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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시스 Ohasis Oct 30. 2022

교환학생 가기 전, 할머니 댁에 다녀온 날

외할머니가 날 보고 싶다고 하셨다길래 바로 다음 날 아침 차표를 끊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선 더 중요할 게 없었다.

바깥 외를 써서 외갓집이라고 말하는 게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언어란 질서이자 권위라고 했다. 

외가 친가 나눌 것 없이 나에겐 할머니 두 분, 할아버지 두 분이 계신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도착해서 인사를 드리니 환하게 웃으신다. 

“아이고 야야, 니 보니까 반갑다. 내가 보고 싶다 안켔나.”

엄마가 챙겨준 도토리묵과 한라봉을 꺼내드리니 

“이 비싼 걸 우야꼬 가져왔나” 하신다. 

“할머니 하나도 안 비싸요. 도토리묵은 엄마가 만드셨어요.” 

맛을 보시더니 “잘 만들었네.” 하며 웃어 보이신다.

올해로 할머니는 아흔셋, 할아버지는 아흔여섯이시다. 귀도 안 좋으시고 이가 다 빠지셔서 소통이 잘 안 되는데, 할아버지께 드릴 말씀을 세다 ‘아흔여섯에는 어떤 생각을 하실까.’ 궁금해졌다. 내 나이를 4번 곱하고서도 4를 더해야 한다. 일제강점기부터 전쟁까지 겪으신 삶의 무게는 어떠셨을까. 가히 헤아릴 수 없다. 결국 드릴 수 있는 말은 “할아버지 건강히 계셔주세요. 사랑해요.” 뿐이다.

물끄러미 작은 티비 화면을 보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더 잘 보이는 큰 티비로 바꿔드리고 싶었다. 교환학생 갈 돈이면 아주 크고 좋은 티비를 드릴 수 있을 텐데. 괜히 죄송스러웠다. 사람은 자기가 자란 환경 안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는 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셨다. 할머니는 그런 내 맘을 알아채시기라도 한 듯 “거 가서는 암 걱정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거래이.” 말씀하신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이 한 뼘 더 자란다.

저녁 시간, 고봉밥을 쌓아서 주시길래 반을 덜어냈다.

“밥을 한 숟갈 밖에 못 먹어서 우짜노.”

도통 밥을 적게 먹는다며 밥 먹는 내내 한 숟갈 더 먹으라고 권하셨다. 역시 할머니 눈엔 다 적어 보이는구나.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는 주무시다가도 내가 간다는 소리를 들으시고는 벌떡 몸을 일으키셨다. 삼촌에게 서랍에서 뭔가 꺼내라는 손짓을 하신다. 국가유공자 명패 보관함에 가지런히 모아진 현금 중 5만 원을 건네신다. 당신께서는 늘 손녀에게 차비 주는 걸 잊지 않으신다. 편찮으신데도 용돈을 꼭 쥐어주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내리사랑 DNA가 있는 게 아닐까, 가만히 생각했다. 

새벽이라 바람이 찬데도 문 앞까지 나와 배웅해 주신다. 

“아이고 야야, 니 없으니 허전해서 어쩌겠나.” 

독일로 갈 손녀를 보며 당신의 딸인 엄마의 걱정도 잊지 않으신다. 

“니 간다니까 서럽다. “ 

휑하니 빈 집에 앉아계실 할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콕콕 쑤신다.

감말랭이와 떡 한 판을 안고 할머니 댁을 나섰다. 무궁화호 4시간 반도 별거 아니네 생각하며 왜 진즉 오지 않았을까 후회하다가 이제라도 왔으니 됐다고, 인사드리고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돌아오는 기차 안은 왠지 더 슬프고 따뜻했다.

다녀와서 꼭 인사드려야지. 크고 넓은 세상을 보고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보다 더 큰 세상은 없었다고 말씀드려야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손이 시리지 않게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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