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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Sep 24. 2023

아름다운 기억은 설악의 계곡을
따라 흐른다

계곡의 물줄기 쫓다 보면, 나는 물을 따라 흐른다

설악의 여름, 그 산속 하루는 더디게 간다. 

오래전 10년이 넘게 여름과 가을이 되면 머물고 생활했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설악의 깊은 계곡 속에서 깊어 간다.

산장 지킴이의 하루하루는 지루하고 자연이 준 청초한 하루하루였다. 

여름 피서철이나 가을 단풍시즌이면 붐비는 산속의 하루는 무료하고 일상은 변화가 오직 자연이 하루하루를 달리한다는 것뿐이다.

지루하다. 아직은 젊은 만큼 바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은 오전에 3층까지 수 십 개간 넘는 산장청소를 겨우 끝내면, 

뚜렷하게 할 일도 없지만 오후가 되면 설악의 계곡을 속 속이 들여다보며 한참 동안 산책한다.

그런 하루 일상이 일과의 연속이자 루틴이 된다.

 

산속의 하루하루는 모든 것을 더디게 하고 때론 묘한 구름이 만든 몽상을 꿈꾸게 한다.
계곡의 물속엔 촉촉한 여름날의 산속 기운에 온 산이 산뜻하게 보인다.

새소리, 벌레소리까지 멀리서 스님의 불경소리까지 전해진다. 

계속 속에는 혼자 계신 듯한 암자 처마에 반짝이는 윤슬에 사로잡혀 강가를 서성이다 

그만 그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사실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내가 아니라 어딘가로 자유롭게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다. 

물속에서 행복해하는 자신에게 차마 밖으로 나오라고 말하지 못하고, 

자신을 물속에 둔 채 산장으로 향한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종일 내내 마음은 그 계곡 속에서 유유히 헤엄친다. 

계곡 물 밖에서 평소처럼 먼 산을 쳐다보지만, 일상엔 작은 틈이 생겼다. 

그 틈새로 또 다른 숨을 틔운다. 

 

그런 계곡의 물줄기 쫓다 보면, 

나는 계곡 물을 따라 흐른다.

나는 다시 반짝이는 물결을 보며 계곡의 세찬 물줄기 보고 있게 된다.

그 바위 언덕 위로 올라가 서 있으면 환상 여행을 마친 듯 유유히 강물로 흐른다. 

쓱 쓱 겹치고 번진 물감의 흔적을 따라 푸른 계곡 따라 제법 넓은 강의 기운이 흐른다. 

그리고 동해 바다와 접한 강으로 흘러간다.

 

시작과 끝이 정해지지 않은 계곡을 따라갈 뿐이지만 물의 흐름을 좇다 보면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물결 속에서 ‘나’와 내가 몰랐던 또 다른 나는 마음껏 물장구치며 웃는다. 

학교나 집마저 도 지운 채 홀가분한 ‘나’들은 생생하게 튀어 오른다. 

마음만 먹으면 너른 강물로 뛰어들어 여러 명의 나와 헤엄칠 수 있다는 상상은 청쾌한 풍경 그림처럼 함께 펼쳐진다. 

물을 담뿍 머금은 그림물감 붓질로 완성된 장면들은 물결처럼 흐른다. 

아직도 찰랑거리는 물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물속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을 조금은 알게 된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물은 여전히 두렵지만, 

때때로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때 홀가분하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부터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세계,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나이지만 내가 아니기도 하다.
 
일상의 작은 틈으로 또 다른 한숨을 틔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디론 가 떠나는 이동이다든가 여행은 반드시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도 알지 못하는 대상을 쫓아 여행을 떠나갈 수 있다. 

우리에게는 먼 곳을 상상하는 힘도 있었다. 

빼뚤해서 싫었던 그리고 돌고 돌아온 궤적 속에서 나는 반짝이며 흐른다.

때론 마음은 세월이 쏜 화살보다 저 멀리 날아갈 수도 있다.

어머니와 함께 쏜 시간을 따라 흐른 청춘의 시기에 

이젠 왠지 모를 그리움에 눈언저리 시큰거려 먼 하늘만 보던 시간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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