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것은 나의 반쪽, 그 뒷모습에 놀란다
‘나와 오랜 기억 속의 아버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대 도시를 떠나 명절을 핑계로 가족과 친지가 사는 시골로 향한다.
시골 도시는 여전히 적막하고 사람의 인적이 드물다.
바닷가 해변가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조금 보이지만 피서를 즐기는 모습은 아니다.
지난 학창 시절의 친구들도 동네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겨 특별하게 만나거나 해야 할 일도 사실 없다.
여해 여독도 풀 겸 해서 오랜만에 해수사우나로 발길을 돌린다.
이곳에 올 때면 하는 마땅히 할 일 없이 시간 죽이기에는 적당한 습관 같은 행사이다.
사우나로 가는 길목에 사거리 건널목에 따라 나무 숲길 아래로 한 노인이 힘겹게 골목사이을 돌아 걸어가고 있다. 끝 여름이라고 해도 한낮의 포장도로는 잠깐도 채 되지 않아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줄줄 흐른다.
무더위가 이어지는 올여름이 누군가에겐 더욱 가혹해 보인다.
멍하니 힘겨운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누구에게나 삶을 이기기에는 힘겨운 뒷모습들이다.
서늘한 사우나의 공기 속으로 거울에 벌거벗은 웬 낯선 남자의 뒷모습이 어른거렸다.
나의 뒷모습이 본 것이다
우연히 목격한 그는 근육의 탄력이 떨어졌고 옆구리 살, 뱃살도 나와 처져 있다.
하얗게 센 옆머리에 정수리가 비여 휑했다.
한참 늙어가는 사나이가 틀림없었다. 전혀 젊지 않다.
순간 “누구지?”
그건 바로 ‘나’이다.
오랜만에 본 나의 뒷모습의 반쪽이다.
남들은 늘 보고 있지만 나는 볼 수 없는 나의 반쪽이다.
잊고 산 그 반쪽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의 눈에 비친 내 반쪽에 놀라 도망치듯 탕에 뛰쳐나왔다.
스쿠터에 몸을 실고선 집으로 향하는 내내 “아! 벌써 이렇게 늙았고, 늙어가는구나”
어! 내 기억 속의 내 뒷모습과 ‘아버지’의 뒷모습이 겹쳐진다.
어린 시절 주말이면 공무원이던 아버님은 큰 거울을 앞에 놓고 마당 한견에서 염색하던 모습은 여전히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마당에 거울을 걸고 염색하던 거울에 비친 영락없는 돌아가신 아버님의 모습과 똑같다.
내 기억으론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정확히 본 적이 없기에 뒷모습과 내 뒷모습을 겹쳐 보며 묘한 감정과 감동을 느낀다.
한참 사춘기가 절정에 달하던 어린 청춘시기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몇 장의 사진과 흰머리를 염색하던 기억으로만 추억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나도 모르게 눈가에 작은 눈물이 비친다.
최근, 시골집 거실 밖을 멍하니 종일 바라만 보시는 어머님의 그 뒷모습과도 겹친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에 올라타서 먼 세상을 바라다본다.
특히 아들은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커가고 종종걸음으로 그 뒤를 따른다.
그런 아이들이 커가고 점차 작아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안 쓰러워하며 그 역시 또한 아버지의 길을 간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등에 올라탄 것이 결국 ‘자식이라는 연결자’라는 것을 안다.
이제야 밥벌이에 힘겨워하는 제법 성장한 자식들에게 살아 있는 내 뒷모습을 내어 주고 있다.
우리가 본다는 것은 결국 뒷모습만이다.
결국 본 것은 나의 반쪽, 그 뒷모습이다.
그런 뒷모습.
그건 나와 나이 외의 반쪽인 세상이다.
누군가의 뒷모습에는 감추고 싶은 강렬한 추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