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산길을 타고 올라간 끝에 만난 난임 한의원의 첫 인상은
한 차례의 인공수정, 한 차례의 시험관, 그리고 두 번의 유산. 몸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됐다. 조금만 피곤한 활동을 하면 금세 예민해지고, 졸음이 몰려왔다. 졸음이 몰려와도 잠을 잘 수 없는 환경에서는 편두통이 심해졌다. 점차 집 밖에 나가는 일이 싫어지고, 그러다보니 운동을 멀리하게 됐다. 달리기, 요가 등 꾸준히 해왔던 내가 한 순간에 이렇게 무너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 회사에 나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집에 있는 동안 유일한 즐거움은 먹는 일 뿐. 저녁마다 남편과 함께 맛있는 안주에 술을 페어링해서 먹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몸무게가 많이 늘어 있었다. 슬슬 이렇게 지내도 되는가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을 무렵,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한의원에 가서 약이라도 좀 지어 먹어보면 어떠니?" 이전에도 엄마는 나에게 약을 먹어보라는 조언을 했었다. 물론 이전에는 아기가 잘 들어서게 하는 약을 이야기한 것이었고, 이번에는 유산을 거치면서 몸이 많이 상했을테니 몸보신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거였다. 엄마의 제안을 듣고도 그때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사실 같았다.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의술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영 께름직했던 것이다. 그 효능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는데다, 최근 몇 년간 어딘가 다치거나 아파서 한의원을 찾았을 때 딱히 도움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엄마의 말을 들어, 한의원에 가볼까 싶어졌다. 양약으로는 아무래도 몸을 보신하는 데 한계가 있고,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몸을 보호하는 약을 먹고 많이 나아졌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 밑져야 본전, 양약으로 다친 몸, 한약으로 고쳐보자!
일단 한의원부터 알아봤다. 임신과 출산을 키워드로 찾았을 때 가장 유명한 한의원은 뭐니뭐니해도 경주에 있는 대추밭 한의원. 한동안 난임으로 고생하던 부부들이 거기서 약을 지어먹고 아이를 낳았다는 후기들이 많았다. 엄마도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임신 준비를 하던 초기에는 같이 다녀오자고 채근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별로 가고싶지는 않았다. 내가 사는 곳에서 너무 멀기도 하고, 진료라도 한 번 볼라치면 새벽에 도착해서 바깥에서 대기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경주까지 차로 6시간, 또 가서 당일에는 안되고 1박 2일을 하고 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모든게 다 귀찮아졌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이번에도 경주 한의원은 제외했다.
대신에 이 근방에 있는 나름대로 용하다고 소문난 한의원들을 중심으로 물색해보기 시작했다. 난임을 키워드로 달고 있는 한의원들은 동네에도 꽤나 많았다. 그 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 여성 한의원이었다. 광고 바이럴인지, 실제 후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난임 커뮤니티에 꽤나 많은 긍정적인 후기들이 달려있었다. 게다가 병원에 방문한 연예인과 인증샷을 찍은 원장님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한의원 사이트에 도배돼 있는 걸 보니 조금은 신뢰가 갔다. 더 결정적이었던 것은 바로 한의원의 위치. 시내 한복판 번화가에 위치한 다른 한의원들과 달리 이 곳은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었다.
한의원으로 가는 길은 꽤나 낯설었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찾아가는 내내 남편은 "이 길이 정말 맞느냐"고 재차 위치를 확인했다. 나 역시도 이렇게 인적드문 산속으로 들어가면 정말 한의원이 나올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네비게이션을 믿고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지나고, 산 비탈을 타고 올라가자 나온 한의원의 모습은 뭐랄까. 어떤 거대한 공장같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가는 내내 의심을 품고 있던 남편은 한의원 건물의 모습이 보이자 괜히 설레했다. 한의원이 이런 인적 드문 곳에 있는데도 장사가 되는 건 사람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 찾아오지 않고는 어려운데, 그렇게 찾아올 정도로 용하다는 뜻이 아니겠냐며. 상당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고, 그 때문에 나도 덩달아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는 뭔가 내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환자들로 북적거리며 북새통을 이룰 것 같았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병원 내부는 굉장히 한산했다. 이렇게 클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우리가 너무 이른 시간에 온 탓도 있었지만 주말인데, 대기하는 환자는 나와 남편 뿐이었다. 근거없이 부풀었던 무한한 신뢰가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할즈음 진료실에서 우리 이름을 불렀다.
