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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민 Nov 10. 2019

골목에서 찾은 한국형 라스트마일
딜리버리와 풀필먼트

 

TV 고치다 LED마스크 산 사연


출장 중에 아내로부터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TV가 고장 났단다. “A/S 방문수리를 신청… (하면 되지 않겠냐)”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뚜뚜 뚜~’ 통화가 끊겼다. 그리고 며칠 뒤,   돌아온 필자는 간단한 부품 교체로 부활한 TV로 8시 뉴스를 시청 중이었다. 마침 거실에 있던 아내는 붉은 빛이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나: “그거 머야?” / 아내: “LED마스크!”

나: “언제 샀어?” / 아내: “TV 고칠 때!”

나: “(…) 어! 엉?”  


사연인즉, A/S기사님이 수리를 마치고 TV를 점검 중인데, 때마침 홈쇼핑 채널에서 LED마스크를 판매하고 있다더라. 얼마 전 둘째 처제가 자랑하던 LED마스크를 호시탐탐 탐내던 아내는 이윽고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한 것이다. 이때 그 광경을 지켜본 A/S기사님 왈 “사모님! 그 제품 말이에요. 저희 회사에서 할인 프로모션 중입니다.” 아내는 그분과 상담 5분 만에 홈쇼핑보다 싼 가격에 LED마스크를 구매해 버렸다.


설명: 필자도 그때 구입한 아내의 LED마스크로 피부 관리 중이다.


얼마 전에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로봇청소기가 거실 청소 중에 바퀴벌레를 잡았다는 정보를 알 수 있다면, 이 정보로 해충 방역업체에게 새로운 잠재 고객을 소개할 수 있다. 그리고 로봇청소기 회사는 방역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어 새로운 수익 기회를 얻을 수 있다.” - 이경전 경희대 교수


설명: 로봇청소기가 거실을 청소하다 바퀴벌레를 만나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1번 바로 잡는다. 2번 세스코에 연락한다.


생활 속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읽는 AI 등 IoT 기술은 무궁무진하다. 이런 기술로 모아진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유통업(소매업 중심)에 등장하고 있다. 냉장고에 우유가 없거나, 세탁기에 세제가 모자라면 자동으로 주문과 결제를 하고, 새벽이나 저녁에 당일배송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시대에 기술과 기존 사업의 융합은 기술을 통해 과거에는 해결할 수 없었던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소비자들의 생활편의를 개선해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


마윈 전 알리바바 회장이 그랬다. ‘신유통(新流通)’ 채널은 판매수법과 방법, 마케팅과 물류에 이르는 전 과정을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최신 ICT 기술과 온오프라인 체험, 현대화된 물류로 융합한 것이라고 말이다.


필자는 ‘물류(logistics)’ 밖에 모르는 40대 아저씨다. 그래서 마윈 회장의 이 정의를 무척 인상 깊게 메모했다. 무려 한 문장에 물류를 두 번씩이나 반복해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이 글은 (기술) 지식이 미천하고, (물류) 편향적 성향에, (세대) 레트로 감성에 푹 빠진 상상일 수 있겠다. 다만, 유통과 물류, 그 상호보완적으로 성장한 이 시장에서 벌어지는 혁신과 변화, 정보의 파편을 오랫동안 기록하고 있고, 이를 물류 관점에서 재해석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이해를 먼저 구한다.


지난 글(새벽부터 저녁(달밤) 배송까지 방문판매원의 변신)에서 필자는 신유통 채널에 있어 물류는 “사람과 정보, 그리고 공간(장소) 사이에서 상품의 이동(판매)을 최적화하는 라이프 플랫폼(life platform)”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한국야쿠르트와 아모레퍼시픽 등 방문판매원을 활용한 <한국형 라스트마일 딜리버리(lastmile delivery)와 풀필먼트(fulfillment) 서비스 도전>을 꽤 의미 있게 관찰해야 된다고 제안했다. 전통적인 판매망(영업)에 배송망(물류)을 탑재한 ‘방문판매원의 물류 경쟁력’은 과연 무엇일까. 또 어떻게 성장과 변화를 거듭할 수 있을까.


설명: 화장품 아줌마는 화장품을 판매하는 영업사원이자 제품을 갖다 주는 배송업무도 제공했다. 판매망에 물류망을 올린 첫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제공: 아모레퍼시픽



첫째, 정보는 판매와 배송의 또 다른 이름

동네 정보를 꾀찬 지역 영업전문가


‘야쿠르트’, ‘화장품’, ‘녹즙’, ‘정수기’, 그리고 ‘학습지’ 뒤에 꼭 붙는 단어가 있다. 지금 떠오르는 그 단어 맞다. 바로 ‘아줌마’다. 이분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 동네 지역정보 전문가들이다. 이웃집 젓가락 개수가 몇 개인지 훤히 꾀차고 있다. 예를 들어, 어디네 집이 언제 이사를 가고, 누가 새로 이사를 왔다는지, 누구네 둘째가 태어났고, 누구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등등 그 골목마다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자질구레한 정보를 부처님 손바닥에서 노는 손오공 보듯 훤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계가 무너지는 초연결의 시대, ‘정보는 판매와 배송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걸 잊지 말자. 이 시대 소비자들의 각종 정보는 IoT 기술로만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방문판매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보를 축적하고 있고, 이 정보는 새롭게 각색될 수 있다.    

