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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자연 임신에 성공했다 (2)

두 번째 유산, 임신은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by 콩딘이

절박유산이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접했다. 절박유산은 임신 20주 이전에 질 출혈이 나타나는 증상을 말한다. 완전히 유산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산이 될 여지가 있으니 집에 가서 안정을 취하라는 거였다. 살펴보니 절박유산을 겪은 후 유산될 확률은 꽤 높았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야근이 많냐, 직장 일을 좀 쉴 수는 없냐 등등을 물어보면서 나의 불안감을 더 높였다. 물론 일이 많기는 하지만 결코 몸에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고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다 일을 더 줄여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됐다.


일단 지금은 두 말 할 것 없이 당장 연차를 쓰는 것이 급선무였다. 유산을 방지해주는 질정제 처방전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왔다. 약국으로 가니 하필 점심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사람들이 바글바글댔다. 약국이 좁아서인지 약사님 혼자서 운영하는 약국이었는데 한 분 한 분 어찌나 친절하게 응대하시던지. 배는 계속 아파오는데 좀처럼 내 차례가 빨리 올 것 같은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여차저차 마지막 순서인 내 순서가 다가오고, 약사님이 내가 얼굴을 한껏 찡그리고 있는 걸 봤는지 "너무 늦었죠? 죄송해요"라고 말해주셨다. 사실 다른 날이었으면 얼마든 기다릴 수 있는 시간들이었는데, 배가 너무 아팠고 유산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던 것 같다. 약사님에게 괜찮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손발이 떨려오고 있었다.


결국 임신 극초기에 회사에 임밍아웃을 했다


회사에서 급작스럽게 연차를 써야 할 때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어찌해야할까 뭐라고 둘러댈까 잠깐 고민했다가 이도저도 아니다 싶어서 솔직하게 회사 리더에게 이야기했다. 임신 극초기이고 임신한 사실을 안 지 얼마 안됐는데 유산될 조짐이 보이니 집에 가서 쉬라는 처방을 받았다고. 리더에게 의사의 처방전을 보여주면서 오후 반차를 썼다. 리더의 반응은 고마울 정도로 함께 기뻐해줬다. 작년 말에 팀 이동을 하게 됐을 때도 유산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던터라 나의 상황에 많이 공감해줘서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따뜻한 전기장판을 틀고 누워있었다. 점심 즈음이 되자 허기가 져서 밥도 먹고 내내 불안한 마음으로 누워서 기다렸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상하게 긍정적이었다. 뭐랄까. 자연임신으로 생긴 아기라서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자연임신으로 생긴 아기니까, 그만큼 튼튼할 거라는 알 수 없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그 믿음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는 아기집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쯤되면 아기집이 보여야 할 때라면서. 아마도 이제 곧 생리를 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도 해줬다. 생리를 하면 자연스럽게 화학적 유산 단계에 접어들게 되는 거였다. 그러니까 이번 임신도 결국 유산으로 종결되는 거였다. 이상하게 가졌던 긍정적인 마음들이 한 순간에 픽 사그라들었다.


임신은 정말 쉽게 되는 게 아니었다


거짓말처럼 병원에 다녀온 날 저녁, 생리가 시작됐다. 여느때보다 좀 더 생리통이 심했던 것 같은데 그건 유산되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냥 유산이라는 내 마음 때문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임신이 확인된 후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뒤에 생리가 시작됐기 때문에 만약 임테기를 하지 않고 지나쳤다면, 그저 생리가 일주일 정도 늦게 나오는구나 싶었을 거였다.


임신이 확인되자마자 난임 병원에 가서 유산을 막는 질정제 처방을 빨리 받았으면 어땠을지, 피검사를 해봤으면 어땠을지 생각하다가 그만뒀다. 이러나 저러나 어차피 건강하지 않은 아기였고, 그래서 유산됐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유산될 아기는 어떻게 해도 유산된다고 생각하면서 잊으려고 노력했다. 첫 번째 유산때는 그래도 아기집도 봤었지만, 이번에는 아기집은 커녕 일주일만에 유산된터라 그렇게 많이 슬프지도 않았다.


다만, 걱정됐던 건 이게 습관성 유산이 될까봐서였다. 두번 이상 유산을 하게 되면 이게 습관성 유산처럼 유산이 잦아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두 번의 유산을 경험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칠대로 지친 상태라서, 또 한 번 유산하는 건 진짜 데미지가 큰 일이었다. 몸뿐만이 아니라 내 정신 건강에도. 다음 번에 임신을 시도할 때는 몸을 제대로 만들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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