한의사에게 최대한 내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인공수정을 했고, 시험관을 하면서는 굉장히 몸이 많이 아팠었다고. 유산도 두 번 했었고, 이번에 병원을 찾은 건 최근에 있었던 두 번째 유산 후 몸조리를 하기 위해서 찾은 거라고. 의사는 팔목을 잡고 진맥을 보기 시작했다. 의사 왈, 여자의 몸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세 곳이 모두 원활하게 순환이 돼야 한다는 거였다. 나는 위쪽에만 몰려있어서 위쪽이 뜨겁고 상대적으로 아래쪽이 차다고 했다. 그걸 뚫어주는 약을 지어주겠다는 거였다. 성격이 급하고, 쉽게 화를 내는 성미가 이런 특징 때문이라고도 했다. 실제로도 나는 성격이 꽤나 급한 편이라서, 그리고 얼굴에만 땀이 많이 나는 타입이라서 위쪽에만 열이 몰려있다는 말이 굉장히 타당하게 들렸다.
최근에 또 유산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우리 몸이 유산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가 생겨도 유산했던 이력이 있어서 또 유산을 하게 되면 앞으로 더 자주 유산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이 유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도록 임신 준비는 최소 3개월 지난 후에 하는 것을 추천했다. 한약은 3개월치를 먹는 것을 추천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에 게다가 3개월씩이나 먹을 자신은 없어서 일단은 1달치만 먹는 것으로 조정했다.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으면 추가로 더 먹어보면 되니까.
함께 따라왔던 남편도 같이 진맥을 봐주겠다고 했고, 남편에게도 약을 추천했다. 사실 남편까지는 필요 없었을 것 같은데, 본인도 한약이 조금 필요한 상태인 것 같다며, 견물생심이 생긴건지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지어주기로 했다. 내 것 1달치, 남편 것 1달치를 포함해 총 100만원 가까이 지출이 생겨버렸다. 적지 않은 지출이긴 했지만 그렇게 해서 몸의 컨디션이 회복될 수만 있다면 뭐 크게 아까운 비용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달간 꼬박꼬박 약을 먹은 결과는? 나도 남편도 사실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예전보다 체력이 회복된 것 같기도 하고, 크게 변화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입맛이 돈다는 거였다. 이게 체력이 회복된다는 신호일 수도 있을거다. 어느 순간부터 먹고 싶은 것들이 자꾸 생기고 입맛이 돌아서 맛있게 밥을 먹게 됐다. 그 때문에 결론적으로 살은 더 불어났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난임으로 한의원을 찾을지 고민하고 있는 난임 부부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내 경험상 적극적인 추천도 적극적인 부정도 해줄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본인 스스로 임신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고, 이것저것 다방면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추진력과 재정적인 여유가 충분히 받쳐준다면 한약도 시도해볼만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도 있으니. 나 역시도 재정적인 여유만 충분했다면 몇개월 더 먹어볼까 싶기도 했다. 그 정도의 비용을 내고 더 먹을만큼의 메리트를 느끼지 못해 중단했을 뿐. 마지막으로 남은 약 한봉지를 털어 넣으면서 앞으로도 한동안은 난임 한의원을 찾을 일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건강한 생활을 되찾으며 그렇게 자연 임신을 준비하는 것이 임신 확률을 높이는 데 더 효과적인 처방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