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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딘이 Jun 02. 2024

시험관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더라면(3)

배아를 이식하던 날, 배에 넣어줬던 사탕의 의미

그렇게 쉬는 한 달 간은 임신에 대한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엽산이나 비타민D 같은 영양제는 잊지 않고 꾸준히 챙겨 먹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마음 편하게 놀았다. 기분 전환 차원에서 남편과 술도 자주 마셨고, 스스로에게 기분전환이라도 시켜주고 싶은 마음에 파격적으로 히피펌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임신하게 되면 펌을 못한다고 하니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시도해보고 싶은 머리 스타일을 해보려는 거였다.


그렇게 한달여가 금방 지나가고 또 다시 생리를 시작했다. 이번에 드디어 하나 남은 난자의 배아 이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컨디션도 전보다 많이 올라와서 배란을 도와주는 주사는 딱 한 번만 맞았다. 그 외에 아스피린도 처방 받았다. 선생님은 스테로이드도 추천해주셨지만 내가 단박에 거절했다. 시험관을 처음 시작하던 당시만 해도 몸이 조금 힘들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다하자는 '짧고 굵게' 정신이었다면 지금은 내 몸에 조금이라도 무리가 갈 것 같은 것은 최대한 지양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한 차례의 주사와 꾸준한 약 복용 후 드디어 배아 이식의 날이 밝았다. 시술은 오후 1시반에 진행됐다. 시술 전 주의사항은 별개 없었다. 시술 전 2시간 전부터 물을 500ml 마시고 소변을 보면 안된다는 것을 빼고는. 채취할 때는 수면마취까지 진행했었는데, 이번에는 간단한 시술이라고 하셨다. 인공수정할 때랑 비슷하다고.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수술실에 눕자 내 손에 휴대폰 대신 라이언 인형이 주어졌다


커다란 수액 한통을 맞으면서 누워있다 차례가 되자 수술실로 안내됐다. 시술이라더니 왜 수술실로? 라는 생각에 약간 겁이 났다. 수술실 베드에 누워있자니 간호사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간호사 선생님이 내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가져가셨다. (병원에서는 처음부터 내가 수술실에 들어올 때 휴대폰을 꼭 들고 들어오라고 일러주셨었다.) 그리곤 내 손에는 휴대폰 대신 팔뚝 사이즈 정도 되는 카카오 라이언 인형을 쥐어주셨다. 간호사 선생님에게 '이 인형은 대체 왜?'라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쥐고 있으세요"라며 안심하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어두운 수술실에 들어오니 괜히 더 긴장되기 시작했다. 사실 배아 이식을 하기 전에 의사 선생님에게 얼마나 아프냐고 물어봤었는데 선생님은 '인공수정과 비슷하다'고 하셨었다. 그래서 그냥 누워있다보면 느낌없이 끝나는 그런 류의 것으로만 생각하고 왔었기 때문에 갑자기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미리 후기라도 찾아보고 올 걸 그랬나. 왜 항상 나는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걸까. 결정하기 전에, 하기 전에 미리 알아보면 좋았을걸.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먼저 초음파를 확인하셨다. 내막은 잘 자랐다고. 그러는 동안 옆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내 아랫배를 굉장히 강도 높게 누르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물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 소변도 못 봐서 방광이 매우 꽉 찬 상태였는데 힘을 줘서 누르니까 진짜 소변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자궁 상태를 확인한 후 동결됐다가 해동시킨 배아를 자궁 속에 넣어주셨다. 그 때 약간 욱신하거나 뻑뻑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통증이 느껴질 때는 라이언 인형을 꽉 쥐고 있으니 그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라이언 인형의 용도를 그렇게 찾아냈다!) 무엇보다도 내 바로 옆에 커다란 초음파 화면으로 배아가 들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가 있어서 그걸 보느라 아픈 것도 잠시 잊었다. 선생님이 배아를 넣자마자 설명해주셨다. "지금 배아가 잘 들어갔고 엄청 작아서 잘은 안보일테지만 잠깐 반짝거렸던 게 배아예요. 이게 이제 잘 착상되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끝났습니다. 고생하셨어요."


