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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딘이 Jun 01. 2024

30대 중반, 난임 판정을 받았다

임신에 성공할 때까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긴 여정이 시작됐다

결혼을 늦게 했다. 만으로 35세에 했으니까 사실 꽤 늦은 축에 속했다. 늦게 결혼한 만큼 우리는 결혼하자마자 바로 임신 준비에 돌입했다. 당시 우리 부부에게 신혼의 단 꿈이나 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는 로망은 사치와도 같았다. 35년간 충분히 재밌게 지냈으면 됐잖아? 남편은 그래도 최소한 6개월 정도는 둘만의 신혼 기간을 갖자고 했지만 마음이 조급했던 내가 그를 재촉했다.


잔인하게도 여성의 생식기능은 남성보다 노화가 훨씬 빨리 찾아온다. 평균적으로 만 34세가 넘어가면 그때부터 여자는 임신과 출산이 어려운 상태로 분류된다. 어찌저찌 임신이 되더라도 고위험군의 임산부로 분류돼 이것저것 받아야하는 검사들도 급속도로 많아진다. 건강하게 태아를 출산하게 될 때까지 챙겨야 할 것들도 많아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마의 나이 34세를 무려 1년이나 넘긴 나로서는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임신 준비 검사 후, 생각보다 늙은 난소 나이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하자마자 산부인과에서 임신 준비를 위한 검사부터 진행했다. 다른 부분은 큰 이상이 없었지만 문제는 난소 나이였다. 실제 내 나이보다 몇 년 가량이나 높게 나왔다. 당시에 검사 결과를 받아들고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원인이 무엇인지 물어봤지만 의사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것들이 엮여있을거라 딱 한 가지라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 흡연은 해본 적도 없고, 술은 가끔 마셔도 커피나 탄산음료, 가공육 같이 몸에 안 좋다는 건 거의 입에도 안 대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소 주 2~3회 이상은 땀 흘리는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나름대로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기 때문에 결과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희망이 있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금방 임신이 될 줄 알았다. 남들 다 하는 임신이니까. 가장 가까이서 지켜 본 우리 엄마만 봐도 그랬다. 나를 포함해 자식 넷을 낳은 우리 엄마는 저출산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지금에 비춰볼 때 '다산의 여왕'이었다. 말 그대로 순풍 순풍 자식들을 낳았다. 물론 어린 자식에게 임신으로 인한 불편함이나 산고의 고통을 티내지 않으려 엄마 스스로 노력한 것도 있었겠지만, 엄마가 배가 불러왔던 모습을 3번이나 지켜보며 자라왔던 나로서는 임신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우리집 막내는 엄마가 마흔이 넘어서 가진 자식이었기에, 그러니까 나도 엄마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딸이니까, 나이를 먹었어도 임신은 금방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노산'이니 '난임'이니 하는 말들은 내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렇게 힘든 기다림과 고통, 눈물의 세월이 내 눈앞에 펼쳐질 거라고는 예상조차 못한 채.


내가 난임이라고요? 믿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난소 나이에 낙담하고 있을 새가 없었다. 바로 임신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 아기는 쉽게 찾아와주지 않았다. 그렇게 노력한 시간이 6개월째 접어들때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그래도 한 1년 정도는 자연임신을 시도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자꾸 난소 나이가 떠올랐다. 어차피 아이를 가질 거라면 체력적으로 하루라도 젊을 때 가지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도 떠올랐다. 더 늦기 전에 거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원래 결심이 확고해지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타입인지라 병원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다. 운 좋게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지 얼마 안 된 난임병원이 있어 곧바로 예약을 잡고 남편과 상담을 받으러 갔다.


