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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시스 Ohasis Oct 30. 2022

슬픔엔 수용성이 있대

안녕? 오늘 너의 하루는 어땠니. 나는 수업을 가기 전에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 편지를 써. 


어제 생물심리학에서는 지능을 뇌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수업을 들었어. 문득 지능이 높은 거란 어떤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똑똑하다면 물론 좋겠지, 선천적으로 지능이 높다면 세상이 조금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 근데 나는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거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에서는 다윈이 주장한 적자생존의 개념이 다른 것들을 몰살시키고 우등한 것만 살아남은 것처럼 묘사되는데, 사실은 협력하고 자상했던 인간이 더 많은 후손을 남겼다는 걸 강조했다고 해.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똑똑함은 함께 살아갈 줄 아는 현명함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아. 그래, 수업은 듣지 않고 딴생각을 했다는 거지. 지루한 책 얘기는 그만할게. 내가 떠올린 공상을 조금 더 들어줄래? 


수업을 들으며 인상 깊었던 건,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모습이었어. 영어를 잘하는 건 둘째 치고, 수업시간에 정말 자유롭게 질문을 하더라? 그래, 질문은 할 수 있지. 근데 더 놀라웠던 건, 자기가 이해되지 않은 내용을 한번 더 물어보고, 수업 내용이 아니어도 관련된 내용이 궁금하면 물어보기도 해. 더 큰 충격은 교수님에게 이 데이터가 믿을만한 것인지, 당신의 연구 분야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너무 오래된 연구라 바뀌었다며 최신 연구를 소개하더라. 한국에선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상황이라, 입이 저절로 벌어졌어.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었지. 그리고 그 질문에 불편한 기색 없이 네 말이 맞아, 흥미로운 질문이다, 그건 이렇게 해석할 수 있겠네.라고 쿨하게 답해주는 교수님의 모습도 신기했어.


수업 시간 마지막에 교수님이 질문이 있냐고 물어보시면 수업이 끝나길 바라는 한마음으로 정적이 흘렀던 한국에서의 수업과는 상반되더라. 그리고 교수님한테 메일을 보낼 때도 어떻게 해야 최대한 공손하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인사치레를 덧붙이는 내 모습이 떠올랐어. 그리고 이 수업 시간에서 나는 교수님의 말을 받아 적기에 바빴지.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궁금해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 근데 같은 수업을 듣고도 친구들은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있더라.


정말 놀랍지 않니? 이들은 어려서부터 어떤 교육을 받아온 걸까 궁금했어. 그리고 내가 받아온 교육을 자연스레 떠올렸지. 우리는 어릴 적부터 정답을 맞히는 것에만 급급했다는 생각이 들어. 등수를 매기고, 백분위를 내고. 끊임없이 서열화시키며 네 위치는 여기라고 알려주지. 그러다 보니 우린 정답을 외우는 것에만 몰두했던 것 같아. 요즘 어떻게 진로를 정해야 할지 불안해하는 친구들이 많던데. 그래서 정답이 없는 나의 인생에도 채점을 기다리며 불안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주변 친구들을 비교 집단으로 설정해서 나를 아래로 몰아넣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내가 보는 친구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반짝여서 실로 감탄을 금 추지 못할 때가 있어. 그런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일 땐 너를 보는 내 시선을 옮겨주고 싶을 때도 있었지. 나에게 빨간펜을 쥐어준다면, 늘 백점이라고. 자신감과 성취감으로 도취되어 너의 것을 하라고. 네가 틀렸다고 생각한 것에 잘못된 것은 없다고. 네가 하고자 하는 모든 길이 옳은 길이라고 말하며 등을 토닥이고 싶어.


이렇게 순수한 마음만으론 복잡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애달프게 해. 막말로 나는 네가 원하는 곳에 취업시켜줄 수도 없고, 로또 번호를 알려주지도 못하면서 헤매도 괜찮다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며 무책임한 말을 뱉는 게 아닐까 고민해.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건 도처에 넘쳐나니까.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너의 존재가 귀하다는 영원불변의 진리와 기이한 기준에 맞춰 평가받으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우리의 친밀감이 어떻든 간에, 이 세상에 내가 맘대로 살아도 뭐라 하지 않고 응원해줄 사람은 있겠구나. 얘처럼 멋대로 살아가는 애도 있구나. 하는 생각 말이야. 그런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우리 같이 실컷 헤매 보자. 나도 하루하루 헤매고 있거든.


슬픔엔 수용성이 있다고 믿어. 눈물에도 카타르시스가 있대. 슬플 때 한바탕 울고 나면 조금 나아지는 것처럼 말이야. 네가 오늘 받은 스트레스와 우울, 그러니까 너를 괴롭힌 것들이 세차게 내리는 비에 씻겨나가길.


비가 많이 내리던 2022년의 어느 여름날.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여름날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여름날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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