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피하게 되는 이야기
얼마 전 시댁에서 밥을 먹다가 아버님께서 조심스럽게 이런 말씀을 꺼내셨어요.
혹시 돈을 조금만 빌려줄 수 있을까?
시부모님이 지금 살고 계신 집이 곧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분담금도 필요하고, 전세집도 새로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 은행보다 가족인 저희에게 빌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구체적인 금액 이야기가 나오기도 전에 어머님이 먼저 아버님의 입을 막으셨어요. “가족끼리는 돈 얘기 하는 거 아니야.” 그러시면서 말이죠. 그렇게 그 얘기는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로 넘어가버렸고, 아버님도 더 이상은 말을 꺼내지 않으셨죠.
솔직히 말하면, 저희 입장에서는 조금 안도하기도 했어요. 아버님이 생각하시는 금액을 당장 빌려드릴 형편도 안됐고, 저희 돈 대부분이 주식 계좌에 들어가 있어서 쉽게 꺼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이후로 어머님의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았어요.
가족끼리는 돈 얘기 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돈 이야기는 누구랑 해야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말이 꽤 이상한거예요. 돈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잖아요. 집을 구할 때도, 아이를 키울 때도, 노후를 준비할 때도 결국 돈이 빠질 수 없습니다. 없으면 사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지장을 받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대체 누구와 돈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걸까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도,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도 사실 돈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아요. 다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있으면서도, 막상 모이면 돈 이야기는 괜히 꺼내기 조심스러운 금기 같은 주제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쉽게 돈 이야기를 합니다. 유튜브, 강연, 전문가 상담,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어떤 상품이 좋을지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에게 묻죠. 물론 자산운용사 같은 전문가들에게 묻는 건 좋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 외의 경우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대박 난다는 소문만 믿고 들어갔다가 큰 손실을 보기도 하고, 주식리딩방 같이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산 주식이 상장폐지되는 일도 생깁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가까운 사람들과 돈 이야기를 하는 건 불편해하고 피하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듣는 돈 이야기가 많은 경우에 ‘빌려달라’는 이야기로 시작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업이 망했을 때, 사기를 당했을 때, 도박으로 돈을 잃었을 때, 그럴 때 갑자기 꺼내지는 돈 이야기들. 그래서 자연스럽게 ‘돈 얘기 = 곤란한 상황’이라는 인식이 쌓여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서로를 너무 쉽게 돈으로만 비교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이에요. 돈 이야기를 하면 “얼마 있어?”, “얼마 벌어?” 이 질문으로 금세 바뀌고, 그게 곧 사람을 줄 세우는 기준이 되어버립니다. 부동산이 이걸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죠. 모두가 서울에 살고 싶어 하고, 그중에서도 강남을 선호하는 현상까지 일어나잖아요. 어느 동네에 사느냐가 나의 서열을 결정하는 나라.
하지만 돈 이야기가 꼭 자랑이거나 부탁일 필요는 없잖아요. 요즘 어떤 산업이 커지고 있는지, 어디에 기회가 있는지, 어떻게 돈을 굴려야 좋을지, 이런 것도 다 돈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과는 이런 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서로의 생각을 듣고, 정보를 나누고, 함께 조금씩 더 풍족하게 살고 싶거든요. 그래서 이 브런치에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에서도 편하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들을 여기서는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나눠보고 싶어서요. 언젠가는 돈 이야기가 더 이상 불편하거나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주제가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