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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UNIQUE Apr 25. 2017

취미가 있는 삶

행복의 지름길


초등학교 때 피아노 개인 교습을 받은 지 2주 만에 때려치고 태권도를 4년 동안 배운 나에게는 늘 악기를 다루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사회 생활을 하다보니 취미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악기 연주를 즐기며 밴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음악으로 하나되는 동질감을 느끼는 그들이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패션을 취미가 아닌 업으로 삼은 지 십 년 정도 지나니, 더 이상 패션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단지 취미로 쇼핑을 즐겼다면 패션 산업에 지금보다 덜 냉소적이고 비관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살아온 삶에 후회와 선택은 없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패션 이외에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리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는 것이다.



만드는 손재주가 없고 악기를 배우는 것에 흥미가 없다는 판단 하에, 다른 어떤 무언가를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를 퇴사 후 부터 계속 고민해 오고 있다. 요즘에 끌리는 것은 '서예'와 '꽃꽂이'이다. 안타깝게도 밴쿠버에 한국식으로 서예를 가르쳐주시는 분이 없어서 아마도 중국이나 일본 사람에게 배워야 할 것 같지만, 정성스레 먹을 갈고 붓에 마음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써가는 것을 취미로 삼는다면 재미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꽃꽂이는 한 번 배워봐서 그런지, 나름 진입 장벽이 낮게 느껴지는 취미이다. 꽃을 소매가로 구매하는 것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만, 예쁜 꽃들이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룰지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어렵게 결정하여 집으로 꽃꽂이 용 꽃들을 한 다발 들고, 틈틈이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집으로 걸어오는 발걸음이 그리 가벼울 수가 없다.



오늘은 '취미를 만들어야지'하는 장대한 결심보다, 단순하게 날씨가 좋아서, 집 밖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짧게 돌고 난 후, 아직도 푸른 하늘이 아쉬워서 집으로 쉬이 들어가지 못하고,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나의 발자국은 꽃을 구매할 수 있는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대규모 슈퍼마켓이지만 여러 종류의 꽃을 판매하고 있는 홀푸즈 (Whole Food's)의 앞에는 튤립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채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매장 안에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꽃들로 눈과 코가 동시에 즐거워졌다.



한국에 있을 때 프리지아를 좋아했었는데 캐나다에 와서는 한 번도 산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탓일까, 오늘은 왠지 프리지아의 향기가 계속 나를 이끌었다. 그리하여, 보라색 프리지아와, 연한 핑크색의 라넌큘러스 (Ranunculus),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안개꽃 한 다발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안개꽃 (Baby's Breath)


프리지아 (Freesia)


라넌큘러스 (Ranunculus): 한국어로는 미나리 아재비 속(?)이라고 한다고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꽃들을 한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새로이 정렬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잔 가지들 때문인지 엉키고 설키는 바람에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지만, 차차 잔 가지들을 솎아내고 잘라내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어느 정도 중심이 잡혀 나가기 시작했다. 왼손으로 다발을 쥐고, 프리지아와 라넌큘러스가 예쁘게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모양을 잡아 나갔다. 서서히 내가 원하는 모형을 이룬 꽃다발에 안개꽃으로 빈 자리를 채워나가니, 어느새 내가 원하는 모습의 꽃다발이 만족스럽게 완성되었다.



완성된 모습의 꽃다발. 나름 만족스럽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으면 행복해질 것 같은 꽃다발이지 않은가?





완성된 꽃다발을 고무줄로 묶어준 뒤, 아래 삐뚤빼뚤한 꽃 줄기들을 쳐내어 꽃병에 쏙 담으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힐링 효과가 있다. 앞으로도 자주 꽃꽂이를 취미 생활로 하는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취미가 있는 삶이야 말로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문득, 독자님들은 어떤 취미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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