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수술
토요일이지만 일찍 일어났다.
직장암 수술을 마치고 병원에서 회복중인 어머니를 보러 가기 위해서다.
모자를 쓰고 갈려다가 귀찮지만 머리를 감았다. 오랜만에 보여드리는 자식얼굴.
멀끔하게 해서 불필요한 걱정은 드리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만지고 얼굴에도 BB크림을 살짝 발랐다.
청바지에 검정색 V넥 티셔츠로 무난하게.. 올해 구입한 새 점퍼를 걸쳤다.
30분 떨어져 살고 있는 큰누나, 둘째누나와 매형을 차례대로 태우고
우리는 고속도로를 탔다.
매형은 일년에 두어번 보는데 삼촌 칠순잔치 하던날 보고 벌써 이번달에만 두번째다.
늘 온화하고 남한테 나쁜소리 안하는 사람이다. 성깔있는 누나한테 잘해서 고맙다.
매형과 나는 앞좌석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기계에 관심이 많은 매형은 휴대폰과 자동차 얘기하는걸 좋아한다.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나는 그분야에 그리 박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60을 넘긴 큰누나라 50후반의 둘째누나는 국민연금이 얼마인지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서로 정보를 공유했다.
휴게실을 한번 들려야 했다. 나도 소변이 마려웠기도 했지만 나이가 든 누나들은 자주 화장실을 가야 한다고 했다.
병원까지는 1시간 30분정도 걸렸다.
서관 8층
형수님이 맞아주셨다.
통원치료까지 벌써 2주차 병수발을 하고 있다.
고생많다고.. 감사하다고 쭈볏하게 내가 말했다.
빈말은 아니었다.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내 결혼상태가 그렇다 보니, 내 역할을 전가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에 더 미안했다.
병동은 분주했다. 리모델링 때문에 8층 환자들을 모두 9층으로 옮기고 있었다.
차례가 아직 오지 않은 어머니를 8층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자그마한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얼굴에 고통스러운 모습은 없었다.
수액으로 퉁퉁부은 손으로 도착한 자식들의 손을 일일이 만져준다.
마음이 순간 전해졌다.
'나 괜찮데이~. 와줘서 고맙구나'하는 것처럼.
다소 산만한 병실이었지만,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수술경과가 좋았고 환자 상태가 좋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눈물도 많지만 본인에게만큼은 유독 강철같다.
나는 안다. 절대로 자식에게 추한 노후의 부모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항문이 없어지는 것, 뇌출혈로 말이 어눌해 지는 것, 요양보호소에 가는 것은
당신께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이다.
담대하게 모든것을 받아 들이고 자식들에게 천덕꾸러기는 되지 않는다..
끝내 놓을 수 없는 부모로서의 권위와 자존심을 당신은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의 내 자존심과 당신의 자존심이 어쩌면 비슷한 차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4인실 공동간병실 배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간병차 하룻밤 자고 오려던 큰누나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집에서 쉬고 있던 형님은 한참 뒤에 도착했다. 우리는 휴게실에 둘러앉아 둘째 누나가 가져온 그리 달지 않는 귤을 까면서 수술이야기, 장루(똥주머니) 교체, 앞으로 해야할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장남이 왜 중요한지 느낀다. 이번일에는 사실 형님이 도맡아 처리했다.
장남이 장남노릇을 못했을 때 불화가 있어난다.
불행중 그나마 다행인점이다.
그 와중에도 유료주차장 주차요금이 신경쓰였다.
어머니가 아픈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드는 내가 쫌쓰러웠다.
점심때가 된터라 병원밖에서 식사를 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굴국수가 얼큰했다.
형님은 어제 직장에서 한잔해서 그런지 국물을 가장 빨리 바닥까지 비워냈다. 장남답다.
일어날 쯔음, 매형이 계산대로 다가가더니 카드를 꺼냈다.
나는 안다. 넉넉치 않은 매형이 왜 계산대로 먼저 가야했는지. 누나에 대한 체면때문이다.
체면을 세우는데 가장 좋은 수단은 돈을 쓰는 것이다.
형님이 타이밍 좋게 매형이 버티기엔 버거울 정도의 힘으로 밀어냈다.
매형은 굳이 버티지 않고 순순히 밀려났다. 이럴때는 애매한 줄당김은 좋지 않다.
아무튼 해피엔딩이다.
밥값은 10만원 조금 넘게 나왔다.
식대는 아마 어머니 농협계좌에서 빠져 나갈 거란걸 나는 알지만,
우리는 형님께 잘먹었다고 했다. 그런건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주차요금 5,600원. 생각보다는 적은 금액이다. 다행이었다. '나는 정말 쪼잔한가 보다'
왔던 사람들은 차에 오르고 형님과 형수를 남겨두고 병원을 떠나왔다.
배는 불렀고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신께 감사하지는 않겠지만, 어머니의 상태는 그나마 다행이다.
앞으로 헤쳐나갈일이 또 생기겠지만.
가족은 여러모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