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이하는 행복한 자세
이번 겨울은 참으로 길고도 혹독했다. 유독 지난 여름이 짧았던 탓일까, 혹은 최근 몇 년과는 달리 눈이 많이 내렸기 때문일까. 나 뿐만이 아닌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가는 걸 꺼려하는 모습이었다. 어둡고, 춥고, 으슬슬한 날씨를 피하기 위해서. 오후 3~4시가 되면 짙은 어둠이 그리워지는 겨울나기는 우리 모두에게 힘에 겨웠으리라. 지난 해의 여름이 굉장히 짧게 스쳐지나갔던 반면, 작년 봄은 상당히 이르게 찾아왔드랬다. 2월 말에 슬금슬금 피어나기 시작한 벚꽃은 3월 초가 되자 어느 새 활짝 만개해있었다. 그러나 혹독한 추위를 겨우 지난 이번 2017년의 봄은, 3월 중순인 지금에서야 지각한 사람 마냥 멋쩍은 듯 슬쩍 고개를 내 밀고 있는 중이다.
지난 번에 소개한 '자주 머물고 싶은 곳'에서 잠깐 언급했던, 밴쿠버의 한 카페에 매주 아름다운 부케들을 전시, 판매하는 The Wild Bunch에서 봄을 맞이한 꽃꽂이 워크숍을 진행한다는 것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평소 밥은 굶어도 꽃은 항상 곁에 두고 사는 게 취미 및 일상인지라 꽃꽂이를 진지하게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차에 이 기회다 싶어 바로 참가비를 지불했다. 그리고 오늘, 흐리고 울적한 구름 낀 하늘은 온데간데 없었다는 듯, 섭씨 10도의 아름다운 봄 날을 맞이함과 동시에 꽃꽂이를 배우는 발걸음도 절로 신이 났다.
워크샵을 진행하는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The Wild Bunch를 운영하는 Nassi와 Alexandra가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그들은 친절하게도, 꽃꽂이에 필요한 각종 꽃과 화병 및 정예용 가위 등은 물론이고 심심함을 달래줄 약간의 다과를 준비해놓음과 동시에, 참여자들이 도착하는 대로 개개인의 취향에 맞게 커피와 여러 종류의 차를 내어와주었다. 참여한 사람들끼리의 어색함이 조금씩 갈무리되어 갈 때 쯤, Nassi와 Alexandra는 그들이 준비한 여러 종류의 꽃, 가지 및 잡초들에 대해서 짧게 설명한 후, 꽃꽂이 시연을 하며 레슨을 시작하였다.
공병에 덩그라니 놓여진 나뭇가지들을 중심으로, 봄에 걸맞는 아름다움을 지닌 저마다의 꽃들이 Nassi의 손에 의해 하나씩 하나씩 놓여지니, 텅텅 비어있었던 여백의 미를 가진 공병은 어느 새 어느 곳에 두어도 나무랄데 없는 아름다운 풍미를 지닌 화병의 모습으로 재탄생되어갔다.
가장 돋보일 수 있는 메인 포인트의 꽃을 정하고, 마른 나뭇가지들을 사이사이에 곁들인 후, 왁스플라워 및 유칼립투스를 통해 공백을 채워넣는 일련의 반복된 과정들을 거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화병은 꽃꽂이를 시작한지 몇 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어엿하게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Alexandra가 꽃꽂이의 기본에 대해 곁들여 설명하는 동시에 Nassi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직접 꽃꽂이를 하는 시범을 보인지 20여 분 쯔음 지났을까. 그냥 멍하니 앉아 바라보기만 해도 탄성을 절로 자아내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화병이 한 순간에 눈 앞에 마법처럼 완성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실력에 감탄을 자아내며 열정적으로 질문을 쏟아내던 나를 포함한 워크숍 참여자들은 각자 자신들의 공병을 채워나가는 실습 단계에 접어들어야 할 시간을 비로소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1시간 후, 나의 공병은...
이런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요즘 한창 노란색에 빠져있다보니, 준비된 꽃과 가지들 중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것이 개나리가 잘게 핀 나무가지와 샛노란 카네이션이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하여 복숭아 가지로 뼈대를 삼고, 왁스플라워 및 유칼립투스로 빈 곳을 채워나가다보니 나름의 모습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이 꽃꽂이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이라면 처음 시작할 때 기초 뼈대를 세우는 것과 한 쪽에 무게 중심을 잡아나가는 것이었다. 물론 양쪽으로 똑같이 정렬해도 아름다울 수 있겠지만, Nassi와 Alexandra는 비대칭 적인 모양의 꽃꽂이를 선호한다고 했다. 또한, 꽃음과 비움을 끝낼 때를 아는 것 역시 초보자인 나에겐 아리송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능숙한 지도 아래 나름 마음에 드는 꽃꽂이를 한 화병을 집에 가지고 올 수 있게 되었다.
보너스로 그녀들이 참여자 모두를 위해 준비한 Aesop 비누 패키지에는 서울의 명소들이 A부터 Z까지 나열되어 있어 은근한 자국에 대한 부심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였다. 내가 직접 한 꽃꽂이 화병을 집에 들고 오는 길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움으로 가득차있었기 때문인지, 홀로 무거운 화병을 낑낑대며 이동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발걸음의 연속이었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꽃꽂이를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은 성큼 다가온 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어주었고, 마음을 풍성하게 해 주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즐겁고 유익하며 뿌듯하며 행복한 선물 같은 하루를 내게 선사해주었다. 150불이라는 참여비가 전혀 아깝지 않았던 꽃꽂이 워크숍. 다음 번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The Wild Bunch
위치: 7 east 7th ave, Vancouver
웹사이트: thewildbunch.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