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소심러가 영어 그림책 모임을 시작한 이유
아이들에게 신나게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다 그림책에 푹 빠져 지내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등원 후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엔 따듯한 커피 한잔과 잔잔한 배경 음악이 필수다. Peter H. Reynolds의 ‘Say Something’을 골라 읽어 내려갔다. 듣는 아이들도 없는데 왜 그날은 소리 내 낭독하고 싶었을까? 어색했지만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첫 문장을 다시 읽었다. ‘The world needs your voice. Mine? Yes, yours.’ (이 세상에는 너의 목소리가 필요해. 내 목소리? 그래 너.) 소심해 보이는 표정의 아이를 보니 거울을 보는 것 같다. 작가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서 어느새 눈물이 핑 돈다.
‘If you see someone lonely, say something by just being there for them.’ (홀로 외로워하는 친구를 만나면, 너의 목소리를 들려줘. 가만히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돼.) 혼자 겉도는 것 같아 자연스럽게 옆에 있어 줬던 마음이 오지랖이 아니라고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친절함으로 대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님을 문장으로 격려해 주는 것 같아 또 한 번 눈물이 차올랐다. 학창 시절과 달리 성인이 되어 전달하는 진심은 때론 무시와 냉소로 되돌아오는 걸 경험한다. 이전에도 분명 아이들과 읽었던 익숙한 내용이었지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좋은 시간이라 그런지 모든 페이지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If you see someone being hurt, say something by being brave. Hey! Stop!’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보면, 너의 목소리를 들려줘. 용기 있게. 하지 마! ) 빨간 배경의 강렬한 페이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림과 글을 읽어나가면서 어린 시절, 우리 반 교실 속 한 친구가 떠올랐다.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 괴롭히던 아이들과 힘없는 눈빛으로 그저 당하던 친구. 그 누구도 그만하라고 외치지 않았던 슬프고 아팠던 쉬는 시간.
“그만 좀 괴롭혀!”
작은 체구의 한 아이가 날카롭게 외쳤고 놀란 모두의 시선은 아이를 향한다. 그 아이가 나였다. 어디에서 갑자기 그런 용기가 났을까. 참기 어려웠던 건 뻔뻔한 그 무리였다. 머쓱함도 미안함도 아니었다. 그저 사라졌다. 그제야 친구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어준 사람을 만난 것이다. ‘Hey! Stop!’ 멈추라는 당당한 외침이 필요했던 순간, 어린 시절의 나에게 작가가 찾아와 참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 일로 인해 함께 왕따를 당했던 쓰라리고 시렸던 마음도 치유를 받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진심을 담은 문장 덕분에 지구 반대편에서 따듯한 격려와 위로를 얻는다.
‘Keep saying what is in your heart. When you’re ready, SAY something!’ (네 마음속 이야기를 멈추지 말고 말해봐. 언제든 준비가 되면 너의 목소리를 들려줘.) 모든 것이 용서될 것 같은 푸른 가을 하늘아래 혼자만의 달콤한 시간이었다. 홀로 낭독했던 ‘Say Something’으로 인해 목소리를 낼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가끔 조용히 꺼내보며 알 수 없는 설렘을 느꼈다. 두 달여 후, 마음속에 가졌던 용기로 목소리를 내어 햇살(사랑스러운 첫째의 가명입니다)의 반 모임에서 영어 그림책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분 좋은 설렘과 나대는 것처럼 보이기 싫은 두려움, 여전히 두 마음이 공존한다. ‘내 안의 목소리, 이게 맞는 거죠?’
Peter H. Reynolds, 작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한국에서 조용히 살던 프로소심러가 용기 내어 영어 그림책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노라고. 글로 남겨지는 흔적이 두려운 사람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영어 그림책을 읽으며 느꼈던 건강한 변화들을 나누게 되었다고.
Say Something!
망설이지 말고 시작해 보자.
지금 당장.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