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가장 좋을 때
2010년 8월,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혈혈단신 캐나다로 떠나왔다.
2007년 때 잘 다니던 대학에 휴학 신청을 하고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밴쿠버 및 빅토리아에 있으면서 여기서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고, 졸업장을 따자마자 캐나다로 다시 와야겠다던 그 생각을 실천에 바로 옮긴 것이다. 대학 4학년 때 취업계를 내고 회사를 다니는 동안 함께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고, 졸업하자마자 떠나올 채비를 단단히 갖췄다. 그 때의 나는 고작 만 24살이었다. 대인 관계도 원만했고, 나름 자부심 가질 수 있는 학교에서 원하던 전공을 공부했으며, 대학 4학년 때에는 내노라하는 외국계 패션 기업에서 일하며 팀장님의 사랑을 받으며 지내던, 그 무엇 하나 부족해보일 것이 없었던 나였지만 무조건 캐나다로 나가야겠다는 결심 하나로 무장한 상태였고, 나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때 내가 절실하게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사소하고도 단순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요약하자면,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입을 지 고를 때, '남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의 '남과 다르면 틀린' 삶에 나를 맞춰나가는 것은 항상 스트레스와 회의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이런 옷을 입든, 저런 옷을 입든 그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하며 한탄스러움을 호소하고 불평을 표시해왔지만, 이 '한국적'인 시선은 '내가 입는 옷'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인으로서' 숙명처럼 잘 알고 있었기에 이에 반항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에 타협해야 된다는 사실을 수긍해야 할 때마다 늘 수갑을 찬 죄수마냥 갑갑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한국 사회에 있다가 캐나다에 살아보니,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자유'와, '다름'을 인정받는 것, 또한 나 자신만의 오롯한 '개성'을 존중받는 것은 아무런 보상이 따라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루 말 할 수 없이 만족스러웠다. '한 민족 한 국가'를 강조하는 한국과 다르게 다른 인종과 문화가 뒤 섞여 있고, 이를 존중하는 캐나다에서는 영국, 미국, 호주에서 느낀 인종 차별을 덜 느낄 수 있었다는 것도 이민 전선에 뛰어들게 한 몫했다.
시간이 지나 어느 덧 나는 여기에서 태어난 사람인 줄 알았다는 말을 듣는 지경에 까지 오를 정도로 캐나다 사회에 잘 정착했지만 아직도 '한국적'인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어려운 과제이다. 캐나다에서는 50세가 넘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나이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관계 없이 자유로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 아직도 한국식으로 직업의 고하를 논하거나 타인의 나이를 가늠하는 나 자신을 자연스레 반성하게 된다. 한국에서 이민 열풍이 불고 있는 요즘, 워킹홀리데이 까페를 보면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단연 눈에 띈다. 그 중에서도 '00살인데 가도 될까요?'라는 글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그런 이들에게 과감히 말하고 싶다. '지금'이 도전하기 제일 좋은 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