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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Sep 02. 2023

어떤 하루는 미나리 전에 곁들인
막걸리도 너무 좋죠!

장맛비가 그리 싫지 않은 까닭이죠

맛난 음식, 그런 미식(美食)이 하루를 바꾼다

밤새 붓든 내린 장마가 몰고 온 세찬 비바람이 지나가고, 다시 거실 창을 타고 뜨거운 바람이 들어온다. 그런데 가을에 다가선다는 절기도 지났는데 아직 인가 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다 갑자기 돌변하는 심술 많은 세찬 장맛비가 온종일 내리고 있다. 

내리는 듯 마는 듯 지리멸렬한 비보다는 시작과 끝이 또렷한 장마가 반갑기까지 하다. 

어! 어느새 비가 그치고 하늘은 개고 있다.


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난했던 기억 속의 미나리 전에 막걸리 한잔 생각이 간절하다. 

이 조건반사에 가까운 충동에 이유를 따지기 보다 친구에게 전화하고 약속을 잡자마자 

우산을 챙겨 예전에 감동적인 맛에 반했던 충무로 쪽으로 발길을 잡는다.


파전이 아닌 미나리 전에 곁들인 막걸리도 너무 좋죠. 

얼마 전 처음 접한 미나리 전이 파전보다 한수 위였었다.

새롭게 찾은 ‘미나리 전’ 맛집으로 나섰다. 

파전을 파는 식당은 많지만 미나리 전을 제대로 맛있게 내는 음식점은 그리 많지 않다.

충무로 역 근처의 대학가에 있는 그곳이 기억나는 한 곳이다.
 이전에 우연히 먹었던 미나리와 작은 새우에 쌀가루 반죽을 살짝 끼얹어 기름기 없게 담백하니 바싹하게 지져낸 전이 제대로 맛난 미식이었던 것 같다.

미나리의 향에 바싹한 보리새우의 향이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부르는 맛이다.

물론 이 전에도 취향에 따라 호 불호는 있다. 

기존의 파전이나 전과는 모양이나 맛도 다르기 때문이다.

밀가루 반죽에 파와 오징어, 약간의 해물, 땡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얇고 바삭하게 구워 내는 일반적인 파전과는 맛도 모양도 판이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도착한 가게는 늦은 점심시간임에도 분주하다. 

실내는 차분하고 현대적 인테리어로 절제미를 지닌 장식을 최소화한 깔끔한 가게이다. 

바로 미나리전과 함께 해창 막걸리를 주문했다. 

막걸리의 최상위 버전으로 찹쌀로만 빚어낸 특유의 향을 지닌 최고의 전통 주이다.

물론 단골들은 부드럽고 기름기가 적은 데다 주인공인 미나리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이유로 

이곳을 찾는다.
 비 오는 날의 조건반사적 충동에 이끌려 찾은 향을 가득 품은 전을 안주 삼아 마신 막걸리 두세 잔에 취기가 돌았다. 

기분 좋은 낮술이었다. 

건너편 너머 주방에서는 전 지지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둘이서 모자란 듯한 느낌에 이번엔 어복 편육 전도 주문한다. 

이 전 역시도 맛이 일품이다.

개인적으론 약간 기름기와 편육의 육전과도 비슷한 맛을 내기에 개인적 취향에는 훨씬 좋다.

이 전은 얇게 저민 소고기에 쌀가루를 넣고 마지막에 뚜껑을 덮어 증기로 완성하는 두툼한 이 전은 바삭한 

식감과는 거리가 멀고 차라리 질척거리는 느낌마저 든다. 

왜 덜 익은 파전을 주냐는 항의를 가끔 받을 정도이다. 

스테이크 굽기로 비유하자면 ‘레어’ 버전의 전인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누룩의 떳떳한 맛이 나는 산성막걸리를 추가로 주문했다. 

이 막걸리는 호 불호가 분명하다. 

아마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달지 않은 시 뜸한 향과 맛이기 때문인 듯하다.

금정산 산성마을 화전민들이 생계를 위해 누룩을 빚어 만들기 시작했다는 막걸리이다. 


후식은 건너편 카페에서 아이스커피에 시럽을 잔뜩 넣어 달달 함까지 더해져 오감이 충만한 하루이다. 

창밖에는 길 따라 여름 꽃이 늘어진 한쪽 옆에는 오래된 늙은 소나무 몇 그루가 벤치 뒤로 서 있다. 

며칠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이 지루한 장맛비가 싫지만 않은 까닭이다.

오늘 그 하루는 맛난 음식이 일상을 변하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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