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당첨만큼 어렵다는 인공수정 첫 회만에 임신이 되다
시술을 받은 후 그대로 30분 정도 따뜻한 베드에 누워있다 나왔다. 시술은 생각보다 거의 아무 느낌이 없었고, 그저 누워있는 내내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 벌써 이렇게 결혼을 해서 임신 준비를 위해 난임 병원을 찾고 있나. 2년 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들인데, 너무나 빠르게 모든 것들이 스쳐지나가는 느낌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진짜 어른이 됐고, 이제는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격세지감까지 들기도 했다.
병원 문을 나서니 부슬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11월이었는데도 이상 기온 탓인지 다행히 날씨가 많이 춥지는 않았다. 오후 반차까지 냈는데, 이대로 집에 가긴 너무 아쉬운데. 마침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게 생각났다. 불현듯 순대국이 떠올라서 부슬비가 오는 거리를 추적추적 걸어 순대국 집으로 향했다. 어쩌면 지금 나는 임신이 되고 있을지도? 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면서.
순대국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내내 소파에 누워있었다. 기대는 안했지만, 그래도 시술받고 나서는 괜히 움직이지말고 누워있어야 성공 확률이 올라갈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면서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집으로 온 남편은 오자마자 내 상태를 궁금해하며, 시술은 어땠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고, 남편의 호들갑이 민망할 정도로 나는 평소와 똑같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해줬다.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피검사는 인공수정 시술 후 정확히 2주 뒤에 예정돼 있었다. 그 기간 동안은 유산을 막아주는 질정을 꼬박꼬박 넣고, 엽산도 먹으면서 지냈다. 착상에 도움이 될지 모르니 한동안 먹지 않았던 아침도 의식적으로 챙겨먹으려고 노력했다.
2주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처음 인공수정을 시도할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시술을 받고 오니 그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오직 임신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되지 않은 것 같다는 좌절감 속에서 피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커뮤니티에서 임신 초기 증상, 극초기 증상들을 마구 찾아봤다. 속이 더부룩해지고, 소화도 잘 안되고 뭐 그런다는. 그런데 착상이 일어나면 생긴다는 그 증상들이 내게는 전혀 발현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10일쯤 지난 날에는 임테기도 해봤다. 10일쯤 부터는 희미하게 두 줄이 보인다고들 하길래. 그런데 너무나도 명확한 한 줄이 나왔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쉽게 될리가 없지. 마음을 완전히 비운 상태로 4일을 더 보내고, 피검사를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가 "혹시 아침에 임테기 해보셨어요?"라고 물었다. 10일 전에 했었는데 한줄이었다고 이야기하려다, 좋은 소식도 아닌데 긴말하고 싶지 않아 그냥 안했다고만 했다. 엄밀히 따지면 오늘 아침엔 안해본 게 맞으니까. 어차피 임신도 아닌데 팔뚝에 또 주사 바늘을 꽂아야 한다니, 라고 작게 궁시렁 거리면서 피검사를 마치고 나왔다.
한창 근무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피검사 수치 결과를 알려주기 위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간호사는 수치가 80대가 나왔다고 말했다. "80이라는 게 뭔가요?" 내가 되물었다. 당시 나는 전혀 몰랐다. 수치가 10만 넘어가도 임신이라는 것을. 반대편에서 간호사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임신되셨어요." 간호사의 말이 전혀 믿기지가 않았다. 네? 제가 진짜 임신이 됐다고요? 이렇게 한 번에? 이게 꿈이야 생시야. 휴대폰을 든 채로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재택근무중이었으니 망정이지, 회사에서 일하다 받기라도 했으면 옆에 있는 직원들이 무슨 복권에라도 당첨됐냐며 궁금해했을 정도였다.
누구보다 이 결과를 궁금해하고 있을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임신이라는 걸 알리자마자 남편은 믿을 수가 없다며 뛸듯이 기뻐했다. 결과가 안 좋을때 나만큼이나 상심이 클 남편을 위해 인공수정 1차 시도만에 되는 건 거의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나 마찬가지로 희박하니 절대 기대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당장 시부모님에게 전화해서 이 사실을 알리고 싶다고 했지만, 아직 너무 초기이니 내가 좀 더 지켜보자고 말렸다.
수치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던 나는 그제서야 80이라는 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찾아볼 여유가 생겼다. 보통 피검사를 했을 때 10이 넘어가면 임신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틀 뒤, 또 이틀 뒤 피검사를 했을 때 그 수치가 2배 이상씩 올라가는 안정적인 '더블링' 상태가 됐을 때 임신이 잘 유지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나의 경우에는 처음에 80이 나왔기 때문에, 이틀 뒤에는 160대, 또 이틀 뒤에는 320대 이상이 나와야 정상적으로 임신이 진행되고 있다는 거였다. 결국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좀 더 지켜봐야 하는 단계였다.
아직 양가 부모님에게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조촐하게나마 자축하고 싶었다. 결승점까지 42.195km가 남은 마라톤을 이제 막 달리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마라톤이 아니라 100m 달리기 였던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퇴근 후 집에서 마주한 우리는 보자마자 서로를 격하게 끌어안았다. 남편도 나처럼 하루 종일을 구름에 떠있는 듯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다가 돌아왔으리라. 모든 것이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고, 아기 태명은 뭐라고 지을지, 성별은 뭐가 좋을지, 어떤 태몽을 꾸게 될런지 밤 늦게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 우리 앞에 어떤 시련이 남아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