존재구나'를 학습한다. 물론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님이 진짜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경 쓰는게 뭔지'를 단숨에 알아낸다. (초등학교 고학년 부모님만 되도, 친구들과 통화할 때 '아이가 나를 보고 웃는데 어찌나 사랑스럽던지'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우리 애가 이번에 수학 100점 받았잖아요'를 자랑하지.)
그것은 그 부모님들이 그런 부모님들의 밑에서 자랐기 때문일수도 있고, 이 사회가 강조하고, 어쩌면 강요하는 경쟁 사회의 어쩔 수 없는 부산물일 수도 있다. '뒤쳐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부모님들의 말을 많이 듣곤 한다. 그 말이 이해되지 않는 건 또 아니기에, 함부로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존재 가치가 아닌, 내가 내는 결과, 성적의 가치로 나를 판단하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나의 성적, 나의 소유, 나의 결과들에 집착하게 된다. 주위를 둘러봐도 모두가 그런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는 부모님이 그런 가치를 살아내고, 또 나에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렇게 사랑이 아닌 경쟁만을 배워가는 문화 속에서, 나를 향한 사랑 자체를 목격하기조차 어려운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그렇기에 배우기가 참 어렵다. 말로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모두가 말하지만, 진짜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는 이는 적기 때문에.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나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가치를 가르치고 살아낼 줄 아는 가정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거기에는 부모의 역할이 클 것이고, 교사의 역할이 클 것이다. 가정이 가르치는 가치와 학교가 가르치는 가치가 합치되어 사랑을 가르칠 때, 아이들은 분명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정서적 안정과 자애심, 그리고 이타심을 갖게 될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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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요즘 '사회정서학습(SEL: Social Emotional Learning)'에 대한 간단히 연구를 하는 중인데, 역시 학생들의 사회정서적 안정과 자기인식-자기관리-사회적인식-관계기술-책임감있는 의사 결정으로 이어지는 사회정서학습의 핵심 역량들을 배우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축이 되는 것은 학생들을 향한 가정과 학교의 사랑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