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너는 내가
때는 주중의 어느 한적한 오후 다섯 시 경, 나는 서울에 상경한 고향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 오기 전 너무나도 마셔보고 싶었던, 아직 밴쿠버에는 진출하지 않은 '플랫 그린'을 마시기 위해 도산대로 근처의 커피숍에서 드디어 고대하고 대망하던 그 귀하디 귀한 음료를 음미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친한 친구와 함께 고등학교를 다닌 친구가 커피숍 앞을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대학교 진학 후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지만 어떻게 지내는지 대강 소식은 알고 있는 이 친구를 서울 한 복판에서 마주치게 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마침 그 친구와 친구인 친구가 나와 함께 있던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둘이서 통화를 하고 있던 찰나, 이 친구의 친구(!)가 우리의 눈 앞에 홀연히 마법처럼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정신 나간 소녀 떼처럼 미친 듯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지방에 있는 친구와 함께 이 실로 믿기지 않는 일에 대해 통화를 마친 후, 몇 장의 인증샷을 남기고 헤어졌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인스타그램을 통하여 연락이 닿아 이토록 우연히 마주친 이 친구의 친구와 함께 브런치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소셜 미디어 사용자가 최대한 사진을 많이 찍고 공유를 할 수 있도록 (화장실까지) 작정하고 꾸며놓은 듯한 강남의 핫플레이스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워내었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학교의 다른 캠퍼스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이 친구는 현재 내로라하는 대기업 광고 회사에서 A-List 셀레브리티들(정우성, 전지현, 송중기 등)과 촬영을 하며 광고를 제작하는 '아트 디렉터'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작가'를 꿈꿨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재미로 만들어 본 영화를 통해 영화 편집의 재미를 깨닫고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과 안에는 여러 가지 학회들이 존재했으나 나는 당연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송학회'를 택했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 신입생이라는 이유로 카메라 조차 손대지 못했고, 편집실은 구경 조차 할 수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배우가 모자랐던 '연극학회'에서 캐스팅이 되어 정기공연을 올리게 되고, 함께 동고동락한 동기들과 선배들이 좋아 미련 없이 연극학회로 소속을 바꿨다. 연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무대 위에 서는 것을 즐겼지만, 영화 편집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장장 8시간의 필기, 실기, 면접을 통해 한 유명 광고연합동아리의 '영상학부'에 가입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영화, 방송, 광고에서 전혀 다른 '패션'으로 커리어의 방향을 틀기는 했지만, 나름 광고에 관심이 많았던 탓인지 이 광고계에 몸 담고 있는 친구의 친구와는 정말 말이 잘 통했다. 비록 학창 시절에 친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알고 보니 관심사와 취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웃음 포인트가 비슷한 친구였던 것이다. 또 한 번 서울에 갈 기회가 있어 이 친구와 밥을 먹기로 했다. 이제는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된(?) 이 친구는 나에게 전시를 보러 가지 않겠냐는 뽐뿌를 넣었고, 우리는 서로 관심이 있던 전시 몇 가지를 공유했다. 지금은 이미 끝나버렸지만 보고 싶었던 D뮤지엄의 '샤넬 마드모아젤' 전시나 브랜드 'ADER ERROR' 전시 및 보그 매거진의 'Vogue Like a Painting'이 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 친구가 회사 부사장님께 받은 초대권이 있다며 보그 전시회를 가자고 했다.
전시회를 가기로 한 날, 이 친구는 내가 먹어보고 싶어 했던 홈쇼핑 티라미수까지 아이스팩에 싸오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전시를 보러 가기 전, 우리는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감동의 티라미수를 함께 나누며 예술의 전당 1층 커피숍에서 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친구는 최근 결혼식에 다녀왔는데 내 얘기를 했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한 말을 내게 들려주었다. "얘는 인생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애."라고 나를 소개해주었다고 말이다. (평소 칭찬에 약한) 나는 여기에서 2차로 무한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신념을 알아주는 것에 대한 감동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영어 표현 중 하나인 "YOU are the Master of your life."라는 말을 친구가 모국어로 말해주는 것 같아 짜릿하고 황홀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잘 나가는 광고계에 몸 담고 있는 이 친구가 부러운데. 이 친구는 외국에 살면서 하고 싶은 거 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 같은 내가 부러운 모양이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손 쉽게 타인의 생활을 염탐하고, 그들과 나의 삶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잘 사는 것 같은 자괴감 혹은 나아가 사회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이 부러운 것은 인간이 타고난 본성과도 같은 것일까. 우리는 우리가 부럽다. 하지만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사람이라도 고민이 없을 수는 없고,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부러워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명확해야 한다. 나는 우연한 기회가 이어 준, 물론 지금도 이미 멋지게 살고 있는 이 친구의 미래를 응원하고 싶다. 부러운 마음을 담아. 힘껏. '욜로'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정말 단 한 번 뿐인 우리 인생. 더욱 더 멋지게 살아내보도록 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