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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 지겨워졌다

패션계에서 일하면서 느낀 번아웃 증후군

by BEYUNIQUE



패션은 종종 음악, 문화 및 사회 전반의 동향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모두는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동일한 출처에서 영향을 받아 매우 독창적이지 않게 된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특히 그런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비슷비슷한 스타일의 사진들, 아이디를 가려놓고 보면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소위 "빼다 박은" 형식을 갖춘 필터 및 구도를 적용한 사진들이 그 예이다.

잡지 킨포크(Kinfolk) 스타일의 비슷한 인스타그램 사진들을 모아 그들을 조롱하는 웹사이트 킨스피러시http://thekinspiracy.tumblr.com/




베트멍의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와 구찌의 알렉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


구찌 온라인 컬렉션

패션 또한 예외는 아니다. 파리 패션위크에 혜성처럼 등장해 모든 패션 디자이너 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베트멍(Vetements)의 뎀나 바잘리아나, 그의 친구인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마치 '과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외치는 컬렉션들을 봐도 그렇다.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은 출처가 동일하거나 비슷한 영향력을 가진 매체 (인스타그램, 보그 런웨이 닷컴 등)를 사용하여 이들이 디자인 해내는 아이템들을 탐닉하고, 추구하며, 나아가 소비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이는 모든 디자이너들이 뚜렷한 비전 및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크리에이터가 아니기에 더욱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디자이너와 패션 리테일러는 자신만의 비전을 가지고 독특한 세계를 건설해나가는 몇 안 되는 소수의 크리에이터들에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이는 수많은 카피들의 양산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현재 우리가 보는 무수한 옷들이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생산, 유통, 소비되고 있다.



백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판매, 유통되는 베트멍(Vetements)의 영화 타이타닉 후디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 패션 산업에서 가장 크게 대두되고 있는 문제점 중의 하나는 '오리지널리티'가 아니다. 패션 산업은 오일(휘발유) 산업계의 뒤를 이은, 가장 환경을 오염시키는 산업으로 회자되고 있다. 소위 트렌디하고, 잘 나가는 디자이너가 만들어 낸 아이템을 구매함으로써 채워지는 물질적 만족감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 및 남과의 차별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과시욕,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재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허영심이 '미덕'으로 칭송되기 까지 하는 이 사회에서 패션은 더이상 인간이 필요한 '의'식주의 역할을 기능하는 사업이라고 차치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현 패션계를 주름잡는 실질적인 구매자인 1%에 속하는 중국인들을 보면 이러한 현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구매하기 보다는 '소유'의 목적 및 '재력 과시'용으로 트렌디한 아이템에 있어서는 무조건적인 구매 활동을 펼치고, 그들의 스타일은 머리 부터 발 끝까지 디자이너 브랜드들로 갖추어져 있다.



항상 변화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트렌트를 양상해 나가는 패션은 나에게 있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자 지루할 새 없는 딱 알맞은 커리어였다(고 믿어왔)으나, 최근 몇 달간 천정부지로 치솟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이름 값, 수 많은 패션 디자이너 및 브랜드 들의 오리지널리티의 부재, 그리고 환경 오염에 따른 문제점과 예술이 아닌 상업적 측면으로서의 패션이 가진 본질적 가치에 대한 꼬리에 꼬리를 문 의문은 결국,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소비자들에 대한 환멸을 느끼는 수준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그로 인해 매달 여러 패션 잡지를 끊임없이 구독하며 학창 시절 때부터 항상 즐겨왔던, 그리고 커리어로 자리잡고자 수 몇 년간을 애써왔던 패션은 이렇게 허망하게도 나에게 속이 빈 강정 마냥 겉은 그럴싸 해 보이지만 안은 아무 것도 없는,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한 때 수 많은 고민과 치열한 자아 성찰을 통해 '자의'적으로 선택한 커리어이자 나의 삶이었던 패션이, 아이러니하게도 '필연'적으로 지겨워지고 만 것이다. 그런 지금,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적게 소유하고, 필요한 것만 구매하며 겉보다는 속을 채워가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현재 패션계가 가진 문제점에 대항할 수 있는, 개인으로써 할 수 있는 가장 큰 투쟁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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