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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UNIQUE Sep 14. 2019

[밴쿠버] 집밥

요리가 즐거워졌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빵순이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밥보다는 빵을 좋아했다. 집안에 경사가 나거나 축하할 일이 있으면 '경양식' 혹은 '스테이크'를 먹자고 조르곤 했고 편식을 엄청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 싫어했던 음식으로는 양파, 마늘, 버섯, 가지, 조개, 홍합... 등등 대체 뭘 먹고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그저 고기(생선도 아닌 육고기)만 한결같이 선호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입맛이 변한다고들 했던가. 대학교 진학 후 자취를 하게 되고 나서부터 나의 편식증은 조금씩 줄어들게 되었다. 점심으로 버섯이나 조개가 들어간 크림 파스타를 시켜 먹거나, 소주 안주로 홍합탕을 즐겨 먹는 수준에까지 이르는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는 않는 주제인 듯 하지만, 외국 생활에 있어 '식성'은 사실 굉장히 중요하다. 밴쿠버에 빨리 적응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어렸을 때부터 '서양식'을 좋아했던 나의 '입맛'이 한 몫했다. 밴쿠버는 캐나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써, 한국 사람들이 많이 진출해있고 코퀴틀람(Coquitlam)이라는 일종의 '코리안 타운'도 형성되어 있으며, 한국 마트나 식당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터라 소도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주 힘들지는 않다. 다만, 한국에서 처럼 식당에 가서 소주를 즐긴다면 한 병에 15불 (약 13,500원 정도) 씩, 세금과 팁을 포함하면 거의 한 병 당 18,000원 정도는 주고 사 마셔야 하고, 한국 식당에서 외식하는 것이 그다지 저렴하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소주를 즐겨 마시지 않고, 매번 한국 음식을 먹지 않아도, 매끼마다 김치가 없어도, 삼시세끼 각각 다른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먹는 습관은 해외 생활에 안착하는 데 용이하게 작용했다.



퇴사하기 전 직장을 다닐 때에는 삼시 세 끼를 외식으로 때웠다. 한 달 신용카드 내역서에 밥 값이 80%를 상회할 정도의 엄청난 엥겔 지수를 자랑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매일 매끼를 밖에서 먹다 보니,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값 비싼 음식을 먹어도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서야 깨달은 바는, 외식은 특별할 때 해야 더 의미 있고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다. 그때 이후로, 나는 요리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예전에는 "나는 요리를 못 해"라거나 "나는 요리하는 게 싫어"라는 말들을 달고 살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식당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먹어본 것을 바탕으로, 먹고 싶은 게 있을 때면 구글의 힘을 빌려 그때그때 레시피를 찾아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중이다.



사실 어느 나라 어떤 도시에 살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다 보면 사람이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마련이다. 어느덧 밴쿠버로 홀로 이민을 온 게 9년 차인 나에게는 이미 밴쿠버가 제2의 고향같이 느껴진 지 오래다. (외딴곳에 여행을 가면 밴쿠버가 그리워진달까...) 결국 중요한 것은 '뭘로 밥벌이를 하느냐'와 '무엇을 해 먹고 사느냐'인데, 두 질문이 모두 공통적으로 '밥벌이'로 귀결된다는 것은 인생은 '밥을 먹고 살아가기 위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문득 생각해 본다.








이 날은 몬트리올에서 온 친구가 갓 잡아 보내준 자연산 연어를 요리하기로 했다. 내가 한국에서 알고 왔던 연어는 양식이라 단백질 및 기름을 사료로 먹이고 인공 색소를 넣어 분홍색을 띠게 한다는 사실을 밴쿠버에 오고 나서 알고서는 적잖이 충격을 받아 그 후로는 양식 연어는 먹지 않고 있는데, 그걸 아는 친구가 Haida Gwaii라는 밴쿠버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서 직접 잡은 연어를 보내 준 것이다. 그런 친구의 마음이 고맙고 소중한 선물이라 냉장고에 아껴두고 있던 차, 과제로 음식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일이 있어 연어로 포케(Poke: 익히지 않은 생선에 여러 가지 채소와 소스를 얹어 먹는 하와이 요리)를 만들어 먹기로 마음먹었다.








유기농 채소와 방울토마토를 씻고, 옥수수를 삶고, 당근과 빨간 무, 아보카도를 채 썰어 준비한 후 연어 및 소스 위에 얹을 토핑으로 베이컨을 구워서 잘게 썰어 놓았다. 식당에서 사 먹을 때는 브리또를 시켜먹는 것처럼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어서 준비하는 과정이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이거 웬 걸.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연어는 사진용으로 굵은소금을 팍팍 친 후, 그 위에 연어와 잘 어울리는 레몬 슬라이스와 딜(Dill: 허브의 일종)을 올렸다. 밴쿠버 근처 바닷가에서 잡을 수 있는 자연산 연어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오늘 요리한 이 연어는 치눅(Chinook)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King 혹은 Spring Salmon이라고도 부른다. 양식 연어와 달리 영롱한 붉은 색감을 자아내는 연어로써, 다른 종류인 Sockeye, Coho와 더불어 밴쿠버에서 자주 맛볼 수 있는 연어이다.









온갖 재료들을 준비하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운동도 포기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열혈 준비를 마쳤건만. 이제 밴쿠버도 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어 저녁 7시쯤이면 해가 져 버린다. 조명 따위 따로 없는 아마추어인 나로서는 자연광이 필요한데 말이다. 네 시 반쯤 음식 준비를 시작했는데 음식을 완성했을 때 즈음에는 벌써 해질 녘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실제 포케 음식 사진은 별로 찍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두 장 정도는 건졌다. (휴우)









모든 재료를 쌓은 뒤 베이컨을 올리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 다음 소스는 이탈리아 상점에서 산 치폴레 아이올리 (Chipotle Aioli: 매운 멕시코 고추인 할라피뇨를 건조한 후 마요네즈, 레몬, 라임, 마늘 등을 넣어 만든 것) 소스로 마무리했다. 약간 매콤하면서 크리미 한 맛이 있을 것 같아 사 봤는데 연어랑도 굉장히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 대 만족하며 식사를 마쳤다. 밴쿠버의 추석, 땡스기빙데이 (Thanksgiving Day)는 10월 중순이라 추석 느낌이 1도 안 나는 추석이다. 이제 으슬으슬 추워지고 비가 슬슬 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가을이 훌쩍 온 모양이다. 내일은 한국 영화계에서 (엄청 빡시게) 일하다가 밴쿠버로 와서 직장을 구하던 후배에게 잡 오퍼가 들어와서 축하 겸 집에서 만두를 빚어볼까 한다. 직접 만들어 놓은 쌀막걸리와 함께 곁들이면, 나름의 추석 분위기도 풍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들 추석 잘 보내시길 빌며.




Written & Photographed by BEYUN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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