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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딘이 Aug 10. 2024

자연 임신, 그리고 자연유산을 겪다(1)

그렇게 어려워만 보이던 자연임신에 성공했다

시험관 시도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몸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힘들었던 경험도 이제 두달이 지났다. 양가 부모님과 남편의 조언에 따라 한동안 임신 준비를 쉬기로 했다. 임신에 대한 강박이 사라지니 마음의 부담도 훨씬 덜해졌다. 예전에는 생리 날짜가 찾아오면 임신이 아닐까봐 예민해졌었고, 먹는 음식도 조절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술도 최대한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그런 강박도 사라졌으니 맘껏 먹고 마시고 신나게 돌아다녔다. 임신 준비를 아예 올해 말이나 내년 쯤으로 미루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급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서두를 것 없다'고 마음을 다독이고 나니 그동안 임신에만 집중하느라 신경쓰지 못했던 다른 일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취미생활 같은 것. 독서나 운동, 덕질, 일기쓰기 같은 것들. 주말에는 시간을 내서 미술학원에서 성인반 취미 미술을 배워볼까도 기웃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생리를 안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나가던 어느 날, 생리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안하는 거다. 임신 소식을 기다릴 때마다 유독 칼같이 생리 예정일을 지켜오던 자궁이라 가끔은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생리를 할 기미가 전혀 안보였다. 그렇게 안한 지 이틀째가 지났을 때는 '곧 하겠지'하는 생각을 하며 넘겼다가, 3일째에 접어드니 슬슬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그 때는 설마 임신이겠어? 싶은 마음이 컸다. 나는, 그리고 우리 부부는 자연임신으로는 절대 임신이 될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두 달간 우리가 부부관계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건 임신 때문이 아니라 부부 관계의 개선과 이러다가는 섹스리스 부부가 되고 말거라는 위기감 때문에 한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또 상념을 떨쳐버릴 겸 맥주를 한 캔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오다가 불현듯 그래도 임신 테스트기는 한 번 해보고 마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닐 거야'라는 찜찜한 마음을 억누르고 맥주를 들이키느니, 차라리 확실히 아니라는 확인을 받고 맘 편히 시원하고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렇게 임신테스트기를 해봤는데, 오 마이 갓. 두 줄이었다.



이렇게 쉽게 자연임신이 될 수도 있다고?


그동안은 한 번도 본 적 없던 두줄이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선명한 두 줄이. 그동안 몇 차례의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에도 임신이 되지 않았던 내가 갑자기 임신이 돼버린 거였다. 테스트기가 잘못된 건 아닌지 다른 테스트기를 꺼내 한 번 더 해봤다. 결과는 같았다. 진한 두 줄이 빼도 박도 못하게 임신이라는 걸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곧장 임신 테스트기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전송했다. 그리곤 집 근처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산부인과에서는 요즘 임신테스트기가 거의 정확하다고 볼 수 있으니 일주일 뒤에 와서 초음파를 보자고 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게 뭐냐고. "두 줄이잖아. 임신이야" 남편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난임 시술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해도 생기지 않던 아기가 갑자기 자연임신으로 생겼으니 말이다. 남편의 반응 만큼이나 그 소식을 전하는 나도 얼떨떨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자연임신은 꿈도 못 꾸고 있었는데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내 자연 임신 확률은 10대 1 정도로 꽤 낮은 축에 속했다


자연임신의 확률은 극히 낮다. 내가 좀 더 낮기는 하지만 보통의 건강한 여자들에게도 자연임신 확률은 그다지 높은 수치는 아니다. 임신이라는 게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시기에 남녀 모두 건강한 정자와 난자를 갖고 있어야 하고, 여자는 배란 시기여야 하고, 수정된 배아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임신이라는 소재를 많이 쓰고 있을 뿐이지, 실제 주변에서 자연 임신이 되는 일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나는 난임으로 분류된 '환자'다. 내가 1년 전에 받아들었던 임신 준비 검사지에 따르면 나의 월 평균 임신 가능성은 13%였다. 물론 엄청나게 낮은 확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희망적인 수치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관계를 10번 하면 그 중에 한 두번은 임신으로 이어질 확률이 있다는 거였으니까. 여기에 건강한 아기를 출산할 확률은 그보다 더 낮은 9%밖에 안됐다. 10대 1의 확률을 뚫고 임신이 되더라도, 정상적으로 출산할 확률은 또 다시 10분의 1이 안되는 뚫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건강한 아기를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확률이 낮은데 자연 임신이 됐다니. 병원에서 임신 확인을 받고 나니 마음이 날아갈 듯이 기뻤지만 경거망동하지 않기로 했다. 작년에 한 차례 유산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물론 2번 이상 유산을 겪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런 희박한 확률이 내게도 올까 싶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만에 하나의 경우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지난 번 유산을 했을 때는 아기집까지 잘 보였던 상태라 인공 유산을 할 때 유전자 조직 검사를 해볼 수 있었다. 난임병원에서는 조직 검사를 하면 유산이 된 이유를 알 수도 있다고 했다. '알 수도' 라고 표현하는 건 달리 말하면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의 염색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만 조직 검사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외의 경우에는 별다른 이유 없이 단순히 건강한 아기가 아니라서 태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난임병원에서 받았던 조직 검사 결과에서는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별 문제가 없다면 아기가 잘 태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얼마나 건강하면 자연임신까지 됐을까 하면서. 남편도 나도 둘 다 너무 조심스러웠지만 달리 유산이라는 위험성과 불행을 입 밖에 꺼내진 않았다. 다만 동시에 둘 다 너무 기뻐하지도 않았다. 잘 안될 경우에는 기뻐했던 만큼 실망도 커질 거라는 걸 지난 번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얻었기 때문에.


절박 유산 조짐이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벅찬 마음을 진정시키고 평소와 같이 생활하던 어느 날. 그러니까 임신을 확인받고 정확히 이틀 뒤였다. 갑자기 팬티에 갈색의 피가 조금씩 비쳐 나오기 시작했다. 아랫배도 슬슬 아파왔다. 꼭 생리를 시작할 때처럼 그랬다. 그런데 그 피의 양이나 색깔이 전혀 생리와는 달랐다. 아주 조금씩 묻어나오는 정도였고 갈색혈이었다. 이런게 착상혈인가? 싶어 패드를 대놓고 무리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 조심히 출근했다.


그런데 점심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배가 더 아팠다. 조금씩 피의 양도 많아졌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회사에는 잠깐 병원에 들른다고 이야기하고 곧장 가까운 산부인과로 향했다. 산부인과에서는 초음파 상에서 피고임이 조금 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임신을 확인한 지 이틀 정도 됐다고 이야기하면서 이전에 시험관과 인공수정을 시도했었던 경험을 말했다.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 왈, 엄청 어렵게 성공한 임신이시네요. 절박유산이 될 수도 있으니 집에서 움직이지말고 누워계세요. 불현듯 눈물이 날 정도로 당황스러웠고 손발이 다 떨리기 시작했다. 자연임신이 됐다는 행복감이 단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또 유산될 수도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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