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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딘이 Jun 11. 2024

인공수정, 그리고 첫 번째 유산(2)

이제 처음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틀 뒤에 또 한 차례 피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조금 이상했다. 수치가 160 이상은 나와야 하는데 약간 애매한 130대가 나왔다. 병원에서는 아직 이 정도로는 모르니 이틀 뒤에 또 검사를 하자고 했다. 그렇게 또 이틀 뒤에 한 검사에서는 210대가 나왔다. 수치는 조금씩 올랐지만 더블링은 잘 안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도 난색을 표했다. 아무래도 화학적인 유산이 진행 중인 것 같다고 했다. 난임 커뮤니티를 보면 화학적 유산이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 중에 하나인가 싶었다. 행복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차게 식어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기의 성장 속도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게 이제 겨우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벌써 아파왔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산할 것인가에 대해서 일단 며칠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하셨다. 유산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게 있는데 자연적으로 유산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일단은 병원을 빠져나오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렸다. 남편은 굉장히 당황해했지만 그래도 워낙에 침착한 사람이라 곧 받아들이고 내 걱정부터 해줬다. 양가 부모님께는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내가 둘 다 집안의 첫째들인데다가 개혼이었던 자식들이기에 누구보다 첫 손주를 바라고 계신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기분 전환차 좋은 곳으로 놀러가기도 하고 임신을 준비하느라 그동안 입에도 대지 못했던 술도 오랜만에 마셨다. 내가 좋아하는 화이트 와인이었다. 마음은 사실 많이 우울했지만 기분을 풀어주려는 남편을 봐서라도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기는 또 다시 가지면 되지. 그렇게 며칠을 더 보내고 나서 유산을 어떻게 진행하는 게 좋을 지 병원에 가서 초음파로 살펴보는데 의사 선생님이 놀란듯 말했다. "어? 여기 아기집이 보이는데요?" 자궁 초음파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동그란 모양의 아기집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아기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은 흔치는 않지만 조금 늦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일단 경과를 지켜보자고. 손에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들고 병원을 나서며 당장 남편에게 사진부터 전송했다. 남편은 보고 바로 전화를 했다. 이게 뭐야? 임신이래. 즐거운 환호성도 잠시, 지난 주말에 술을 마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편은 괜히 느낌이 이상해서 마시지 말라고 할 걸 그랬다며, 유산이라고 확진한 병원을 원망했다. 나 역시도 그게 조금 마음에는 걸렸지만, 의사 선생님이 지금 단계에서 음주는 크게 영향을 주진 않을 것 같으니 괜찮을 거라고 했다. 정말 괜찮은 거였는지, 아니면 본인이 실수해서 그렇게 얼버무렸는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이왕 이렇게 돼 버린 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면서 애써 잊어버리고 앞으로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주면 아기집이 보일 거라며 한 주 뒤에 초음파를 다시 찍으러 가기로 했고, 그 기간 동안은 나도 잘 먹고 잘 쉬면서 진료일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한 주가 지나고 다시 초음파를 보러 갔는데 난황만 계속 커질 뿐 아기집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좋지 못한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지금 시점에는 아기집이 보여야 한다면서. 며칠만 더 며칠만 더, 하면서 기다려봤지만 결국 아기집은 보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최종적으로 유산으로 결론을 지었다.


믿을 수가 없는 상황에 손발이 다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몇주만에 사람을 롤러코스터 태울 수 있는 건가. 좀 더 큰 병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대기도 엄청난 큰 병원으로 가니 많은 사람들이 만삭의 몸을 하고, 또는 한 손에는 아이를 잡고 병원을 오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엄마와 같이 온 임산부도 있었고, 남편과 같이 온 임산부도 있었다. 혼자 가도 괜찮은 거였지만, 막상 지인들과 함께 병원에 찾아온 사람들을 보니 나 혼자 모든 과정을 한다는 사실이 조금 청승맞게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편이라도 데려올걸 싶기도 했고. 


이럴거면 혼자 병원에 오지 말걸


그래도 씩씩하게 병원에 들어섰다. 결과는 예측 가능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하나의 가능성을 부여잡고 진료를 기다렸다. 그러나 큰 병원의 초음파도 마찬가지였다. 정상 임신으로 볼 수 없다는 것. 병원을 나와 임신 중인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정상 임신이 아니래. 애를 지워야 한대. 그 말만 반복하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펑펑 울었다. 수화기 반대편 친구도 함께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역시 병원에 혼자 오지 말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며 남편에게 연락했다. 임신 소식에 기뻐하셨던 양가 부모님께도 연락을 드렸다. 이번에는 유산이 되었다고. 남편은 본인도 실망이 컸을텐데 나를 위로해주느라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친구와 통화를 하며 울었기 때문일까, 나도 남편과 통화를 하면서는 자못 담담하게 상황을 전할 수 있게 됐다. 아직 첫 번째니까. 그렇게 서두르지 말자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첫 번째 임신은 유산으로 마무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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