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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Sep 06. 2022

02. 인생 4막,
이제 잊고 버려할 것들…

결국 삶이란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 속을 유영하여야 한다

이제 인생 4막을 준비하며 잊고 버려할 것들을 펼쳐본다.

인생 3막까지에서 느낀 교훈은 

“누구나 삶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며 반드시 청산해야 할 들이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삶은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 계속 나쁜 것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나쁘고 슬픈 것이 기억을 오랫동안 남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내 인생 3막은 한 마디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긱 워커(gic worker)>, 

사실 말이 좋아 프리랜서(freelancer)라고 하지만, 실제는 용역이라는 단어가 어울릴지도 모른다. 

지난 일이지만 글로벌 자동차 부품기업의 현장교육을 진행했을 때의 상황이다. 

물론 교육 담당자의 무지에서 나온 말이지만, 교육 준비와 어떤 교육인지를 묻는 대화 과정에서

아! 그럼 용역이시네요!”라고 한 말이 아직도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담당자의 싸늘한 눈빛과 교육강사를 대하는 태도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단어가 아직도 싸늘한 비수로 되어 아직도 마음 한 견에 남아 있다. 

교육현장에서 유명강사가 아니라면, 갑은 물론 을의 입장도 아닌 그 아래인 의 입장이 된다. 

결국 용역의 입장에서 갑은 물론, 을의 갑질까지도 받아들여야 하는 병, 혹은 정의 입장에서의 

생활이었다. 


그러한 인생 3막에서 배우고 얻은 버려야 할 3가지 교훈을 얻었다. 

먼저, <지난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조직에서 나오면, 이 사람, 저 사람도 섭섭하고 괘씸하고 섭섭함은 물론이고 상처도 많이 받는다.

특히 대기업에 몸 담았거나 주변과 이해관계가 많은 부서나 영향력 있는 위치나 지위에 있었다

면 더욱 그럴 것이다.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듯, 예전엔 간이라도 빼 줄 것 같은 행동을 보인 그 가까웠던(?) 이들이 

180도 달라져 있게 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나 몰라!” 하는 태도를 보는 건 상처의 대미지(damage)나 후유증이 상당히 

크고 오래간다.

오랜만에 식사라도 하자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는 건 물론, 그 후론 연락도 안 받는 

회수가 늘어나고, 용건을 보낸 스마트 폰 문자를 씹는 건 다반사로 늘어난다.

그 회수만큼 원망하는 마음과 소심해지게 된다. 결국 상처만 깊어지게 된다. 

스스로 “내가 이렇게 살았었나?”라는 자조 섞인 단어도 시간이 가면 잊힌다. 

그래서 나 역시도 과거에 누군가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나?”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면서, 

과거에 괜 시리 미안한 행동을 보인 상사나 오래돼 소식 없었던 친우들을 찾게 된다.


사람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내가 직장에서 젊은 청춘을 다 바쳐, 몸과 심력을 대해 일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상대방은 오히려 

월급도 주고 직급을 높여 성장하도록 했는데…”라고 생각한다.

주변 동료나 부하들도 “내가 그토록 애쓰며 도와주고 키워줬는데…”라고 생각하지만 그 지위까지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줬고 공헌했는데…라고 그 반대로 생각한다. 

생각을 바꿔보면, 사람들이 반드시 누군가를 편애하고 특별히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자기에

게 필요하거나 이젠 도움을 받을 게 없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마음을 비우니 이제 다른 생각도 없어지고 상쾌 해진다. 

그 좋았던 시절에는 나 역시도 그렇게 했으니까!라고.


두 번째는, <누군가와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한창일 시기에는 위로 보고 올려다보는 건 당연하고, 그래서 이런저런 목표나 아름다운 꿈도 가

지게 되고 그런 것들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경쟁자가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면, 그런 목표나 꿈이 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실망이 의욕상실로 변하게 된다. 

“나보다 나은 게 없던 동료가, 나보다 한참이나 모자랐던, 능력이나 학벌도 별로였고, 한참 모자란 

능력을 가진 후배가 어느새 승진하여 경영진에 합류해서 신문이나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속도 쓰리고 상처받는다.

내가 누구인데,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인데!”

그런 푸념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지난 과거일 뿐이다. 

