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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딘이 Jun 02. 2024

시험관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더라면(2)

우여곡절 끝의 난자 채취, 이제 시험관 후유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난자 채취 날짜가 정해진 후에 주사를 몇 개 더 놨었다. 그 주사를 맞고 나니까 몸이 신기할 정도로 다 노랗게 변해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 외의 몸에 큰 변화는 없었다. 이런 이벤트들도 이제 며칠 뒤면 끝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지기도 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주사들도 안녕이구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한터라 그만큼 좋은 난자를 많이 채취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채취하기 전 초음파로 확인한 난자의 갯수는 2개밖에 되지 않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2개?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겨우 2개 밖에 없다고? 누군가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누구를 원망하겠나. 내 몸이 그렇게 반응했다는데. 그냥 속으로 삭힐 수밖에. 서운한 마음을 부여잡고 수면마취에 들어갔다.


마취가 깨고 몽롱한 정신으로 남편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 왈. 난자는 3개를 채취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중에 2개는 수정을 시도할 수 없는 정도의 컨디션이고, 다른 한 개도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아 한 번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절망적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난임 커뮤니티에서 시험관 시술 후기들을 살펴봤는데 다들 꽤 많은 양의 난자를 채취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험관 1차만에 성공했던 내 지인도 난자만 8개를 추출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겨우 3개, 그리고 그 중에 2개는 아예 시도도 못할 정도의 컨디션이라니. 그러니까 결국 난자 1개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난자의 갯수를 듣고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되는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진짜 눈물이 다 날 것만 같았다. 이렇게까지 고생했던 게 다 수포로 돌아가는 느낌이었고 대체 매일 밤마다 그 쌩쑈는 왜 했으며, 그 두통과 몸살, 다리 통증은 다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싶었다. 좋은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서 그 모든 과정을 이 악물고 버텼는데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에는 그냥 병원에 의사 선생님 마저도 너무 원망스러웠다.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하라는 거 다 했는데요. 약도 다 충실히 먹고, 주사도 꼬박꼬박 맞고 다 했는데요. 


그런데 당시에는 그런 기분을 드러내면서 화내고 슬퍼할 기운 조차도 없었다. 수면 마취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우 몽롱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난자 채취 때문인지 배에서는 계속 생리통처럼 미세한 통증까지 느껴졌다. 일단 내 몸을 먼저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그저 흔들리는 정신을 붙잡고 남편의 부축을 받아 묵묵히 병원을 나왔다.


당초 우리의 계획은 수정하기 전에 건강한 난자를 이식하기 위해서 난자가 추출되면 유전자 검사도 받아보려고 했었다. 유전자 검사 비용은 정부 지원금에 포함되지 않지만, 남편 회사에서 난임 시술비 지원이 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했다. 그런데 유전자 검사 과정에서 자칫하면 난자가 수정조차 할 수 없는 컨디션이 돼 버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더 듣지도 않고 유전자 검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난자가 잘못돼서 수정이 안되더라도, 그래서 착상이 안되더라도, 아니면 중도에 유산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럴 확률이 있더라도 최소한 이식이라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유전자 검사 과정에서 쓸 수 없게 돼버리면 그만큼 허무한 일이 또 없을 것 같았다. 지레 낮은 확률에 겁을 먹고 그나마 남아있는 난자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시술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자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미세 수정으로 1개 난자의 수정이 완료됐다는 문자였다.


이제 아픈 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른 곳이 아프기 시작했다


난자 채취가 끝나고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올 줄 알았던 몸은 꽤 오랜 회복 시간을 거쳤다. 일단은 눈에 띄게 살이 많이 쪘다. 인공수정을 할 때까지만 해도 안그랬는데, 시험관을 시작하고 주사를 맞으면서 배가 계속 부풀어 오르듯이 튀어나왔다. 이건 시술이 끝나도 다시 돌아올 생각을 안했다. 온 몸에 심했던 붓기도 가실 줄 몰랐다. 조금만 활동을 오래 지속해도 금방 피곤해졌다. 그래도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다보면 금방 돌아오겠지 싶은 마음에 원래의 컨디션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며칠 뒤 아침에 일어났는데 왼쪽 턱관절이 너무 아픈거다. 뭘 제대로 씹을 수조차 없었다. 이상했다. 한 번도 턱관절이 아파 본 적이 없었는데. 안그래도 지난번에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서 근육통 때문에 다친 다리가 아직까지 욱신거리는 상태에서 턱까지 말썽이라니.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봐도 딱히 아플 이유가 없었다. 결국 턱관절 전문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의사 선생님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나요?"라고 물어보셨다. 


의사 선생님 왈. 몸이 많이 약해지고 잠을 제대로 못자서 턱 관절이 아픈 거라고 했다. 특히 나처럼 한 번도 턱관절이 아파본 적이 없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게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요즘 제대로 영양 섭취를 안하거나, 잠을 잘 못 자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턱에 문제가 생겨서 찾아온다고. 그러면서 선생님은 턱관절을 낫게 하는 약이 아닌 우울증에 효과가 있는 약을 처방해주셨다. 


충격적이었다. 내 몸이 그동안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고? 난자 채취한 다음날 바로 회사에 출근했을 때도 나는 내가 이제 어느 정도는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다가 무심코 내 배를 쳐다보곤 깨달았다. 주사 흔적 때문에 여기저기 사방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온전한 내 몸을 위해 한 달을 쉬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 번째 생리를 시작하고 난임 병원으로 향했다. 배아 이식을 위한 날짜를 잡기 위해서였다. 병원에서는 배란을 위한 추가 주사들을 처방하겠다고 했다. 지금 몸이 컨디션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이런 주사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맞아야 하는 주사들과 처방될 약들을 들으니 '지금은 쉬어야할 때'라는 생각이 버뜩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 몸들이 그 많은 주사들과 약들을 또 견딜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이러다가는 진짜 우울증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턱관절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해당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보여주니 선생님도 우울증 약이 처방된 걸 보고 약간 놀라셨다. 나는 한 달을 쉬어가야겠다고 단호하게 말씀드렸고 선생님도 환자가 최상의 컨디션일 때 이식하는 것이 더 좋다며 동의하셨다. 그러면서 한 달 뒤에 배아 이식을 하게 되면 그때는 지금처럼 맞아야할 주사의 양이나 약도 많이 줄어들 테니 오히려 더 좋을 거라고 하셨다. 결국 그렇게 나는 배아 이식은 한 달 뒤로 미루기로 하고 온전히 내 몸을 회복하기 위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 조금은 후련한 마음으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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