병원에서는 일단 검사부터 받아보자고 했다. 나는 피검사와 자궁초음파, 나팔관 검사 등 많은 검사를 받았다. 남편은 상대적으로 매우 간단했다. 정자 검사만 받았다. 안 그래도 생식 기능이 남자보다 빠르게 늙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여성들은 검사도 받아야할 것들이 훨씬 많았다. 나중에 난임 시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지금 이 검사 과정은 새발의 피일 정도로 여성들이 짊어져야 할 짐들이 훨씬 많이 늘어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병원 검사 결과, 나는 나팔관 한 쪽이 막혀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쩐지 나팔관 조영술을 받을 때 아랫배에 유독 통증이 심하더라니. 남편 역시 그다지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정자의 활동성이 평균보다 조금 낮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는 이미 난소 나이에서 어느 정도 기대를 내려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좋지 못한 검사 결과에 담담할 수 있었지만, 남편은 꽤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는 자신의 정자 상태를 대해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점점 감정이 고조되더니 종국에는 임신이 안될 것 같으면 그냥 우리끼리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렇게 우리는 난임 부부로 진단을 받았다. 결혼 연령대가 빠르게 높아져서 난임이 심각한 문제라고는 들었지만 그 당사자가 우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난임병원에 가보자는 나에게 1년까지만 자연임신을 더 시도해보자고 미뤄왔던 남편도 처참한 현실 앞에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난임 시술을 받는 데 동의했다.


임신에 성공할 때까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긴 여정이 시작됐다


머리는 어질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 말이다. 병원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했다.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 둘 다 처음 들어보는 시술이었고 기본적인 정보도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뭘 선택해야 할 지 몰랐다. 의사 선생님은 확률의 문제라고 했다. 인공수정이 확률이 더 낮고 사실상 자연임신과 비슷한 확률이라고 했다. 시험관은 맞아야하는 주사들도 많고 시술도 좀 더 복잡한 대신에 확률이 많이 올라간다고 했다. 그런데 당장 시험관을 하기에는 시기상 조금 늦었으니 일단 가볍게 인공수정부터 시도해보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임신 준비 중인 친구에게 연락해 병원에 다녀왔던 일을 말해줬다. 친구는 난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하나를 추천해줬다.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난임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별 문제가 없는데도 오랫동안 난임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보다 더 안좋은 상황에서도 임신에 성공해 예쁜 아기를 키우고 있다는 글들도 많았다. 현대 의학이 이렇게까지 발전하고, 심지어 자궁도 이식할 수 있게 된 마당에도 여전히 임신만큼은 운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난임 때문에 오랫동안 힘들어하다가 성공한 선배들의 조언들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임신이 된다는 것.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우리도 계속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될거라고. 그런데 혹시라도 안되면 어쩌지? 사실 아직까지는 안됐을 때의 상황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다. 남편은 농담처럼 '안되면 그냥 우리 둘이 지금처럼 재밌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글쎄. 남편도 나도 둘 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되지 않겠어? 라는 장밋빛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다.


노력해서 어렵게 가질 수 있기에 더 귀하게 여길 것 같다


종종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는 귀여운 아기들 영상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때가 있다. 밖에 나가면 놀이터에서, 카페에서, 마트에서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는 아이들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볼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 부부에게도 아기가 생긴다면 어떤 아기가 찾아올까,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싶은 상상에 잠긴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진짜 아기를 갖고 싶고,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앞두고 전 남자친구이자 지금의 남편과 자녀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는 우리 둘 다 당연히 결혼하면 아기는 가져야하는 것이라는 어쩌면 조금은 고지식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결혼하고 살아보니, 그리고 난임 판정을 받은 후에는 아기가 진짜 갖고 싶어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어쩌면 남들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내게는 어렵게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더 간절하게 느껴지는 걸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절실하게 원했던 만큼 그걸 가졌을 때 더 귀하게 여겨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예전의 나는 아이를 가질 제대로 된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임 판정을 받은 후의 나는 조금씩 엄마가 되고 싶다는 진지한 마음이 생기고, 진짜 엄마가 될 준비를 시작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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