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압박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리도 여느 신혼부부들처럼 불타올랐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 1년이 지나면서 슬슬 서로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러운 관계를 갖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어색해졌다. 변명을 해보자면 일단 둘 다 삼십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어졌고, 회사생활부터 집안의 대소사까지 우리 앞에 놓여진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골몰해야 했던 것도 있다.
남편과 나는 이제 회사에서 가장 많이 일할 연차다. 그래서 일하느랴, 가사노동하느랴 눈코뜰새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스타트업에 다녀서 야근이 잦은 나는 물론이고, 남편 역시 회사에서 하루에 평균 10~12시간씩 꼬박꼬박 성실히 일하고 있다. 그러니 둘 다 평일에는 온전히 회사에 시간을 쏟을 수밖에 없다. 집안 일조차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각자 운동하고 씻고 제 시간에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적같은 일이라며 서로를 토닥인다.
그렇게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 즈음 주말에 당도한다. 주말이 되면 이틀 동안은 푹 자고, 잘 먹고, 잘 쉬고, 평일에는 하지 못했던 다양한 공부들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남편도 나도 공부와 커리어에 욕심이 있는 편이라 주말에는 평일 동안 미뤄뒀던 업무에 도움이 될만한, 또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은 다양한 책들을 읽고 공부하는 게 낙이다. 여기에 평일에 미뤄뒀던 집안 일은 덤이다. 때마다 청소하는 게 힘들어서 항상 주말에 모든 집안 일을 몰아 하는 통에 주말에도 이런 저런 일들에 에너지를 많이 쓰다 보면 관계에 소홀해진다.
익숙함도 또 다른 원인이다. 1년이 넘어가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많이 익숙해져 버렸다. 평일 내내 떨어져 있다가 주말에만 만나 연애하던 시절에는 서로에 대한 설렘과 떨림, 보고싶은 간절함이 매우 컸다. 매일밤 저녁에 '보고싶다'며 전화 통화만 나누다 주말이 되면 서로 눈만 봐도 스파크가 튀었고, 여기에 술까지 한 잔 들어가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끌어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매일 밤마다 보는 사이. 여기에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자연인의 모습까지 더해지면서 신비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남편과 나는 아직까지는 그런 서로의 민낯이 귀엽다며 보듬어주고는 있지만 그게 성적 매력도를 떨어뜨리는 데 큰 부분 기여한다는 생각은 부인할 수 없다.
이건 사실 나보다는 남편이 더 크게 겪는 문제일 수도 있다. 남자들은 엄청난 시각적인 동물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풀 세팅된 아내의 모습만 보다가 결혼하고 난 후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아내의 모습만을 보게 됐으니 이제 더이상 설레지 않는다고 해서 남편을 탓하기도 민망하다. 게다가 최근 나는 연이은 난임 시술로 인해 급격히 불어난 몸무게와 현저하게 떨어진 체력, 피곤함, 무력감 등으로 외모적인 부분을 신경쓰기 더 어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원인은 난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관계하는 것에 조금씩 소홀해진게 난임 판정을 받은 직후부터였으니까. 이전까지 우리에게 관계를 하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다정한 행위이자 놀이였다. 관계를 하고 나면 사랑이 더 깊어지는 걸 느꼈으며 행복감도 컸다.
그러나 난임 판정을 받고 나서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필요한 때에도 관계를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그 날의 기분이나 컨디션, 상황에 상관없이. 병원에서 말하는 소위 임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날짜를 받아와서 그 날에는 꼭 관계를 해야만 했다. 병원에서도 "집에 가서 '숙제' 잘 하시고 오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숙제'라는 표현을 썼다. 숙제라는 게 어떤건가. 학창 시절에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울며 겨자먹기로 꾸역꾸역 해갔던 게 숙제 아니던가.
처음에는 이 표현이 그저 웃기게만 들렸다. '성관계를 잘 하고 오세요'라고 말하는 대신에 '숙제'라는 귀여운 표현을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관계를 놀이가 아닌 숙제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관계를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됐다. 남편도 나도 야근하고 집에 돌아온 늦은 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어진 숙제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 아래서 어떻게든 분위기를 조성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날 밤 어찌저찌 관계는 이어나갔지만 둘 다 속으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억지로 하다보니 잘 안될 때도 많았다. 좋아서라기 보다는 해야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일을 치르다 보니 이런 사단이 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계를 맺을 때는 심리적 요인이 굉장히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잘 신경써야 했는데 말이다. 당시에는 임신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마치 경주마처럼 그것만 보고 달렸다. 남편은 관계 도중에 계속 현타가 온 듯 했지만 내가 계속 몰아붙였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다보니 슬슬 서로 끌리는 기간에도 참으며 최대한 에너지를 비축해뒀다가 숙제가 부여된 날짜에만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난임이라서 병원에 찾아가 처방을 받았는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관계를 꺼리게 되고, 그래서 난임이 더 심각해지는 아이러니.
물론 부부의 애정전선에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관계만 자주 하지 않을 뿐 매일매일 뽀뽀도 하고 포옹도 하고, 결말까지 가지 않는 게 조금 애석하지만 다른 스킨십은 전보다 더 많이 한다. 서로를 향한 마음도 그대로인 것 같다. 남편도 나도 힘든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든든한 조력자이자 동반자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졌다.
그런데 그 관계를 하는 것만큼은 어쩐지 어색해져버렸다. 시험관까지 한 차례 실패로 돌아가고 나니 자연임신을 최대한 시도해보자는 마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부여잡아보지만. 뭐랄까. 이렇게 분위기를 잡는 것이 괜히 어색하고 실소가 터져나온다. 어떻게해야 예전처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설레던 그 마음을 끌어내보려고 노력 중이다. 어려운 임신의 길, 시간이 지날수록 험난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