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현관문에 놓인 작은 생명

by 솔빛태연





27년 전,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의 어느 겨울밤. 10시 반쯤 되었을까, 아파트 현관 벨이 울렸다.


비디오폰 화면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다시 벨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벨을 누르는 손길에서 어떤 다급함이 느껴졌다. 아직 남편은 귀가하기 전이었고, 가족이 누르는 벨 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순간 밤늦은 시간 누군가의 장난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고, 정체 모를 두려움이 등을 훑고 지나갔다. '이상한 물건을 문 앞에 두고 간 거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섣불리 문을 열 수가 없었다.


현관문고리를 걸고 조심스레 문을 밀어보자, 문 옆 귀퉁이에 작은 상자 같은 것이 살짝 보였다.


나쁜 상상들이 머릿속을 요동쳤다. 물건을 전해주러 온 사람이라면 얼굴을 비추며 말이라도 건넸을 텐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물건만 놓여 있다는 상황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혹시라도 나쁜 사건에 연루될까 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곧바로 경비실에 연락해 "복도에 벨만 누르고 누군가 물건만 두고 간 것 같으니 확인해 달라"라고 요청했다. 경비 아저씨가 곧 오시겠지만, 잠시 보였던 그 상자가 나를 더 큰 불안감으로 몰아넣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에게도 연락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잠시 들러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지인과 경비 아저씨는 거의 동시에 우리 집 앞에 도착했다.



그제야 현관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갔다.


경비 아저씨가 정체 모를 작은 상자를 손에 들었고, 오밤중에 무슨 일이냐며 놀란 지인도 아저씨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 혼자가 아닌 곁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든든해졌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상자처럼 보이던 물건을 들춰보았다.




그 안에는 갓난아기가 가느다란 숨을 내쉬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너무 놀라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아기다!"



밖에서 상자로 보였던 것은 아기를 감싸고 있던 포대기였다. 추운 겨울, 아기의 존재를 빨리 알리려고 벨을 그토록 급하게 눌렀던 부모의 마음이 짐작되어 가슴이 아려왔다.


작고 여린 생명을 마주한 우리 셋은 한동안 멍하니 아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탯줄조차 떨어지지 않은 신생아가 가느다란 맨다리를 드러내며 그제야 작은 울음을 터뜨렸다.

“업둥이 아들이네요!” 경비 아저씨는 “이 집에서 아기를 키워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나를 쳐다봤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내 집 현관 앞에서 벌어지다니. ‘이 아기의 부모는 누구일까, 왜 하필 우리 집이었을까.’ 하지만 우리 집은 이미 초등학생 아이가 있어 아기를 키울 형편이 되지 못했다.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사건이었기에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경찰서였다.


파출소 경찰관들이 도착해 상황을 파악한 후, 아기를 우선 인근 산부인과로 데려가기로 했다. 떠나는 아기를 배웅하며 함께 상황을 목격한 경비 아저씨와 지인도 돌아갔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어수선한 아침을 맞았다.


우유를 사러 간 슈퍼에는 벌써 간밤의 소동이 소문으로 퍼져 있었다.


“우리 아파트에 어젯밤 업둥이가 들어왔다며? 아들이라던데.” “딸이었으면 내가 키웠을 텐데!”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며 나에게도 소식을 들었느냐고 물었다. 경비 아저씨가 호수는 비밀로 해주셨나 보다 생각하며 안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심란했다.


그 추운 날 아기가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오전에 파출소를 방문해 조사를 받는 중에도 떨리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아기는 이미 의료원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내가 다니는 성당을 통해 아이를 키울 분이 있는지 수소문해 보았지만 나서는 이는 없었다.


아이가 없는 지인 부부에게도 조심스레 연락해 보았으나,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때면 우리 나이가 쉰이 넘으니 욕심인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기를 현관 앞에 두고 간 행위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범죄 연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입양은 그 후에 고민할 문제였다. ‘내 선택이 현명했을까?’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 생명의 처지가 불쌍해 가슴이 자꾸만 먹먹해졌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기로 했다. 국내 입양이 여의치 않으면 해외로 보내질 수도 있다는 경찰의 말에 마음 한편이 쓸쓸해졌다.



하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이 아이를 기다리는 좋은 부모가 있을 거라 믿었다. 정신없던 이틀이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시댁과 친정에는 이 일을 따로 알리지 않았다. 이미 상황은 일단락되었고 내 선택은 끝났기 때문이다.




며칠 후, 경비실에 들러 밤사이 함께 고생해 주신 아저씨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양말을 선물했다.


그리고 성당에 들러 그 아기를 위해 기도했다. 입양이라는 과정을 통해 어디에서든 사랑받으며 건강하게 자라기를. 함께 해주지 못한 나의 미안함까지 그 아이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느덧 27년이 흘렀다. 가끔 입양 관련 뉴스나 예전 아파트 앞을 지날 때면 그 아이가 문득 생각나곤 한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쌍둥이 손주를 보며 할머니가 되었다. 생명의 신비로움과 감사함을 느낄 때마다 그 추운 겨울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 부모는 얼마나 힘든 결심을 했을까. 수많은 집 중 왜 우리 집이었을까. 성당 활동을 열심히 하던 나를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알 수 없는 마음뿐이다.



한동안은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아 베란다 밖을 무심히 내다보는 버릇이 있었다. 아기의 부모는 “내가 직접 키워주길 바랐을까,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아기가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방법을 해결해 주길 바랐던 것일까.”



그 차가운 겨울밤의 짧은 인연이 어떤 의미였는지 아직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한 아이의 인생에 아주 짧은 순간 함께했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가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빠른 결정을 내렸다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위로해 본다.



그날의 선택은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 밤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한 아이의 삶에 아주 잠깐 머물렀던 그 시간이, 내게는 소중하고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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