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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애를 갖기 시작했다

나만 아직 제자리인 것 같은 조급함에 대하여

by 콩딘이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장장 6시간 동안 끊이지 않던 수다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참 많이도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주제는 일과 연애였다.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주제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요즘 우리의 관심사는 결혼생활과 육아다.


동기들 중 절반이 이미 결혼해 아이를 낳은 상태이고, 나머지 절반은 결혼 후 아이를 갖기 위한 준비를 하는 상태다. 그러니 결혼생활,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남편과의 일상과 시댁 식구들 이야기, 부모님 노후, 그리고 아이들 육아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의 주요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다만 육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아직 아기가 없는 나는 유경험자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포지션이다.


남들이 육아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한참 신기하고 재밌다가도 막상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왠지모를 씁쓸함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나도 저들과 함께 섞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조급함도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아기가 생기는 것 같은데 유독 나만 임신이 어려운 것 같기도 해서.


친구들 뿐만이 아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팀에서는 결혼한 사람들 중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임신 중이거나 육아를 하고 있는 상태다. 믿을수 없게도 내가 이 팀에 합류했을 때는 대부분 임신을 준비하는 동지들이었는데, 1년새에 나만 빼고 다들 임신에 성공했다. 말 그대로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한 명씩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최대한 진심으로 축하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표정 관리를 하려고 무진장 애쓴다. 지인들의 임신 소식은 더없이 기쁘고 축하할 일이지만,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게 아직 아기가 없다는 것, 임신 시도가 매번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여라도 동료들이 오해할까봐 서운하고 씁쓸한 표정을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라고들 하지만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들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기를 빨리 갖고, 늦게 갖고는 사실 뭐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기를 갖게 되면 그때부터가 진짜 고민의 시작일테니까. 갖는 것보다는 앞으로 낳아서 어떻게 키워야할지, 어떤 부모가 돼줄 수 있을지가 훨씬 더 중요할테니까. 그래서 사실 조급해할 필요도 전혀 없고,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전혀 없다.

캡처.JPG 신이 말했다. "네 기도를 들었다. 이제 나의 타이밍을 믿어라."


그래서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는데, 그게 맘처럼 쉽지가 않다. 특히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임신했거나 아이가 있는 상황일 때는 말이다. 무리의 대화 속에서 좀처럼 공감할만한 포인트를 찾지 못하고, 그저 들어주는 사람으로 남을 때의 마음은 뭐랄까,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나만 아직 퀘스트를 못 깨서 저 멀리 달려나가는 다른 사람들만 지켜보고 있는 마음이랄까.


돌이켜보면 결혼도 나한테는 비슷한 종류였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이 하나 둘씩 제 짝을 찾아서 결혼할 때 혼자 미혼이었던 나는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특히 결혼 적령기 즈음에 닥쳤던 전 연인의 이별 통보는 내게 엄청난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남겼다. 당시 나는 내가 앞으로 절대 결혼하지 못할 거라고, 그렇게 혼자서 쓸쓸히 늙어 죽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오히려 그때 그 사람과 기어코 결혼까지 했었더라면, 오히려 내 삶은 더 불행해졌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말이다. 고통스러운 이별을 겪을 때만 해도 이런 장밋빛 미래가 나에게 펼쳐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이별은 참 잘 된 일이었다.


임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저 아직은 때가 아닌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그저 참고 인내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시간들을 흘려보내야 할 것이다. 이런 고난이 지나가고 나면 언젠가는 더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다시금 깨닫는다. 인생이란 정말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충분히 힘들과 지난한 인내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좋은 일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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