설명: 야쿠르트 아줌마의 운송(판매) 수단 전동카트 코코가 영업소에서 충전 중이다. 이 영업소는 코코의 차징 스테이션이자 야쿠르트가 취급하는 자사 제품 및 타사의 신선제품이 보관된 도심형 물류창고(마이크로 풀필먼트) 역할을 하고 있다. 제공: CLO(clomag.co.kr) 신승윤 기자



둘째, 골목 배송에 최적화된 운송수단과 보관 기능

샛별과 달밤을 누비는 24시간 배송전문가


방문판매원의 이동 특성은 지역 내 순환이라는 점이다. 판매 및 배송망 권역에서 멀리 벗어날 일이 없다. 더욱이 방문판매원의 활동무대는 거주지일 확률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1시간 이내 또는 3시간 이내, 반나절, 또는 즉시 배송 등 기민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배송 서비스가 가능하다. 또 활동 중인 영업소나 집에 일정 분량의 재고(물품)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마이크로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방문판매원은 오랜 시간 동안 같은 동네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골목길 지리정보나 시간대별(혹은 실시간으로) 지역 교통상황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공사 등으로 돌발 배송 변수가 발생했을 때, 우회나 위탁보관 등 상황 대처능력이 탁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골목 배송에 적합한 경차(뒷좌석 적재함 개조), 삼륜차(이륜차+보조바퀴+적재함 개조) 등 운송수단을 자체 보유하고 있다. 참고로 최근에는 전기차를 운행 중인 방문판매원이 증가하고 있다. 횡단보도나 길거리 지날 때 사방을 둘러보자. 우유, 녹즙,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세련되고 첨단화(?)된 이동수단과 상품 보관장소를 유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셋째, 대면 vs 비대면, 서비스의 핵심은 신뢰

지역주민이자 이웃이 배달해주는 장점

 

30대에 만난 화장품 아줌마는 70을 앞둔 우리 엄마의 오래된 친구다. 예전에는 화장품만 팔았는데, 요즘에는 홍삼 등 건강보조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분이 근무하는 회사의 보스인 서경배 아모레 퍼시픽 회장은 “오프라인 환경에서 강점이 있는 기업이 온라인을 수용해 경계를 무너뜨리면 온라이프 기업이 된다”는 말을 올 연초 직원들에게 했다고 한다. 오프라인에서 확보한 고객 정보를 온라인에 잘 접목하면 고객 이탈을 줄이고 충성 고객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반대로 온라인의 단점도 오프라인이 보완해 줄 수 있다는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아마존, 알리바바 등 전 세계 이커머스 공룡들이 최근 오프라인 매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온라인과 오프라인, 또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비즈니스 간 상호보완적으로 체험의 경계를 없애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다시 방문판매원의 숨겨진 경쟁력인 ‘이웃 간 신뢰’ 이야기로 돌아가자. 동네 주민이자 이웃사촌인 방문판매원이 상품을 배송하는 행위는 그것이 신선식품인지, 귀중품인지, 아니면 일반 택배인지 상관할 것 없이 배송주체가 주는 믿음이 가장 큰 서비스 경쟁력이다. 1인 가구나 여성고객에게 범죄 예방이나 대면 스트레스로 인한 비대면 배송 서비스 등의 등장은 ‘대면과 비대면의 선호 관점’의 구도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근본적으로는 이 시대 사라진 ‘이웃 간 신뢰’의 문제일 수 있다. 젊은 고객의 성향이 바뀌었다 분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20~30대 고객의 취향이 40~50대가 되어서도 똑같을 것이란 착각은 아직 이르다.


다음 글에서는

•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운송수단 전동카트 등 모빌리티(mobilty)와 결합한 배송 서비스의 출현

• 정수기 아줌마의 대표 웅진 코디와 학습지 선생님을 활용한 배송(영업) 프로세스

• ADT캡스 등 보안요원의 장점을 살린 시크릿 배송과 부가 서비스(응용)

• 인터넷 통신업체의 A/S 기사님과 네트워크를 통한 이사에 필요한 각종 설치 물류(견적) 등

우리 동네 마당발을 활용한 온라이프 딜리버리 플랫폼의 등장과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해보고자 한다.


왜냐고?

물류(物流)는 ‘인류(人類)의 생존(진화)을 도모한 상류(商(品)流)이자 심류(心流)’ 이기 때문이다.  


설명: 방문판매를 운영하는 주요 업체 및 시장 현황, 자료 출처: 조선비즈 [현장 포커스] 만나면 통해요… 방문판매 시장 13조 육박 2015년

[현장 포커스] 만나면 통해요… 방문판매 시장 13조 육박 2015년


지난 이야기: 온라이프 시대...'방문판매원'의 물류 경쟁력

다음 이야기: IT제품 설치/회수부터 팻케어까지… 온라이프 플랫폼의 등장

오늘 이야기: 동네골목에서 찾은 한국형 드롭센터와 라스트마일 딜리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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