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말, 참으로 은유적이고도 함축적이고, 알다가도 모르겠는 이 말. 학창 시절에는 사실 '행복'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첫사랑에 정신이 빠져 있었고, 중학교 때는 놀러 다니느라 바빴고,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쇼핑과 영화에 미쳐있었고, 고3 때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수능 준비'라는 것을 시작했으며, 가고 싶은 대학 및 과에 입학한 후에는 방송, 연극, 광고, 영화 등 갖가지 동아리 활동에 여념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학 졸업 후에는 바로 캐나다로 넘어가 패션으로 커리어를 목표하여 달려왔으니 사실 '행복'이라는 것 따위 생각할 여유나 겨를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혹은, 그렇게 바쁘게 무언가에 꽂혀서 사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지금에 와서야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캐나다에서의 생활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원하는 직장을 가졌고,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랐느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영어를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하게 되었고, 남 부러울 것 없는 친구들과 동반자를 얻었으며, 취미로 즐겁게 열심히 한 소셜마케팅 앱 덕분에 유명세도 얻었고, 그 덕분에 많은 것들을 공짜로 누릴 수 있었고, 만족할 정도의 집에 살면서 모자랄 것 없는 수입을 벌어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읽어보면 단 하나도 부족할 것 없어 보이지만 나에게는 이 '정착'이 곧 '동기 저하 및 부재', '지루함', '우울함', '속박', '구속'이자 '불행'의 시작이었다. 나는 항상 내가 목표하는 바를 이루어냈으며 후회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내가 원한 모든 것을 이룬 종착점에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하는 '허무'만이 나를 기다릴 뿐이었다.
결국 다시 선택의 갈림의 서게 된 나는, 내가 이룩한 모든 것을 버리고 어디론가 훌훌 떠나고 싶어졌다. 그래서 퇴사를 결정했고, 나의 인생의 동반자에게도 청천벽력같이 이별을 통보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일을 그만둔 친구와 '남미 여행'을 계획했다. 그런 도중, 한국으로 오는 편도 티켓을 엄청나게 저렴하게 파는 것을 보고 한국행을 결심, 현재 4개월째 고국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요즘에는 '갓수(God+백수를 줄인 말)'도 유행한다고 하는데, 이런 사회적 트렌드를 보면 '행복'을 찾아 부유하는 나와 같은 영혼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들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세계 어디를 다녀 봐도 한국 사람들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으니까. 학생 때는 수능이라는 벽에 치이고, 직장에 들어가니 '내가 이 일을 하려고 그 많은 돈을 들여 대학을 나왔나' 싶고, 일이 많아서 혹은 일이 맞지 않아서 힘들다.
학창 시절에는 원하는 전공으로 대학만 들어가면 행복할 줄 알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직장에 취업한 후 승진을 하면, 올라간 급여명세서를 받으면, 여윳돈으로 디자이너가 만든 명품을 사 입으면, 평소 원하던 자동차를 사면, 통장에 돈이 쌓이면...
.
.
.
행복할 줄 알았다.
.
.
.
하지만 몰라도 한참 몰랐다.
'행복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 그 누가 그랬던가.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나름대로' 자신이 아는 한에서 너무나도 열심히, "행복"이라는 모호한 것을 좇고 있다. 많은 것에 부딪히고, 많은 일과 사람을 겪어보고, 목표한 바를 이룩하고 나니 시사할 수 있는 바는 '내가 언제 행복한가'를 정의 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와 되돌이켜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돈, 사회적 지위, 명품, 사치나 '엄마 친구 아들이 뭘 한다더라' 혹은 '요새는 이게 유행이래'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아웃사이더스럽고 괴상하고 유별나고 반사회적이고 반항적일 정도로 '나만의 것'을 추구해왔다. 살아오면서 해야 하는 선택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남이 하니까'에 기반한 것이 없었다. 남이 하는 것은 되려 피하려고 노력해왔으니까. 이런 성향을 가진 내가 산전수전을 다 겪고 다시 정의해보는 "행복"이란, '소소함에서 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요리를 함께 해 먹는 저녁, 오랜만에 좋아하는 식당에서 하는 외식, 오래된 친한 친구와 떠드는 수다, 멋진 인테리어의 카페에 앉아 마시는 달콤한 커피, 그곳에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사색(=멍 때리기)을 즐길 수 있는 여유, 항상 동경했던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 순간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들... 이 바로 내 삶의 "행복"이다. 많은 돈, 그럴듯한 직장, 전망 좋은 집, 새 차, 멋진 가구, 비싼 옷과 구두와 가방과 신발, SNS 팔로워 수 등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는 것은 순전히 사회, 문화, 교육적 제도 및 미디어에서 답습되거나 타인의 욕망이 나에게 투영된, 허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행복'이란, 소소함에서 오는 것
내가 내린 행복에 대한 재정의는 현재 여기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일까. 친한 친구와 우연히 들른 이 커피숍이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진 것은. 내가 내린 행복의 정의는 나이가 듦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멋진 인테리어의 카페에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친구와 웃으며 떠드는 수다를 즐길 수 있는 여유로 가득했던 순간들은 오래도록 내게 행복한 기억 중의 하나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당신에게 행복은 어떤 것인가?
PHOTOGRAPHED, WRITTEN & EDITED BY BEYUN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