현재를 사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교하는 마음은 주변 가까운 친지나 인척 지간이라며 그 상처는 더 심각해진다. 

그러나 나보다 못났지만 잘된 이들도 있지만 나보다 잘났는데도 인생이 꼬여 안 풀린 경우도 

가끔 주변에서 보게 된다. 

그래서 “이젠 고개를 들어 위로만 볼 게만 아니라, 고개를 숙여 아래도 보는 것도 필요하다” 라

는 걸 알게 되었다. 


세 번째는, <줄 것과 받을 것을 구별하는 것이다>

우린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에 항상 준 것은 크고 받은 것은 적다”

라고 느끼고 행동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제까지의 관계나 그동안 도와준 걸 생각하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오래전 한참 세상이 내 것(?) 같았던 승승장구하던 시절, 사이좋았던 동생 친구가 사업자금을 빌

려 달라고 해서, 그때에는 재 개발이 된 잠실에 작은 아파트를 2개는 살 수 있는 큰돈을 빌려 주었다. 

높은 이자에 현혹되어 벌린 참사의 결과는 동생 친구 사업은 부도가 났고, 변제받지 못해다. 

그렇게 가까웠던 그는 지금은 재기하여 강남에 빌딩도 사고, 회사도 크게 번창하여 성공했다. 

그럼에도 이제는 연락도 없고 멀리한다. 

그 당시 재기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행동을 돌아본다.

돈이든 마음이든 줄 수 있는 만큼만, 버려도 될 만큼만을 지불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얼마 전 지방 교육과정을 마치고 갑자기 동행하기 했던 직원이 다른 볼일이 생겨서 친한 후배

에게 돌아갈 때, “근처 역까지 같이 가면 어떻겠냐”라고 물었다. 그 대답은 No였다.

수고스럽지만 “지나쳐 가는 길인데, 같이 가도 되는 데”라고 생각하고 부탁했는데, 

정작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시간과 수고는 상대적이기에 더욱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린 누구나 자기중심적, 이기적이다”라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린 행동이었다.


물론 따스한 배려와 마음 씀씀이를 지닌 그 스펙트럼의 범위가 넓은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게 친구이고 진짜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의 대부분 인간관계는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줄 것은 쿨(cool)하게 주고, 받을 것이면 처음부터 그 한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 구분이 분명하지 않으면 상대와 의(의리)도 상하고, 실리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게 돈이든 배려이든 주는 것에 “Give & take”, “선을 갖는 것” 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그런 교훈을 되 새기며, 

인생 4막은 <결과만으로 평가 말고, 잊었던 꿈을 소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사는 것이 사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청춘 시기, 해외 유학시절 담당교수가 한 말, 전공을 선택의 순간에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라고 하였다.


지금 다시 그 시절의 그 어귀를 기억하고 소환해 본다.

인생의 마지막으로 달려가는 지금에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고 잠시 잊었던 마음 어딘가 한 견에 저장해 둔 잊었던 목표와 꿈을 꺼내 본다.

오늘만큼은 잊었던 그 꿈을 예쁘게 단장시켜서, 새로 사귄 연인처럼 가장 가까운 곁에 두어 

볼까 한다.


우린 한 살 두 살씩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변화에 때때로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변화, 그 자체를 거부하기 쉽다.

그래서 “늙는 것은 나이가 들어 서가 아니라, 변화가 멈추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변화하려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다만 변화를 멈출 때, 비로소 늙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인생 3막까지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높이와 속도와 경쟁의 외면적 시기였다면, 

인생의 4막은 잊고 미뤘던 꿈과 삶의 밀도를 높이는 내면적 시기를 완성해 가는 시기일 것이다.

 

오늘 하루도 이런 말을 되 뇌이며 잠자리에 든다.

“하루 해 지기 전까지 딱 한 걸음만 더 걷다 보면, 

곧 어느 날인가 내가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된다. 

그것이 어딘가의 정상이든 이직은 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바라던 만큼만 갔으면 되는 것이다. 

다만 그저 오늘 잠들기 전, “오늘은 또 한 걸음 더 갔구나” 라며 

스스로 만족하는 인생이 최고가 아닐까?” 한다.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는 건 아니다.

결국 삶이란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 속을 유영하여야 한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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