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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민 Dec 13. 2019

배달의 민족이  
배다른 민족이 되던 날


독과점 이슈와 해외진출 프레임…우아한 내로남불 


2019.12.13 오전 11시 40분경.

‘카톡’, ‘띵동’, ‘카톡토토톡’… 메신저 창이 부리나케 울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미세먼지 주의보인가 싶던 찰나 눈에 들어온 한 줄 뉴스가 뒤통수를 쳤다.   

“(속보) 배달의 민족·요기요, 인수합병 결정”


“헐”, “대박”, “ㄷㄷㄷ”

단톡방 댓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메신저 창이 달궈졌다.

제목만 봐 선 배달앱 1위 배민이 업계 2위 요기요를 인수한 줄 알았다. 아니었다. 2위가 1위를 인수한 것이었다. 두 번째 뒤통수를 맞았다.


요기요 운영사인 독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는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국내외 투자 지분 87%를 4조 7500억 원(40억 달러)에 인수키로 한 것이다. 그야말로 ‘빅딜’이다.


내용이 더 궁금했다. 그래서 배민의 보도자료를 수배했다. 요지는 이렇다.


○배민 투자자(힐하우스, 알토스벤처스, 골드만삭스, 세쿼이아캐피탈, GIC 등) 지분 → DH 매각

○김봉진 대표 등 우아한형제들 경영진 지분 → DH 주식 전환

○우아한형제들과 DH 각각 50대 50 지분 → ‘우아DH아시아(JV)’ 싱가포르 설립

○JV(조인트벤처) 회장 김봉진 대표, 우아한형제들 국내 사업 수장 김범준 CEO 취임


덧붙여 김 대표는 DH 경영진 중 개인 최대 주주가 되며, DH 본사에 구성된 구성된 글로벌 자문위원회 3인 회의 멤버로 참여한다.

우아DH아시아 싱가포르 JV(조인트벤처) 구조


독과점인 것 같은데…

DH가 어떤 회사인가? 국내 배달앱 2위 요기요의 운영사이자 시장 경쟁자였던 배달통과 푸드플라이를 인수 합병한 독일 기업으로 글로벌 최대 배달주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배달대행 시장에서 배민의 시장점유율 56%와 요기요 34% 정도를 추산(산수)하더라도 사실상 시장 독과점 형태가 된다. 독점 논란에 따른 공정거래위원회의 인가 심사와 외국자본의 시장 잠식 측면에서 여론 악화 등 난제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배민과 요기요 측은 합병 이후에도 독자 운영 행보를 선택해 독과점 이슈를 살짝 비켜가려는 모양새다.


이슈를 덮은 ‘해외시장’ 진출

이번 DH와 우아한형제들의 인수합병에 내세운 키워드는 ‘국내 배달앱 석권’이 아닌 ‘아시아 시장 진출’이다. 국내 배달앱 시장 독점 논란을 대비해 양사는 ‘아시아 시장 진출’이라는 프레임을 입혔다. 보도자료 첫 문장에서도 “국내 대표 배달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독일의 배달 서비스 전문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가 손잡고 아시아 시장에 진출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양사의 JV 설립이 아시아 시장 진출인 것임은 사실이다. 해외에서 배달의민족(또는 배민) 상호를 사용할 것이란 회사 측 설명도 있었다. 그러나 국내 배달앱 시장이 해외자본에 통째로 넘어간 것 아니냐는 여론을 불식시키기엔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여담, 그리고 우아한 내로남불

여담이지만 배달의민족이 배다른 이 되던 오늘자 우아한형제들의 보도자료 중 일부 내용이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설왕설래가 됐다. 이른바 ‘우아한 내로남불’ 이슈다.


내용인즉,

“이번 합작회사 설립은 변화하는 시장 환경이 배경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배달의민족은 토종 애플리케이션으로 국내 배달앱 1위에 올랐지만, 최근 일본계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C사와 국내 대형 IT 플랫폼 등의 잇단 진출에 거센 도전을 받아왔다.” - 우아한형제들 13일 자 보도자료 중 발췌


더 큰 발단은 공식 보도자료에 인용된 업계 관계자 코멘트였다.


IT업계 관계자는 "일본계 자본을 업은 C사의 경우 각종 온라인 시장을 파괴하는 역할을 많이 해 왔다”며 “국내외 거대 자본의 공격이 지속될 경우 자금력이 풍부하지 않은 토종 앱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게 IT업계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위기감이 글로벌 연합군 결성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 우아한형제들 13일 자 보도자료 중 발췌
13일 자 우아한 형제들 보도자료 본문


보도자료는 외부에 첫 번째로 알리는 회사의 공식 입장문이다. 최고경영자의 결재까지 받는 프로세스라는 점에서 원론적 내용만 밝히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우아한형제들 보도자료는 구성 방식에 있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업계 관계자 코멘트의 출처는 어디인가?

둘째, 이니셜로 언급한 일본계 자본을 업은 C사는?

셋째, 외자 인수합병 프레임에 대한 과도한 의식?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 했던가.

이슈는 이슈로 덮고, 프레임은 또 프레임으로 엎는다. 정치판에서나 흔히 보던 풍경이다.

외국 기업에 넘어가는 배민이 해외 진출이라는 포석을 지나치게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일본계 자본 수혈을 받은 C사(쿠팡)를 굳이 끌어낸 건 ‘과유불급’이었다. 글로벌로 가는 마당에 이미 둘다 비슷한 처지가 아닌가.


이미 배민의 성장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는 독자들에게도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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