갑자기 다른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내 휴대폰을 가져와 자궁 초음파 화면을 여러 장 찍어주셨다.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오라고 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나중에 휴대폰 사진첩을 확인해보니 내 자궁 초음파 사진 뿐만 아니라 배아가 세포 분열을 하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너무나 작은 세포 덩어리들일 뿐인데, 이게 잘 되면 사람의 모습으로 바뀔 수도 있다니 괜히 그 세포 덩어리에 감정 이입이 돼 귀엽게 느껴졌다.


시술을 끝내고 누워 있는데 사탕 3개가 내 뱃속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시술을 끝내고 나머지 수액을 한 통 더 맞으며 누워있는데 아까 그 간호사 선생님이 조용히 들어오셔서는 내 시술복 치마의 배 부분을 들어 그 안에 사탕을 몇 개 넣고 돌돌 말아 고정시켜주셨다. "어떤 산모님이 하던 걸 봤는데, 아기들이 사탕을 좋아하잖아요. 달달해서. 그러니까 달달한 사탕 냄새 맡고 엄마 자궁에 착 달라붙으라고 이렇게 한대요." 그렇게 흐뭇하게 웃으며 내 배 속에 사탕을 넣어주고는 나가셨다.


수액을 2통째 맞느라 왼팔이 욱신거리고 어깨까지 아팠던 와중에 그 귀엽고 따뜻한 상상력에 절로 웃음이 번졌다. 얼마나 간절하면 이런 행동을 할까 싶어 울컥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아기들이 사탕을 좋아해서 배 위에 이렇게 붙여놓는다는 상상이 너무 귀여워 오랫동안 그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미신일지라도 그렇게해서라도 우리 아기가 자궁에 착 달라붙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도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수액을 다 맞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은 날씨가 참 맑았다. 미세먼지도 없고 따뜻한 봄 날씨였다. 착상이 잘 되고 있을까. 이번에는 우리 아기를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이번에는 꼭 찾아와주면 좋겠는데. 괜한 걱정에 잠겨있을 때 마침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시술은 잘 끝났냐며, 고생했다고 뭐 먹고싶은 건 없냐는 거였다. 웃으면서 순대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순대국 소리에 부리나케 퇴근한 남편과 만나 병원에서 있었던 사탕 이야기, 라이언 인형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놨다. 남편은 적절한 리액션을 섞어가면서 내 얘기를 들어줬다. 세포와 자궁 초음파 사진을 보여줬더니 엄청 신기해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시술이 진행되는 동안은 너무 힘들고 괴롭다는 생각만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끝나고 보니 바로 맞은 편에 앉아있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왔다. 본인도 회사 일 때문에 많이 바쁠 시기였을텐데 이렇게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내 옆에 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시술이 진행되는 동안 내가 아파할 때마다 내내 옆에서 간호해주고, 시험관 시술로 다리가 다친 후부터는 저녁마다 내 다리를 마사지해주는 남편이 없었다면 나는 이 과정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관 때문에 아픈 나를 많이 걱정해주시고 격려해주셨던 시부모님과 우리 엄마 아빠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특히 나는 엄마가 걱정할까봐 시험관 시술을 진행할 때는 엄마에게 그 사실을 말하진 못했었는데, (인공수정을 할 때도 내 건강을 엄청 걱정했던 우리 엄마였기 때문이다.) 시험관이 끝나고 회복 기간에 엄마가 만들어주는 갈비찜이 너무 생각난다고 전화를 한 번 했었다. 그러자 엄마는 그날 바로 장을 봐와서 갈비찜을 만들어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우리 집 앞까지 찾아와 갈비찜을 두고 가셨다. 엄마의 갈비찜을 먹고 나는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내 옆에 있는 남편, 그리고 내 임신을 응원해주는 우리 부모님을 보면서 힘을 얻기로 했다.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덕분에 감사한 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기에 그 마음만을 기억하기로 하고 지난했던 시험관 여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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