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네가 이 편지를 읽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래도 그냥 쓰고 싶었고 남겨두고 싶었어. 너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혹시라도 네가 나중에 커서 볼 수도 있으니까. 그때는 꼭 말해주고 싶거든. 너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가 모두 얼마나 행복하고 벅차올랐었는지, 그리고 그만큼 얼마나 불안했었는지 말이야. 언젠가 나중에 네가 스스로 별거 아닌 존재처럼 여겨지거나, 사랑받고 있지 않다고 느껴질때, 그때마다 이 글을 읽었으면 해서.
엄마아빠는 너를 만나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 너를 정말 정말 갖고 싶었거든. 결혼한 순간부터였으니까 아마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3년 전부터일거야. 우리는 너를 만나기 위해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건 다 시도해봤어. 그 중에 가장 큰 건 시험관 시술이었지.
시험관은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하는거야. 병원에서 엄마 몸 속에 있는 난자와 아빠 몸속에 있는 정자를 빼내서 두개를 결합시키는거야. 그렇게 아기가 만들어지는 거거든. 그런데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가 아기를 만들기에 그렇게 좋지는 못했나봐. 다른 사람들은 아무 노력을 안해도 척척 생기는 것 같은 아기가 엄마아빠는 3년을 넘게 노력해도 생기지가 않았거든. 물론 3년 동안 운이 좋게 2번 아기를 만난 적은 있었는데, 모두 건강하지 못했는지 하늘나라로 보내줄 수밖에 없었어.
그 아기들을 하늘나라로 돌려주는 건 엄마아빠에게 인생에서 굉장히 힘든 일 중 하나였어. 엄마는 매번 많이 울었고, 아빠도 티 내지는 않았지만 아마 속으로 울었을거야.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한동안 엄마아빠는 아기가 없이 지내는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아. 그러다가도 결론은 언제나 너를 만나고 싶다는 희망 때문에, 언젠가는 정말 만나게 될 수 있지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에 놓지 못했던 것 같아.
사실 아까 말한 시험관 시술이라는 게 굉장히 힘들거든. 엄마는 시술을 받을 때 매일매일 주사를 2~3개씩 맞아야했어. 엄마는 주사 맞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거든. 그래서 병원에서 주사를 맞을 상황이 돼버리면 눈을 감고 다른쪽 팔을 세게 꼬집으면서 참았어. 어른인데도 웃기지?
그랬던 엄마가 이제 스스로 배에다가 주사를 놓고 있어. 주사바늘을 배에 찌를 때마다,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팠지 물론. 그런데 시퍼렇게 군데군데 멍이 든 배를 바라볼 때마다 엄마는 줄곧 생각했어. 너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이까짓것쯤은 다 견뎌낼 수 있다고. 그때부터 엄마는 엄마가 될 마음가짐을 조금씩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희생 없이 얻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했던 것 같아.
다량의 약을 먹고 쉼없이 주사를 맞을 때마다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걱정이 되다가도, 포기할 수는 없었어. 왜냐면 더 늦어지면 너를 영영 만나지 못할수도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거든. 그렇게 수차례 시험관을 시도하고 또 시도했는데, 여전히 너는 감감무소식이었어. 이제는 정말 너를 포기해야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 하루하루였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는 열심히 너를 만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영양제를 잘 챙겨먹고, 규칙적인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몸에 좋은 건강식을 먹으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엄마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본 것중에 그렇게 건강하게 지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두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운동을 한시간 반씩 했다니까? 라면, 빵, 과자는 입도 안대고. 엄마가 군것질을 엄청 좋아했거든? 그런데 너를 만날 생각에 죄다 끊어버렸어.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정신력이 나왔는지 모르겠어.
그랬더니 기적처럼 네가 찾아온거야. 새벽에 아무래도 이상해서 검사해보니까 네가 우리에게 찾아와줬더라고. 엄마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꼭두새벽에 임신테스트기를 들고 아빠를 깨울 수밖에 없었어. 아빠는 잠결에도 놀라면서 엄마를 꼭 안아주고 함께 기뻐해줬어. 그런데 사실 우리는 뛸듯이 기뻐할 수는 없었어. 사실 불안함이 더 컸거든. 그래서 너를 가졌단 사실을 알고도 충분히 크게 기뻐해주지 못해서 그게 너에게 미안해. 기뻐했던만큼, 아니 그거보다 더 많이 실망하고 슬퍼했던 경험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 같아.
오늘 병원에 가서 초음파 사진을 찍어왔어. 아직은 네가 보이지 않지만 아주 작게 네가 있을 아기집이 보이더라. 너는 그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을까?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어서, 네 태명을 튼튼이라고 지어주기로 했어. 바랄 건 아무것도 없을 거 같아. 네가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찾아와줘서 정말 고마워. 지금처럼 배를 아프게 해도, 현기증이 나게 해도, 헛트름이 나게 해도 난 다 괜찮아. 네가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말이야. 너무 기쁘고 설레지만 쉽사리 기뻐할수만은 없는 엄마가 너무 바보같다. 하지만 말이야. 사실은 네 존재를 생각하기만 해도 정말 많이 기쁘고 벅차오른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 이왕이면 우리 오랫동안 함께하자. 잘 부탁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