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이라고 좌절할 필요 없다.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
몇 년 전 인터넷 기사에서 여자의 자궁을 이식한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지금도 이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당시에 의학 기술의 발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궁까지도 이식할 수 있는 세상이 진짜 도래했다는 생각에.
난임 진단을 받고 상심에 빠져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자궁도 이식 가능한 세상인데, 임신 쯤이야. 물론 과정이 힘들긴 하겠지만 아예 안되는 것도 아니고,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들은 충분히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면 여자가 소박을 맞고 쫓겨나는 일이 흔했으며, 남편이 첩을 들이는 일도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가까운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임신이 안되면 그저 속절없이 기다리다 속이 까맣게 탈 뿐이지 딱히 어떤 치료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지금처럼 임신이 안되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래서 어떤 노력들을 해볼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훨씬 낫다. 최소한 지금 우리의 상태가 어떤지, 그러니까 난소와 정자의 컨디션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좀 더 적극적인 임신 시도를 위해 인공수정과 시험관이라는 시술도 있다. 심지어 이런 시술들은 자연 임신보다 확률도 훨씬 높다.
임신이 어려운 몸인건 어쩔 수 없고, 그래서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내가 처음 내가 시도했던 것이 바로 인공수정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불던 11월의 끝자락, 난임 진단을 받은 나는 인공 수정을 위해 난임 병원을 찾았다.
처음 인공수정에 관한 상담을 받고,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든 생각은 '솔직히 이게 진짜 될까'하는 마음이었다. 임신 확률이 10%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연임신 보다 겨우 약간 높은 확률이었다. 커뮤니티에서도 인공수정 첫 회만에 임신이 되는 건 거의 기적과도 같은 확률이라고 했다. 오죽하면 난임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로또 맞았다'는 표현까지 썼다.
나는 뽑기 운이 좋다거나, 남들이 잘 안되는 게 쉽게 되는 타입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정 반대였다. '운이 좋아서 얻어 걸렸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내 인생에 거의 없었다. 내게 찾아온 대부분의 행운은 끊임없는 도전과 인내와 기다림 속에서 일궈낸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 인공수정도 딱히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단순히 앞으로 몇 년이나 걸릴 지 모를 장기전에 대비해 난임 시술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 지 한 번 경험해보고자 하는 편안한 마음이었다.
병원에서 지정해준 영양제들을 꾸준히 먹고, 주사도 맞고 드디어 대망의 시술 날이 밝았다. 남편은 오전에 일찍 가서 정자 채취를 끝냈고, 나는 이식을 위해 회사에 오후 반차를 내고 병원으로 갔다. 초조한 마음으로 베드에 누워 이식을 기다렸다. 시술하려는 의사의 손을 꼭 잡고는"선생님, 이거 끝나면 바로 다음 달에 시험관 시도할 수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의사는 아직 인공수정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벌써부터 실패할 생각을 하고 있는 환자에게 오히려 희망을 불어넣어줬다. "이번에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일단 한 번 지켜보시죠. 좋은 소식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선생님, 선생님이 잘 모르셔서 그런데 저는 그렇게까지 운이 좋은 사람은 아니랍니다. 첫 시도에 바로 임신이 된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이미 마음 속 깊이 느끼고 있었다. 난임 진단을 받으러 가기 전인 6개월동안 자연임신을 열심히 시도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에 내 마음은 온통 실패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장기전으로 갈 것 같다, 가 나의 예상이었다. 낮은 확률에 괜한 희망을 걸었다가 실망의 크기를 더이상 키우고 싶지 않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