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그 높은 곳, 그 차원의 끝에 닿아보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브런치 북 작가가 되다.
별다른 고민 없이 올린 그동안의 한견에 두었던 습작들과 일상의 작은 메모들을 정리하여 올렸다.
굳이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동안의 지식과 지혜를 모으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결실을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설레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새벽이면 제시간에 일어나는 게 루틴이 돼 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4시 50분에 일어난다.
이제는 이 시간대에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물론 이런 습관은 화려한 꿈을 안고 살았던 20대 외국 유학 중에 갖게 된 반복된 일상에
시작되었으나 이제 다시 습관화가 되었나 보다.
그 유학시절 당시 매일은 아니지만 힘든 생활 속에서 잠시의 도피처가 되어준 것이 소소한 마음을 적었던
일기였다. 일상의 파편들과 다시 올 목표를 적으며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았으니 휴식처였다.
지금 생각하면 힘들고 외로웠던 기억보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청춘,
젊었던 유학시절의 가슴 아픈 추억들이다.
홀로 버텨야 했던 여린 마음을 지탱해 주던 아픔과 회복을 가져야 했던 치유방법이기도 했다.
글 쓰기라고 보다는 일상을 적었던 그 시절의 회한이 가득한 조각들이 지금의 이야기들이 되었다.
그래도 글쓰기는 힘들다.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힘이 들어간다.
한참이 지나도 완성된 글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 집어 든「꾸뻬 씨의 행복 여행」에서 작가가 구현한 글 세계에는 내가 닮을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였다.
대부분 불완전해서 더욱 아름다웠던 어느 한 시절을 바라보는 행복과 삶의 연민들이었다.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격려와 치유의 단편적 단어 들고 있다.
절망감에 낙오된 사람에 대한 따스한 위로의 시선도 바라본다.
내게 그런 글 쓰는 재주가 없다는 것만이 아니라 결코 닿을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라는
것이 내겐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로 남았다.
결국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이다”라고 하고 있다.
지금은 인기가 없어져 잊혔지만,
그래도 한때 그 분야에서 최고라고 불렸던 어떤 유명 프로 바둑기사가 사는 이유에 대해서
“어차피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고 했다.
아마 바둑 한판으로 세상이 어찌 되겠느냐마는
그래도 "자신에게 전부는 바둑이고, 증명하고 싶은 세계라는 의미"일 것이다.
나도 역시도 그렇게 말해보고 싶다.
까치발을 들고서라도 한 번은 그 높은 곳, 그 차원의 끝에 닿아보고 싶다.
그곳까지 한 번쯤은 다다르고 싶다.
상처 입은 상처는 치유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도 새벽부터 달린다.
내게 없다는 것이 아니라 혹 내가 찾지 못해서 그 차원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나는 오늘도 그걸 찾으러 가겠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지가 행복이라면,
나에겐 그 목적지 중 하나가 글쓰기이고 그 속에서 또 다른 행복을 찾고 싶다.
그게 최고의 가치이자 이 세상을 사는 의미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