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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UNIQUE Mar 29. 2017

[중국] 상하이 트위스트

시작부터 배배 꼬인 상해 여행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국 정부가 사드(THAAD)에 반발하기 위해 중국인들의 한국 여행을 금지하고 한국 기업들을 보이콧하는 사례들이 뉴스로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에 다녀왔던 중국 상하이의 기억들이 물씬 솟아난다. (결말부터 얘기하자면 좋은 기억들은 아니었다.) 캐나다 - 한국 - 필리핀 - 베트남을 거쳐 대만을 가기 전 5번째로 도착한 중국 상하이는, 밴쿠버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가 마침 자기 고향인 상하이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라며 집으로 초대하기에 2박 3일의 짧은 여정으로 들르게 된 곳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여행이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예감은 안타깝게도 적중하고야 말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하는 이승환 씨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절로 나오는 순간.)



다른 나라들과 달리, 고작 3일만 가는 데도 불구하고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던 첫 걸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집 근처의 비자 센터에 가보니, 새로운 비자 센터가 생겼다며 중국 영사관을 안내받았고, 그 곳에서는 여기는 비자 발급소가 아니라며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도돌이표처럼 집에서 1블럭 정도 떨어진 곳에 돌아와 허탈한 모습으로 중국 비자 센터에 도착해서는,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1달 전 부터 친구와 약속한 미국 시애틀 여행을 가려고 보니 여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 중국 비자 센터에서는 "중국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니 여권을 제출해야 해"라는 친절한 말 따위 없이 나의 여권을 가져가 버렸던 것이다. 운이 억세게(?) 좋은 나는 각종 서류들을 준비해서 적법한 여권 없이 미국 국경을 통과하는 마법의 술수를 부렸지만, 중국 정부에 화난 마음으로 부들부들 거리는 몸을 주체하진 못했다.



필리핀, 베트남, 중국 상하이, 대만을 거쳐 한국을 지나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야 했던 짧은 2주 반의 여정에서, 나는 거의 3~4일에 한 번씩 비행기에 탑승해야 했다. 모든 국가 및 도시에서 짤막하게 여행할 수 밖에 없었던 타이트한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상하이에서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대도시라서 그런지, 짧은 일정에 비해 뭔가 많이 준비해놓은 친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10년 전에 유럽을 갔을 때는 가고 싶은 곳의 일정을 빡빡하게 짜서 최대한 많이 돌아보는 것이 나의 여행 스타일이었다면, 나이가 들은 탓인지 '우주가 안내하는 대로'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요즘, 친구가 준비해 놓은 빡센(?) 여행 일정이 피곤하게 다가온 탓도 있거니와, 친구가 안내해 준 곳들이 내 취향과 맞지 않는 것도 스트레스의 한 요인이었다. 나는 삐까뻔쩍한 상하이의 모습보다 오래되고 역사가 유구한, 전통적인 모습의 상하이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으나, 친구는 그런 곳은 볼 것이 없다며 자꾸 신식 문물이 넘쳐나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바쁜 와중에도 나를 열심히 챙겨 준 친구가 고마웠지만, 결국 우리는 상하이의 지하철에서 약간의 언쟁을 다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다 털어 놓는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우리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3일이라는 짧은 일정이지만 내가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보고 가기를 바랬던 내 친구의 마음과, 3일 가지고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친구만 보고 가면 만족했을 나의 마음이 접점을 찾게 된 것이다. 친구는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작은 규모이지만 귀여운,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은, 마치 신사동의 가로수길을 연상시키는 거리를 구경시켜주었고, 관광지스럽긴 하지만 나름 볼 만 했던 '신천지(Xintiandi)'에서 여유롭게 맥주 한 잔씩을 곁들이며 남은 회포를 풀어나갔다.



번드(The Bund)에 위치한 Bar Rouge에서 비싼 칵테일을 마시며 즐긴 야경





전통적인 중국식 사원에 상업화 된 상점들이 잔뜩 들어선 Yuyuan Garden을 돌아보고,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핫(hot)'하다는 음식점 '다 동(Da Dong)'에서의 오리 고기를 먹은 뒤, 상하이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인 파크 하얏트(Park Hyatt)에 가서 칵테일을 두 어잔 걸쳤다. 87층이라는 아찔한 높이의 스카이 바 'Cloud 9'에서 상하이의 전경을 내려다 보며 칵테일을 마시니, 쉬이 달아오르던 취기도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시간을 잘 맞춰 들어간 덕분에, 맑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 가는 아름다운 석양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과 맞물리는 무역과 경제의 중심지 답게, 상하이는 숨가쁘리만치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여행자에게 친절하거나 따뜻한 도시는 아니었다. 치명적으로 비싼 물가는 내 일생 일대의 가장 비싼 칵테일을 맛뵈게 했다. 파크 하얏트 호텔의 스카이 바에서 주문해서 마신 35불(3만 5천원)의 싱가폴 슬링(Singapore Sling) 칵테일 한 잔이 베트남 하노이의 럭셔리 호텔 1박 보다 5불이 비싸다는 것을 비교해 봤을 때 얼마나 물가가 높은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배배 꼬인 상태로 시작한 상하이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아름다운 결말을 맺으며 끝이 난 것이 다행스럽다. 언제 다시 볼 지 모르겠지만, 그 때는 상하이 트위스트(Shanghai Twist)를 춤출 필요 없이, 우주가 이끄는 대로 자유로이 이 도시가 가지고 다양한 모습을 여유롭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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