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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시스 Ohasis Oct 30. 2022

내가 사랑하는 것은 모두 나를 울게 할 테지

독일에 온 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지난 시간을 추억하다가 당장 보자는 말을 지킬 수 없어 서러운 마음이 쌓여갔다. 다른 일보다 특히 친구들을 아프게 하는 일을 현재 진행형이 아닌 과거형으로 들을 때 속절없이 무너졌다. 7시간의 시차는 예상보다 많은 것들을 멀어지게 했다. 왜 진즉 말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친구들은 '네가 자고 있는데 뭐하러 안 좋은 얘기를 해. 일어나자마자 그 메시지를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안 좋겠어.' 자신의 감정보다 듣는 이의 입장을 고려하던 친구들이었다. 내 생각을 해서 그랬다는데 속상한 마음을 더 내비칠 수도 없고. 너의 시간이 아프게 흐를 때 나는 그것도 모르고 태평하게 잠이나 자고 있었네. 언제나 그렇듯 서로를 더 생각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 같아서 어이없는 헛웃음이 났다. 시간이 지나 덤덤하게 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담금질을 견뎠을까. 뒤늦게서야 이것저것 물어보기엔 아문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일까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이제라도 말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해야 할까. 말을 하는 친구의 표정이 뻔히 그려지는데, 안아줄 수가 없어 바스러진 새벽을 보내곤 했다. 

'세상은 사랑하며 살아야 해, 사랑이 전부야!'를 외치며 사랑앓이를 하던 스무 살엔 앞뒤를 재지 않고 사랑의 아지랑이가 조금이라도 피어오르는 관계엔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점차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없다는 괴로움도 동시에 쌓여갔다. 그렇게 조금 울게 될 위험이 있더라도 더 많이 사랑할 거라는 다짐이 희미해져 갈 즈음, 이곳에 교환학생을 온 외국인 친구들을 만났다. 영어를 잘 못한다는 생각에 쭈뼛거리는 내게 먼저 밥을 먹으러 가자고, 호수에 놀러 가자고 제안해 주었다. 처음엔 돌려서 거절하는 말을 몰라서 더듬거리며 알겠다고 했는데, 점차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편안해지고 재밌었다. 문법이 완벽하지 않아도, 단어가 정확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이해하려 애쓰는 친구들이 있어 손짓 발짓을 해가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각자 나라의 음식을 요리해 저녁을 함께 나눠먹기도 하고, 파티에 가서 다 같이 마카레나 춤을 추기도 하고, 와인 밭에 올라가 불꽃놀이를 보기도 했다. 언어가 달라도 마음이 통할 수 있구나. 눈빛만으로도, 몸짓만으로도 '난 너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 뭐든지 해도 괜찮아.'를 전해주던 친구들이었다. 어떻게 해야 상처를 덜 받을지 계산할 새도 없이 정신 차리고 보면 난 친구들 앞에 있었다. 하루를 정리할 에너지를 남겨두지도 않고 탈탈 써서 집에 오곤 했다. 수업 복습을 하겠다던 계획을 지키지 못해 마음이 뻐근했어도 자기 전에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괴롭히는 시간 없이 쓰러져 자는 것도 좋았다. 

그런 친구들에게 내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적당한 말을 고르지 못했다. I love you 보다는 덜 무겁고, I like you 보다는 더 진지한 그런 말을 하고 싶었는데. 한국어로는 ‘많이 좋아해요’와 같은… 그렇다고 I like you so much는 이상하지 않은가. 한국어도 책을 100권쯤 읽고서야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는데. 영어는 또 얼마나 쓰고 읽고 들어야 익힐 수 있을까. 한정된 시간 앞에 마음은 조급해지기만 한다. 8월이면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얄궂다. 

결국엔 욕심이라는 걸 안다. 내 마음을 꺼내 보여줄 수 없기에 완벽하게 말로 전하고 싶은 욕심. 마음을 은유한 말이 가닿을 거라는 욕심. 전전긍긍해할 시간에 한번 더 눈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맛있는 음식을 한 번 더 먹고, 네가 사는 곳은 어떤 곳이었는지 물어보는 게 나을 텐데. 짧은 영어 실력이 부끄러워 입을 떼는데 들이쉬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어 공부를 하겠다는 다짐은 침대 앞에 와르르 무너지기만 한다. 그렇지만 그 욕심이 사랑을 그려낸다는 것도 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하고 싶고, 네가 좋아하는 게 뭔지 궁금해하는 것. 내가 너에게 안절부절못하는 만큼, 나도 네게 괜찮은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노력이 사랑이라고 배웠다. 용기 내어 전한 진심은 상대방의 마음에 환하게 번진다는 것도. 이따금씩 욕심을 무해하게 둘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상대방의 일상과 욕망의 리듬을 존중하며, 언제나 내가 일 순위가 아니어도 서운해하지 않는 것. 사랑한다는 이유를 앞세워 착취하고 상처 내지 않는 것. 고민할수록 빈틈은 채워지겠지.

새로운 세상과 사람은 기존에 알고 있던 세상과 사람을 대체해주지 않았다. 한 움큼의 세상과 한 명의 사람을 알아갈수록 그릇을 넓히는 건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힘 조절을 잘못해 물레질하던 그릇이 망가지면, 새로운 찰흙을 고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찰흙을 골라야 내가 잘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며. 그릇을 만드는 건 내 손끝에 달려있다는 걸 알면서도 세상과 사람에 기대고 싶었다 보다. 그릇은 타고난 게 아닐까, 싶으면서도 바다 같은 깊이를 담고 싶다는 욕심은 하릴없이 유영한다. 언젠가 그 그릇이 우리가 맘껏 헤엄칠 수 있는 바다를 담는다면 바랄 게 없겠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모두 나를 울게 할 것이란 걸 안다. 그게 당신의 탓이 아니라, 당신에게 던져진 내 몫이란 걸 알기에 스스로 아물어야 할 시간이 두렵다. 그래도 아직은. 더 많이 사랑하겠다는 다짐이 자꾸만 앞선다. 이렇게 반짝이는 너희들을 두고 어떻게 돌아설 수 있겠니. 이만큼 행복하다면, 힘든 시간을 기꺼이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다.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은 나에게 오로지 현재를 즐기는 방법을 알려준다. 

가끔은 정이 많은 내가 이 매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에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작은 것에도 아파할 만큼 여리거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난 이렇게 사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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