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으로 끝나버린 첫 번째 임신의 경험
그렇게 한 주, 두 주가 지나고 난황은 잘 커지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은 나도 잘 먹고 잘 쉬면서 진료일만을 기다렸다. 임신을 하니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조심해야 했다. 이제는 말 그대로 홀몸이 아니기 때문에. 술이나 커피는 물론이고 원래 좋아하던 운동인 달리기와 요가를 쉬어야 했다. 특히 당시에 달리기는 꽤나 꾸준히 해오던 운동이었는데 초기에는 걷기 운동이 최고라고 해서 되도록 걷는 것에만 집중했다.
음식도 이상하게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이 땡기는 것 같은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임신을 핑계로 피자나 햄버거 같은 기름진 음식들을 자주 먹게 됐다. 그렇게 임산부라는 핑계 아래 2주간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즐겁게 생활하고 초음파를 보러 갔는데... 좋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아기집이 보여야 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워낙 피검사 때부터 성장이 늦었던터라 병원에서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데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그때 술을 마셔서였을까, 달리기를 해서였을까. 아니면 겨울인데 찬 바닥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있어서였을까. 내가 했던 모든 행동들을 반추해봤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려 해도 아무래도 내가 몸안에 데리고 있었던 것이기에 그냥 다 내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 같았다.
그리고 검사를 앞둔 날 밤에 이상한 꿈 하나를 꿨다. 갑자기 엄마가 꿈 속에서 다이아 반지를 하나 맞춰주겠다는 거였다. 나는 반지가 싫다는데도 엄마는 굳이굳이 나를 데려가서 한 번 껴보기나 하라고 했다. 실제로도 나는 다이아 반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결혼할 당시에도 커다란 알이 박힌 다이아는 활동하는데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서 작은 다이아가 알알이 박힌 반지를 받는 것으로 프로포즈 반지를 대체하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의 강요 때문에 마지못해 반지를 보러 간 거였다.
그런데 막상 껴보니 반지가 너무 예쁜 거였다. 반짝반짝거리는 커다란 다이아가 박혀있는 반지. 막상 끼고 움직여보니 거추장스러울 것이라는 나의 오해와 달리 활동하기에도 편해서 안성맞춤으로 느껴졌다. 엄마가 사준다는 데 그렇다면 하나 맞출까 싶어서 거금을 내고 반지를 구매하기로 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그 돈이 너무 아깝게 느껴지는 거였다. 그 돈으로 다른 걸 하면 더 좋았을텐데, 지금 우리 형편에 이런 큰 반지가 가당키나 한 걸까 하면서. 결국에는 나 혼자 다시 가게로 찾아가 반지를 환불하기로 했다. 환불 내역서에 사인을 하면서 그렇게 꿈에서 깼다.
다음날 아침 꿈이 불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병원으로 향했다. 불길한 예감이 맞았을까. 병원에서는 최종적으로 유산으로 결론을 내렸다. 제대로된 아기집도 보지 못한 채 나의 임신이 막을 내린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는 상황에 손발이 다 떨려왔다. 이렇게 몇주만에 사람을 롤러코스터 태울 수 있는 건가.
더는 병원을 신뢰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좀 더 큰 병원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임산부 커뮤니티를 보니 병원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고 어떤 병원에서는 오진을 하기도 한다고 해서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 다른 병원에서 한 번 더 진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작은 동네 병원만 가다가 대형 병원으로 오니까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사람이 없어서 들어가서 접수를 하면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던 이전 병원과 다르게 이 병원은 미리 예약을 하고 방문을 했는데도 한 시간이 넘게 대기를 해야 했다. 게다가 방문하는 환자들의 모습들도 가지각색이었다. 나처럼 초진을 보러 온 것 같은 젊은 부부들도 있었고, 이미 만삭인 상태로 엄마의 손을 잡고 온 임산부도 있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또 하나를 임신해서 온 임산부도 있었고. 대부분은 누군가와 함께 병원에 방문한 상태였고, 이렇게 혼자서 혈혈단신으로 찾아온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사실은 남편이 같이 가준다고 했는데, 검사만 받는 간단한 일인데 굳이 바쁜 사람에게 연차를 내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내가 거절했던 거였다. 그런데 막상 지인들과 함께 병원을 찾은 사람들을 보니 이 모든 과정을 나 혼자 한다는 사실이 조금 청승맞게 느껴졌다. 게다가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방문한 이곳에서마저 유산이라는 소견을 듣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막막함도 있었다.
그래도 씩씩하게 병원에 들어섰다. 결과는 예측 가능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하나의 가능성을 부여잡고 진료를 기다렸다. 하지만 큰 병원의 초음파도 마찬가지였다. 정상 임신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 결국에는 유산이 진행되고 있다는 거였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엘레베이터에서 만삭인 임산부를 마주쳤다. 옆에 있는 엄마처럼 보이는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임신으로 인한 몸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 여자를 보며 처음으로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문을 나서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준비했고, 임신에 성공해 14주를 넘기고 있는 친구였다. 나의 결과를 제일 궁금해하고 또 응원해준 사람이었다. 친구가 전화를 받자마자 '정상 임신이 아니래'를 말하는데 왈칵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애를 지워야한다는 말을 하면서 펑펑 울었다. 전화기 너머에서도 친구가 눈물을 흘리는 소리가 들렸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고 나는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펑펑 소리내서 울었다. 역시 병원에 혼자 오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