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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Nov 26. 2023

얼큰한 ‘홍창 전골’에
술잔을 빠트렸다

말술을 입안에 털어버렸던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같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직장 동료가 한 말이다.
 “한국 음식 안 먹어도 괜찮을 줄 알았어요.”
 처음 삼 사일 정도는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얼큰한 음식이 몹시 당겼다고 했다. 

나 역시도 신입사원시절 선배가 첫 해외여행 갈 때, 전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고추장만은 반드시 챙겨가라는 말이 농담인 줄 알았다. 

 

이번 해외여행에선 단 2일 만에 얼큰한 해장을 할 음식을 찾게 됐다.

어제 마신 술 탓인가?”, 

아니면 “나이 탓인가!’

지난 유학시절 외국에서 5년을 살아도, 그 후 잦은 외국출장에도 있어도 별 상관이 없었던 일이다. 

그 당시에는 굳이 한국음식이 아닌 외국 음식만 먹어도 괜찮다며 ‘글로벌’한 사람인 것처럼 짐짓 거드름을 피우기도 했다. 

이제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 같다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얼마 전 일본여행에서는 김치와 고추장이 생각나고 아침 해장에는 얼큰하고 매꼼한 컵라면이 댕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비행기가 뜨고 이국의 공기로 숨을 쉰 지 얼마 후면 매콤하고 얼큰한 것들이 당겨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이 심심하고 맛이 담백한 것이 최고라며 그런 음식만 찾아다니기도 했다. 

주변에 모든 맛을 다 눌러버린다는 이유로 거칠고 매운맛이 고급스럽지 못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나 역시 이른바 ‘좋은 맛이란 본연의 재료를 살린 담백하다’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과연 고춧가루 없이 한반도 거주민이 단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스치며, 오랜만에 친우들과 같이 오랜만에 충무로까지 먼 길 발걸음을 재촉하여 식사를 한다. 그리곤 홍창 전골과 토마토 치킨 전골을 시킨다.

홍창 전골은 자작하게 졸아든 빨간 국물 속에 쫄깃하고 감칠맛 나는 내장 살을 하얀 밥 위에 올렸다. 

홍창은 곱창과 달리 특유의 비린 맛이 하나도 없고 담백하다. 

그리곤 얼큰하고 매캐한 국물 맛이 혀를 강타하면 술잔을 입안으로 당기게 한다

 

오랜만에 빨간 국물을 보자마자 침샘이 마구 돌았다. 

얼큰한 고춧가루 냄새가 들어와 홍창과 어우러져 먹지 않아도 그 맛이 느껴진다. 

짬뽕과는 다른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중국의 마라(麻辣)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참지 못해 한 숟가락 가볍게 맛본 국물의 깊이는 찌르는 듯하고 얼얼해 위장을 뜨겁게 달군다. 

하지만 고춧가루로 두툼하게 장식한 양념장은 뒤로 뭉근한 단맛이 느껴진다. 

넓적한 전골냄비에 담긴 채소와 기름기를 살짝 뺀 홍창과 양념은 고춧가루 방앗간에 온 것 마냥 

살짝 후끈한 기운이 돈다.
 최루탄을 마신 것처럼 매캐한 맛이 혀를 강타하면 불을 끄듯이 술잔을 입안에 던져 넣을 수밖에 없었다. 

살짝 맵지만 주인장에게 덜 맵게 주문하면 또 그렇게 맵지 않은 국물과 채수 맛이 깊이 밴 

국물양념에 밥을 비비고 리조토(국물에 비빈 밥)를 먹으면 입맛이 다시 돌아온다. 

 

찬 하나하나가 오래된 느낌이 없어서 젓가락이 저절로 갔다. 

직접 수고롭게 담근 찬으로 나온 미나리 무침, 파김치와 석 박지를 곁 드려 한 움큼 집어넣었다. 

그리고 석 박지는 최고의 곁들임이 틀림없었다.

매콤한 맛 뒤로 새콤하고 달달한 맛이 부드럽게 입안을 달래 준다. 

고소한 뒷맛이 남아서 한 숟가락이 다음 숟가락을 자연히 불렀다. 

그리곤 남은 국물에 미나리가 듬북 올린 리조토로 곁 드린 죽은 포만감을 부른다.

식사는 오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평화롭게 끝났다. 

이마에 흐른 땀은 금세 식었지만 부른 배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저 앞에 친우들이 어깨동무하듯이 걷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과의 조용한 다정함 속에서 이 매운 음식을 보니 또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며칠 전 저녁 늦게까지 술잔을 부딪치며 끝내 서로에게 기대어 집에 돌아가던 

이젠 몸이 망가져 술 한잔도 못하지만 말술을 함께 먹던 살짝 멀어진 후배들은 여전히 잘 있을까?

서로가 익숙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정겨운 사람들이다. 

가을의 끝자락이지만 한 겨울의 찬 세찬 바람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제 소식 끊어진 말술을 입안에 털어버렸던 그 많던 친구들은 다들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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