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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Jun 29. 2024

늙어가는 애완견,
‘초롱이’와 산책한다는 것은

언제나 곁을 내어 주는, 작고 예쁜 영혼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산책 더 할까?” 

“집에 갈까?”

그 목소리는 아파트 위층에 사는 조카 것이다. 


오랜만에 친우들과의 만남을 위해 오후의 햇살이 저무는 길을 나선다.

아파트 정문밖을 나서자마자, 저 멀리서 오후의 노을을 가르며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늙어가는 17년 차 이모네 댕댕이, 푸들인 ‘초롱이’를 마주친다. 

조카의 품에 안겨 있다가 날 보자마자 단숨에 품에서 빠져나와서는 흙 뭍은 발로 반갑다고 

내 무릎 위로 달려든다. 

가끔 나와 초롱이가 마주치는 산책 길에서 만나면 오랜만에 상봉(?)에도 저 먼 곳에서 자기 딴에는 열심히 

꼬리 치면 달려와 바지자락에 매달리는 모습에 난 격한 감격까지도 하게 된다. 

어제! 멀리서도 나를 알아보다니 하며 그 작은 행동에 감동까지도 하게 된다. 

아마도, 주인인 조카에게 “고마워! 가장 밝은 날에 산책을 데려가 줘서”라고 하는 듯하다.

본 지도 오래지만 더위에 외출이라 더 반가워하는 듯하다. 

그런 댕댕이가 내게 오랜만에 만날 친우보다도 더 반갑다.


다시, 나랑 “산책 갈까?” 

예전이면, 바로 멍 멍!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걸 보니 이놈도 늙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댕댕이가 그러하듯, 친지 네 애완견 초롱이도 산책하는 일을 가장 좋아했다. 

같이 산책을 따라 갈라 치면, 초롱이는 길 구석구석을 다니며 냄새를 맡고 부지런히 자신의 자취를 분명하게 남겼다. 

그 일련의 행위가 일종의 사명처럼 느껴졌다. 

“내가 여기에 다녀갔다”라고. 

내가 여전히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필사적으로 알리는 것처럼 보인다.
 때론 댕댕이를 산책시키는 게 아니라 그가 우리를 산책길로 이끌어 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 갈까?” 한마디에 몸을 들썩이며 눈을 반짝이는 덕분에 나와 조카도 발걸음을 맞춰 포근한 

일상으로 나아가는 건 아닐까.
 반려견과 함께 잘 지내려면 ‘매일 산책시켜 주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이 생각나는 저녁이다. 


다만 최근엔 산책 후, 조카 품에 안겨 들어오거나 최근엔 댕댕이 유모차에 타고서 오고 가는 모습

을 자주 보게 된다.

초롱이는 다른 댕댕이들과 꼭 하루에 한 번은 오후나 저녁시간에 산책을 하는데, 비록 나이는 

많지만 외출 시에는 젊은 에너지가 넘친다. 

마치 평소에는 모든 힘을 아껴 두었다가 산책할 때 사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매일 산책하는 일은 번거롭고 귀찮은 것을 감당하며 댕댕이와 함께 살아야겠느냐”라고 묻는다면, 

언어가 통할 리가 만무한 다른 개체와 오로지 눈빛만으로 서로를 교감하고 위로받은 적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동감할 것이다. 

주인에게 의존하며 우정과 사랑을 충만하게 퍼붓는 충성스러움을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다. 

주변의 무례한 충고와 지적질이 난무하고 자존감을 침범하는 인간관계에 지쳤을 때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받아들이는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기꺼이 동물을 반려하는 일에 수반하는 귀찮은 수고와 아픔을 기꺼이 감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게 된다. 

그래서 '사랑하고 잃는 것이 아예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좋다'라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한마디에 몸을 들썩이며 눈을 반짝이는 반려견인 초롱이 덕분에 집사인 반려인도 발걸음을 맞춰 포근한 일상으로 나아가는 건 아닐까.
 우리가 “댕댕이를 산책시키는 게 아니라 그가 여유로운 산책길로 이끌어 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곁을 내어 주는 ‘작고 기쁜 영혼인 초롱이가 ‘가장 밝은 산책’을 이끌어 준다. 

그런 초롱이도 예전과 다르게 때때로 삐치고, 까칠하게 짓는 소리나 쿨한 성격과 행동은 그 주인인 조카를 

닮아 간다.

사람이나 동물도 "몸은 마음의 상태를 반영한다"라고 하는 말이 맞는듯하다.
 
 

오랜만에 지쳐가는 일상의 외로움에서 빠져나와 댕댕이와 산책길에서 다정하게 마음을 나누는 법을 새로이 배운다. 

그런 초롱이의 모습에서 치매가 깊어가는 어머님의 모습이 겹치고 지나간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는 염원과는 반대로 가는 세상의 이치를 원망해 본다.

산책 길에서 마주친 초롱이의 치매와 함께 어머님의 건강을 걱정하며 예전 모습으로 다시 돌아

올 날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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