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며느리, 유산이란 아픔으로 서로를 위로하다
20대 직장인 시절. 지하철을 탄 임산부들을 보면 답답했다. 왜 저렇게 만삭의 몸을 하고 집에서 쉬지 않고 굳이 굳이 나와서 만원 지하철을 타는건지. 몸도 무거울텐데. 몸을 움직이는 게 불편한 그들의 거동을 보고 안타까움을 넘어서 답답함까지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다 내 친구 중 하나가 임신을 하게 됐다. 임신을 한 상태에서도 회사를 다니고, 병원을 다니고, 여러가지 일을 보러다니기 위해서 지하철을 종종 타는 그 친구는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참 힘들다고 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20대 시절, 내가 얼마나 안일하고 짧은 생각으로 임산부들을 바라봤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임산부를 보면 그 친구 생각이 나서, 먼저 자리도 비켜주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됐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싶은 말은 어떤 일이든 직접 경험해보거나, 아니면 가까운 지인이 그 일을 직접 경험했거나 하지 않으면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위의 일화는 내가 남들보다 좀 더 이해심이 적고 공감능력이 떨어져서 일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로는 이해하고 배려해야한다는 걸 깨닫지만 막상 자기가 그 상황에 처해본 적이 없거나, 앞으로도 평생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남의 상황과 처지에 공감하고 함께 슬퍼해주는데는 한계가 있다.
유산을 경험하고 나는 그 한계를 더 크게 느꼈다. 그러니까 내가 유산했다는 소식을 알렸을 때 주변 지인들은 다들 함께 슬퍼해줬지만, 그들은 주로 내 눈치를 살피는 데 집중하는 것 같았다. 내가 너무 마음이 아팠을테니까 당사자인 나의 감정을 살피는 거다. 남편이 특히 그랬다. 내 기분이 울적하고 좋지 않을까봐, 여기저기 바람도 쐬고 데리고 다니려고 노력도 해줬다. 물론 그들의 배려 덕분에 나는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위로가 됐던 건 오히려 나와 같은 아픔을 경험했던 우리 시어머니였다.
우리가 결혼하기 전, 남편은 가끔 자기가 얼마나 어렵게 태어난 아들인지 이야기해 줄 때가 있었다. 오해가 생길까 미리 짚고 넘어가자면, 이 이야기의 초점은 그가 귀하게 자랐다는 것을 어필하려는 것보다는 어머니가 몸이 약하셔서 얼마나 임신하는 게 어려웠는지에 관한 거였다. 어머니는 남편이 태어나기 전에 유산을 두 번이나 경험하셨다. 첫 임신때는 임신 중기에 유산을 하셨고, 두 번째 임신 때는 출산까지 했는데 이미 뱃속에서 아기가 죽어있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남편에게는 본인 위로 형과 누나가 한 명씩 있었던 것이다.
첫 번째 유산 때도 많이 힘드셨을텐데 두 번째 유산 때는 어땠을까. 두 번째 출산 떄는 제왕절개로 진행을 했는데, 애기가 죽어서 나오는 바람에 아버님이 마취 후 깨어난 어머님께 아기의 죽음에 대해 도무지 뭐라고 말을 꺼내야할 지 몰라 본인이 죽을 것 같았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들었었다. 어머니의 유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슬픔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기서 그쳤다. 그저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많이 힘드셨겠다는 말밖에는.
그랬던 내가 유산이라는 슬픈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 큰 병원에 가서도 똑같은 진단을 받았을 때, 친구와 통화하면서 시원하게 울고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다. 그래서 병원에서 아기집을 지우는 수술을 할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저 시술하고 와서는 남편과 죽을 먹으며 괜찮다고, 앞으로 또 애는 가지면 되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엄마 아빠와 통화할 때도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먼 거리에 살아서 자주 뵙지도 못하는데 굳이 걱정을 끼쳐드려서 찾아오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이가 꽤 많이 찬 후에 결혼하게 되면서 이 정도의 어려움 쯤이야 이미 각오도 된 상태였기 때문에 꿋꿋하고 씩씩한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다.
시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남편과만 짧게 통화하던 아버님이 이번에는 굳이 옆에 있는 나를 바꿔달라고 하시며 애기 없어도 된다고, 둘이만 행복하게 잘 살아도 된다고. 몸을 추스리는데만 집중하라고 나를 다독여주셨다. 나 역시 그런 이야기에 약간의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지만 이내 씩씩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남편과 바람도 쐴 겸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중이었는데 시어머니가 따로 전화를 거셨다. 항상 남편에게만 전화를 거셨던 분인데, 이날은 갑자기 내게 전화를 하셨다. 몸은 잘 추스리고 있냐는 이야기였다. 괜찮다고 밝게 이야기 했는데 시어머니가 반대편에서 갑자기 우셨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네가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니, 하면서. 핸드폰 반대편 어머니의 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나도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서관을 뛰쳐나와 어머니와 함께 소리내서 펑펑 울었다. 둘이서 한바탕 시원하게 목 놓아서 울고 나니까 마음이 한 결 나아진 기분도 들었다.
같은 슬픔을 경험했다는 게 서로에게 이렇게 큰 위안을 준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위로를 듣고는 나도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포기하지 않는다면 임신할 수 있다는 용기를 다시 한 번 얻었다. 어머니 역시 힘든 경험을 하셨지만 그래도 결국 건강한 아들을 낳았고 또 딸도 낳으셨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자식들을 얻었으니 얼마나 소중하실까 싶었다. 어렵게 얻어지는 만큼 소중한 마음은 더 커질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