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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딘이 Jun 15. 2024

그래도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동안 나는 엄마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1년간의 임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헛헛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남편한테 이 마음을 털어놓았는데 크게 위로받지는 못했다. 물론 남편이 위로해주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나의 마음을 신경써주려 노력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말들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와서 나를 어루만져주지 못하고 죄다 튕겨 나갔다는 것이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먹어봐. 팅! 원래 확률이 50%도 안되는 거라고 하잖아. 팅! 안돼도 전혀 이상한 거 아니니까 스트레스 받지 마. 팅!


이유는 나도 모른다. 내 눈 앞에 그는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를 위로해주려고 노력하는데 나는 위로받을 수가 없다. 애쓰는 남편을 봐서라도 얼른 마음을 추스르고 평소처럼 돌아가고 싶은데 잘 안된다. 마음은 계속 채워지지 않고 텅 빈 상태로 남아있다.


어느 날 문득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며칠 전에는 일을 하려 책상 앞에 앉았는데 그날따라 우울감이 너무 심하게 몰려왔다. 그냥 다 내려놓고 엉엉 울고 싶어졌다. 그때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다. 다짜고짜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평소에 자주 통화하면서 모든 걸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살가운 딸은 아니었기에 할까말까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엔 전화를 했다. 엄마가 배아 이식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걱정할까봐 그동안 난임 시술 이야기는 되도록 꺼내지 않았는데, 우연히 배아 이식을 하러 병원에 가는 길에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이식 이야기를 했던 게 떠올랐다. 왠지 엄마가 궁금해하고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덤덤한 척 전화를 걸었지만 막상 반대편에서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입이 떨어졌다. "엄마 지금 통화 괜찮아?" 지인들과 함께 있는지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니, 나 그 시험관 있잖아. 그거... 잘 안됐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툭 던지듯 말해버렸다. 느닷없이 본론이 치고 들어오자 휴대폰 반대편은 시끌벅적했지만 한편으로는 침묵만으로 가득했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에야 엄마는 곧 "아... 그래?"라고 짧게 대답했다.


엄마가 실망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공수정에 실패한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찾은 경주에 있는 유명한 난임 전문 한의원에 가자고 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굳이 경주까지 내려가야 하는가 하는 귀찮음도 있었고, 한의학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신이 있어서 가진 않았었다. 다만 엄마가 이렇게까지 첫 손주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싶었다. 평소에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알아서 하게 놔두는 스타일인지라 엄마가 이런 저런 것들을 알아봤다는 데 꽤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나도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빨리 아기를 가지라는 말을 한 적은 없지만 결혼을 했으니 예쁜 손주를 보여드리는 것이 효도의 완성이라는 무언의 고정관념이 나를 압박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매번 엄마에게 임신 실패 소식을 들려주는 것에 괜한 미안함마저 가지고 있었다. 


엄마에게 난 항상 무뚝뚝하고 쌀쌀맞은 첫째 딸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미안함이 아니라 투정이 부리고 싶었다. 엄마에게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너무 힘들고 불안하다고 미주알 고주알 다 털어놓고 싶었다. 그런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에게 나는 항상 무뚝뚝하고 조금은 쌀쌀맞은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남매 중에 첫째인 나와 엄마의 관계는 항상 그랬던 것 같다. 엄마는 나보다 어린 동생들을 신경쓰느라 항상 바쁜 사람이었고, 나는 내가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큰 딸이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동생들까지 케어해주기를 은근히 바랐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데 내가 그 정도까지의 희생정신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 둘 사이에 가끔 갈등이 있었지만) 나는 그저 엄마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 나라도 내 앞길을 잘 헤쳐나가는 데 집중했던 것 같다.  


우리는 대화가 거의 없는 모녀였다. 청소년 시절부터 엄마에게 고민상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매우 낯선 일이었다. 그래서 내 고민상담의 대상은 주로 친구들이나 그때 내 옆에 있던 애인이었다. 어쩌면 엄마와 나의 관계는 처음부터 이렇게 정해진 걸수도 있었다. 대학생 시절에 내가 사주를 보러갔을 때 점술가가 나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 '붙어 있으면 안 좋고 떨어져 있어야 애틋해지는 관계'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신기한 건 엄마도 우리 사남매의 사주를 보러갔을 때 점쟁이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거다. "첫째는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어. 얘는 그냥 놔두면 자기 혼자 알아서 잘 할 애야." 


