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 유산인줄로만 알았는데 아기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틀 뒤에 또 한차례 피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조금 이상했다. 수치가 160 이상은 나와야하는데 애매하게 낮은 130대가 나왔다. 병원에서는 아직 이 정도로는 유산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니 이틀 뒤에 한 번 더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이틀동안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더니, 금세 축 쳐졌다. 세상 모든게 아름다워보이더니 지금은 다 우중충하게 뒤바꼈다. 그래도 아직 모르는 거라며 마음을 다잡고 이틀 뒤에 또 검사를 했다. 이번에는 210대. 수치는 계속 오르는 상태였지만 더블링은 잘 안되고 있었다. 의사도 난색을 표했다. 아무래도 화학적 유산이 진행 중인거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화학적 유산. 난임 커뮤니티를 살펴보니 임신 초기에 화학적 유산을 경험할 확률이 꽤 높다고 나와 있었다.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솜사탕같이 몽글몽글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차게 식어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지 겨우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마음이 아파왔다. 의사는 어떻게 유산하는 것이 좋을지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다. 자연적으로 유산이 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병원을 나오면서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다. 더블링이 잘 안되고 있다고, 아무래도 유산될 것 같다고 했다고. 남편은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한 듯했지만, 곧 내 걱정부터 해줬다. 둘 다 양가 부모님께 이야기하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여겼다. 우리 둘 다 집안의 첫째들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첫 손주를 바라고 계실 분들이었다. 그 분들에게 이런 소식을 전해야 했다면, 앞이 진짜 캄캄했을 거다.
남편은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기분 전환을 해준다고 평소에는 잘 가지 않았던 근교로 데이트도 나가고, 임신 때문에 그동안 끊었던 술도 오랜만에 한 잔 했다. 노력하는 남편을 봐서라도 빨리 평상시처럼 돌아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사람 형상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콩알만한, 아니 콩알보다도 작은 세포 덩어리가 없어지는 건데 이렇게까지 우울해할 필요 있냐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며칠 뒤에 어떻게 유산하는 게 좋을 지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살펴보는데 의사가 놀라워하며 이야기했다. "어? 여기 아기집이 보이는데요?" 내 자궁 초음파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동그란 모양의 아기집이 보이기 시작한거다. 의사는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조금 늦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일단 경과를 지켜보자면서.
초음파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의사가 원망스러웠다. 지난 주말까지는 유산이 진행되고 있다더니, 그래서 주말에 술도 마셨는데! 내가 당황하며 "선생님이 유산이라고 하셔서 저 지난주에 술도 마셨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의사는 짐짓 놀라더니 "지금 단계에서 음주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거다. 앞으로 안마시면 된다"고 웃으며 둘러댔다. 그게 정말 괜찮은 거였는지, 아니면 본인이 실수한 셈이니 그렇게 얼버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이렇게 돼버린 이상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생긴 아기를 낳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건강하기를 바랄 수밖에.
손에 초음파 사진을 들고 병원을 나서며 남편에게 사진부터 전송했다. 남편은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이게 뭐야? 임신이래! 뭐? 어떻게 임신이야?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니 남편은 즐거운 환호성도 잠시, 지난 주말에 술을 마셨던 기억을 떠올렸다. 남편은 괜히 느낌이 이상해서 마시지 말라고 할 걸 그랬다며, 유산이라고 확진한 병원을 원망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둘 다 앞으로가 중요하다면서 마음을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