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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UNIQUE Sep 01. 2019

[밴쿠버] 패션계에서 은퇴하다

<토종 한국인, 밴쿠버 패션계 정착기> 그 이후의 이야기들


몇 년 동안 몸 담아왔던 패션계에서 완전히 질려버리고 말았다. 제조업이나 유통 및 도소매, 명품 및 브랜드, 백화점, 보세 등 전반적인 시장의 파이 자체가 큰 한국과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 되는 협소한 밴쿠버의 패션계에서 살아남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나름대로 커리어를 잘 쌓아왔는데도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무엇일까...' 고등학교 때부터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한 끝에 대학교 2학년 말에 선택한 커리어가 패션이었다. 영화 편집에 관심이 있어 신문방송학과에 재학했으나, 신입생이라고 카메라도 못 잡게 하는 방송학회의 꼰대문화에 나가 떨어져 버린 후, 광고 및 연기 등등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그 당시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돈이 되는 일"이 패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잡지를 신성한 마음으로 모시다시피 읽고 곁에 쌓아두며 열렬히 구독함으로써 오랫동안 쌓아 온 데이터 베이스는 내가 색, 형태 및 실루엣에 맞는 스타일링 및 머천다이징을 잘할 수 있는 근간이 되어주었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 한국에서 우연히 운 좋게 샤넬에 일하던 게 도움이 되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밴쿠버로 넘어와 밴쿠버의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에서 마케팅을 하게 된 것을 시작하여, 미국의 대형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서 스타일링 및 비주얼 머천다이징을, 그 후 몬트리올에서 온 멀티 브랜드 스토어 매니저로 헤드헌팅이 된 뒤, 미국 대형 백화점에서 베트멍 (Vetements), 자크뮈스 (Jacquemus), 시몬 로샤 (Simone Rocha) 등의 신진 디자이너들과 콤데가르송 (Comme des Garson), 아크네 스튜디오 (ACNE Studios) 등 비교적 잘 알려진 브랜드들의 신상 컬렉션을 소개하고 교육하는 일을 하는 등... 이 야박한 밴쿠버의 패션계 속에서도 전반적인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으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몇 년 후 결국 내게 남은 것은 영혼까지 털털 털려버린 나 자신과 번아웃 증후군뿐이었다.



일단 패션에 대한 회의감이 가장 문제였다.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의식주' 중에서 기본적으로 입고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의'만 있으면 충분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패션계에 존재하는 화려한 의상 및 액세서리들 따위가 필요 없게 느껴졌다. 200만 원이 넘는 면으로 만든 후드티, 2000만 원이 넘는 여우털로 만든 재킷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나의 삶이 너무 현실성 없이 동떨어져 있는 듯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또 그런 물건들을 사재끼는(?) 중국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도 싫었다. 또한 패션계에 몸 담고 있는, 겉보기에 치장하기에만 바쁜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도 고욕이었다. 머리와 속은 텅텅 비어있으면서 '디자이너'를 입는다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 돈이 많다고 직원을 천대하는 고객들, 고작 옷을 잘 입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잘난 체하는 사람들, 가격표에 따라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지거나 차별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패션계는 비교적 진입이 쉬운 분야이기 때문에, 특별한 교육 과정 없이 소매업(retail)부터 시작해서 찬찬히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쇼핑'을 좋아하는 것을 자신이 대단한 '패션 전문가'라도 되는 양 으쓱대곤 했다. 패션은 참으로 주관적인 분야이기도 하므로 누가 옳고 그르다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때 당시 내가 가장 관심이 있고 잘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였고, 맡은 바 최선을 다했기에 그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는 한 치의 후회도 없다. 다만 무기력증이 심하게 오고, 패션계에 대해 회의감이 생기고 나서는 무엇을 해야 될지 너무나도 막막하고 깜깜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기만 하는 날이 잦아졌고, 우울함도 줄곧 찾아왔다. 결국 다음에 뭘 할지 찾지 않은 채 퇴사를 하고, 근 2년 동안을 다시 소울 서칭(Soul Searching)을 하며 보냈다. 마냥 여행이 하고 싶어 비행기 티켓을 찾다가, 멕시코를 가자고 친구를 꼬드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찾은 저렴한 한국행 편도 티켓은 나의 마음에 불을 질렀고, 그렇게 한국에 왔다가 친한 친구들과 함께 소소하지만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다 보니 번아웃 증후군은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동네에 있는 예쁜 카페도 가고, 공원에 가서 사진도 찍고, 도서관에 가서 못 읽었던 한국 책도 맘껏 읽다 보니,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다시 돌아와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틈틈이 다시 쓰기 시작한 '일기'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매일매일 일기를 썼지만, 왜인지 모르게 캐나다에 오고 나서부터 없어져버린 습관이었다. 한국에서 맘에 드는 일기장을 사서 매일 뭘 했는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장문의 글을 쓰기도 했고, 기분이 좋을 때나 우울할 때 역시 나의 감정을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나의 일기장 및 여기저기 휘갈겨 놓은 노트들을 뒤적이니, 지금 내겐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 따위가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매년 일만 하며 살다 보니 자기 계발은 뒷전이었고, 일의 반복은 머리가 굳어져 가는 노화의 방아쇠를 급격히 당기고 있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일기 곳곳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고 싶다는 걸 기록해놓은 것을 보고 실행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밴쿠버로 돌아와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는 학교 중 한 군데를 선택하여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중이다. 무척이나 다행히도, 나는 시각적이자 언어적인 인간이라 그런지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의 일환인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는 과정이 몸에 잘 맞는 옷을 찾은 느낌이다. 색, 도형, 감각 등등 패션과 비슷한 점도 많은 것도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학교를 다니는 앳된 학생들 사이에서, 광고 및 마케팅에 대한 경험치가 높은 것도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아직 아기 걸음마 수준이지만,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을 적용한다면, 지금 하는 투자에 대한 리턴은 확실하게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열심히 배우고 발전하는 데 매진하여, 브런치에서 종종 그래픽 디자인 결과물을 소개하는 글을 쓰도록 할 예정이다. 1년 반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 자신에게 하는 투자가 만족스러운 결과물로 남을 수 있길. 나의 미래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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