원래 무뚝뚝한 내 성격 탓인지, 아니면 사주팔자에 정해진 운명이었던 것인지 나는 엄마에게 투정이나 애교를 부리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엄마와 오랜시간 통화를 하면서 고민상담을 하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었고. 그래서 이번 통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실망한 듯한 반응과 짧은 침묵이 괜시리 민망해져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엄마가 저번에 말했던 그 용하다던 한의원 있잖아. 거기가 어디랬지?" 엄마는 일단 알아보겠다고 하고 그렇게 짧게 통화는 마무리됐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나고 한참 뒤 저녁 무렵에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아까 물어봤던 한의원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려고 그러나보다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한의원이고 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푹 쉬라는 거였다. 안 그래도 한 달 정도 쉬려고 한다는 나에게 엄마는 답답하다는 듯 갑자기 화를 냈다. "아니 한 달이 아니라 적어도 3달 정도는 쉬어야지! 몸이 그렇게 축났는데 계속 한다는 게 말이 되니? 누가 그렇게 아기 갖는 걸 재촉하는거야? 네 남편이 그러는 거야?"


엄마가 이렇게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건 오랜만이라 굉장히 낯설었다. 내가 남편이 그런다고 말했으면 당장이라도 남편과 싸울 기세였다. 남편이 아니라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런거라고 이야기하자 엄마는 다시 설득하는 투로 말을 이어갔다. "시험관 했던 네 이모한테 물어보니까 주사도 많이 맞고 약도 많이 먹어서 몸이 많이 상했을거라는데. 일단은 회복이 최우선이라고 하더라. 한달도 부족하고 최소한 세달 정도는 아무 생각하지 말고 좋은 거 먹고 푹 쉬어. 남편이랑 좋은 데도 놀러다녀오고."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 마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애기 안 갖고 싶어하는 애들도 많다는데 너네는 뭐가 그렇게 급하다니 정말.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사실 나는 내내 엄마를 오해하고 있었다


아뿔사. 내가 우리 엄마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 엄마가 단순히 첫 손주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아까 전화를 받았을 때도 많이 실망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는 오히려 내 건강이 염려됐던 거였다. 아니 사실 오매불망 내 임신 소식을 기다린 것도 맞았을거였다. 하지만 엄마에게 더 중요한 건 한 번도 본 적 없는 손주보다 엄마 자식인 내 몸이 아픈게 더 우선이었던 거였다.


내가 엄마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나니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왔다. 엄마가 나를 이렇게나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엄마는 나를 걱정할텐데 평소에는 서로 표현을 안하니까.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이렇게 한 번씩 불쑥 나오는 거였다. 


담담한 척 슬쩍 눈물을 훔치며 엄마와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곤 새삼스럽게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바보같은 내 자신이 싫었다. 정작 우리 부모님은 내가 행복한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주는 사람들인데 나 혼자 괜히 이상한 틀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혹사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새삼 내가 참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진데 대체 왜 그걸 몰랐을까. 


내가 부모가 된다면 그땐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부모가 된다면 그때는 엄마가 이렇게 나에게 말하지 않고도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싶었다. 아직도 나는 너무 부족하구나. 진짜 부모로서의 마음은 뭘까 싶기도 했다. 그 마음 안에 있는 게 대체 무엇이길래 나는 이렇게도 아직도 모르고 있는걸까 싶었다. 그리고 나도 나중에 태어날 내 자식에게 우리 엄마같은 엄마가 돼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따뜻한 말은 자주 건네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 자식의 행복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겨주는 사람.


그동안은 줄곧 아들을 갖고 싶다고 말해왔었는데 이제는 딸을 낳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은 잘 모르는 여자들끼리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딸과 나눌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기도 했다. 딸이 힘들어할 때 아빠는 공감해줄 수 없는 엄마만이 가진 경험으로 딸을 위로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지금 엄마와 나의 관계처럼 말이다. 새삼 엄마에게 감사함을 느끼면서 또 임신에 대한 간절함이 강해지기도 했다다. 엄마, 어떡하지? 엄마 때문에 나 더 아기가 갖고 싶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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